松竹묵상글

기다림 속에 | 2024년 12월 성탄 맞이 묵상 글

松竹/김철이 2024. 12. 3. 15:31

기다림 속에

 

                                                        김철이 비안네

 

 

한 꼬마가 닭장 앞에 턱을 고인 채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닭장 안에서는 암탉이 병아리를 까기 위해서 알을 품고 있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꼬마는 초조해졌다. 언제쯤이면 병아리가 나올까, 그것만 기다리며 학수고대하고 있던 어느 날, 꼬마는 암탉이 품고 있던 알을 빼앗았다. 그리곤 알을 깨뜨려 버렸다. 알에서 병아리가 나올 줄 알았던 꼬마는 깜짝 놀랐다. 계란 속에서는 채 모습을 갖추지 못한 병아리가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주시에서 성산포로 가는 길목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떠나간 자기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늙은 아버지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천구백오십 년대 후반 이십여 년이나 지속되었고 전쟁이 한참 치열했던 천구백오십 년대 후반 월남전 파병을 위해 집을 떠나면서

“아버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라는 마지막 말을 노부께 남기고 떠났다. 아들은 몇 달 후 베트콩과의 교전 중 총에 맞아 전사했고 전사 통보가 집으로 전해졌을 때 그의 가족들은 아버지께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웃 마을에 살던 아들의 친구들은 모두 돌아왔는데 자기 아들만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그 아버지는 아침밥 숟가락만 놓고 나면 길가에 나와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오늘도 내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구나.”

라며 월남전이 종전되고도 칠 년을 하루 같이 기다리셨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등록금이 면제되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은 언제나 월요일 아침이 되면 기숙사로 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노동에 찌든 손으로 차비 몇 푼을 쥐여주곤 돌아앉아 속앓이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어머니가 기숙사로 아들을 찾아갔다. 어머니는 너무 뜻밖이라 왜 오셨냐고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는 아들에게 몇 번을 접었는지 모르게 꼬깃꼬깃해진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미안하구나,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서"

아들은 어머니의 그 손이 부끄러워 얼른 방문을 닫아 버렸다.

 

몇 년 뒤 공사판에서 트럭을 몰던 아들이 교통사고를 내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수갑을 찬 아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보며 아들은 비로소 다짐했다.

"죄송해요. 엄마! 조금만 기다리시면 제가 꼭 호강시켜 드릴게요."

"그, 그래 기다리마, 기다리고말고"

출소 후 아들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돈을 모을 때까지는 어머니 앞에 나타나지 않으리란 결심으로 명절 때도 찾아가지 못하고 견뎠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나고 설을 앞둔 어느 날, 그가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마련했다. 이젠 찾아갈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큰아들이 돈 벌어 호강시켜 준댔다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부고였던 것이었다. 그날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가슴에 안은 채 아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왜 하루를 기다리지 못하셨습니까? 하루를"

어머니 가슴에 박힌 못을 끝끝내 뽑아드리지 못한 아들은 끝없는 눈물만 흘렸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많은 사람들이 능이 알 것이다. 성인은 십 대 후반부터 술과 노름과 여자로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이십 대 초반에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한 후 새 삶을 살게 되었다. 새롭게 태어난 성인이 하루는 술집과 창녀촌 지역을 지나는데 한 여자가 성인을 보고 추파를 던졌다.

“이봐 아우구스티노, 왜 놀러 안 와. 하룻밤 지내고 가라.”

그러자 성인은 말한다.

“여인이여, 그대가 전에 부르던 아우구스티노는 이미 죽었고 지금의 나는 예수님과 함께 사는 새 아우구스티노라네.”

 

천구백팔십 이년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에서는 한국의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받아들여 인권 주일을 제정하였고 이천이십사 년은 마흔 삼 회째 인권 주일이다. 인권은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고귀함과 존엄성을 천명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어떤 권력이나 타인으로부터도 침해받지 않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다.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 ”

우리가 영적으로 쇄신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자.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힘, 사랑, 지혜, 용기를 청하자는 것이다. 더 영성이 깊어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봉사, 희생, 극기, 성화의 은혜를 간구하자. 우리가 즐겨 먹는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사천이백 번이나 벌집과 꽃을 반복해서 드나들며 얻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