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김철이 비안네
우리는 매년 구월이면 반복해서 더없이 은혜로운 순교자 성월을 맞이한다. 그러나 구월 한 달만은 신앙의 선조인 순교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좀 더 성숙한 신앙으로 키워나가 보리라는 야무진 결심을 해보지만 순교자 성월이 다 가기도 전에 흩어진 우리의 몸과 마음을 확인하곤 자기 자신에게 적지 않은 실망도 곁들이곤 한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당연한 행위들이다. 이 당연한 행위에 실망만 늘어놓지 말고 거듭 신앙의 불을 붙여 신앙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하는데 올해는 성 김성우 안토니오 순교자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하자
성 김성우 안토니오는 경기도 광주 고을 구산 출생으로 그의 가문은 부유하였고 또한 정직하고 인심 좋기로 유명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삼 형제 중 맏이였던 안토니오는 성격이 온화하고 관대하여 외교인 들도 그를 흠모하였다고 한다. 그 종손들이 고향에서 존경을, 받으며 사는 것은 사람들이 그 증조부의 유덕을 기억했기 덕분이었다. 그들이 천주교에 관하여 이야기를 접했을 때, 삼 형제 중 두 명이 즉시 입교하였고, 오래지 않아 셋째뿐 아니라 여러 친척과 친구와 이웃이 그들과 뜻을 같이하여 이 작은 마을 전체가 열렬한 교우촌을 이루게 됐다.
그러던 중 모친께서 세상을 떠나시자, 어머니가 별세한 뒤 안토니우스는 유방제 파치피코 신부가 조선에 들어오자 성사를 자주 받기 위해 서울로 이사하여 느리골이라는 마을에 자택을 사서 살다가 동대문과 가까운 마장안이라는 마을에서 살았다. 그는 자기 집에 강당까지 마련하여 회장으로서 모방 신부를 한여름 동안 모시기도 하였다.
한편 구산에서 살고 있던 두 형제는 박해가 일어나자 곧 잡혀 첫째 동생이었던 김만집 아우구스티누스는 천팔백사십일 년 일 월 이십팔일 옥사하였고, 둘째 동생 김문집 베드로는 사촌 김주집과 함께 광주 남한산성에서 옥살이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안토니오는 아내를 잃고 다시 열심한 교우와 재혼하였다. 그러나 천팔백사십 년 일 월경 한 배교자의 밀고로 붙잡힐 위험에 그는 지방으로 도망가 숨어 지냈지만, 오랫동안 좁혀오던 포위망을 더는 피할 수 없어 끝내 온 가족과 함께 붙잡혀 포도청을 거쳐 형조로 끌려가게 되었다.
안토니오는 포장 앞으로 끌려가 거듭되는 심문을 받았고, 삼십 대의 곤장을 맞았으나 조금도 굽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문을 용감히 참아 나갔다. 안토니오는 배교(背敎)하라는 서슬이 시퍼렇던 재판관의 독촉에도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이오.”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그 후 그는 다시 법정에 끌려 나가 곤장 육십 대를 맞았으나 그의 훌륭한 용기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이튿날 밤에 당고개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마저 바친 한국 순교성인들 삶과 신앙을 되새기는 구월 순교자 성월이다. 우리는 순교 성인 성녀들의 지고지순한 신앙과 삶을 조금이라도 본받으려면 그분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우선인데, 한국 순교 성인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백 삼위 순교 성인 성녀들의 면면을 유형별 분류를 통해 살펴보고 아울러 피로써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삶을 우리들의 삶에 접목하여 보자
우리가 살아야 하는 순교와 증거의 삶이란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삶을 절대가치로 삼아 상대주의를 몰아내고 희생을 통해 진리를 지속적으로 찾아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진리를 실천하는 공동체의 삶이란 영원을 바라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시각이 바로 결과주의를 퇴치하는 증거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순교 성인 성녀들의 삶이라 하여 손 놓고 바라만 볼 것은 결코 아니다.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박해 이전 시대만 하여도 순교 성인 성녀들 역시 보통의 삶을 살았음을 엿볼 수 있다. 다만 그들의 신앙심과 믿음만은 투철했음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음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오롯이 주님께 의탁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에게도 순교의 월계관을 내려주시지 않을까,
이러한 순교의 삶을 원한다면 우선되어야 할 것이 나눔의 삶, 버림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영혼 곡간에 그득히 쟁여놓은 재물을 끌어안고는 하늘나라 문을 노크할 순 없질 않은가? 하느님보다 앞서 챙기는 것들을 움켜쥐고는 순교의 월계관을 탐할 순 없질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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