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영그는 곡식처럼 | 2024년 7월 묵상글

松竹/김철이 2024. 7. 9. 20:11

영그는 곡식처럼

 

                                                             김철이 비안네

 

 

그리스도라는 농기구로 하늘나라 농사를 짓는 우리는 늘 겸손한 성품으로 영적 농토를 가꾸어 나아가야 한다. 까닭은 순간만 방심해도 교만이라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기 때문이다. 모든 잡초가 그렇듯 소중하게 여기는 나무나 귀히 파종한 씨앗들을 쉽게 해치거나 넝쿨 줄기로 식물들의 숨통을 조여버린다. 겸손은 만개하기 어려운 꽃이요, 영글기 힘든 열매와 같다. 그러므로 성을 다하여 겸손이란 성품을 가꾸어 나아가야 한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므로 겸손이 만개하고 영글 수 있다. 겸손은 우리들의 긴 인생 여정 속에서 삶을 기름지게 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한다.

 

어느 나라에 정원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임금이 있었다. 이 임금은 정원에 심어진 모든 나무와 꽃 그리고 풀 한 포기까지 정성으로 가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이 아침 산책으로 정원엘 나가 보니 모든 나무와 꽃과 풀이 시들어 있는 거였다. 임금은 정원 한편에 서 있는 떡갈나무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시든 이유를 물었다.

 

"떡갈나무야! 무슨 일이 있었니? 대체 왜 이렇게 다들 시들어 있지?"

"나무들은 앞다투어 자기가 다른 나무보다 못하다며 실망을 늘어놓았다. 소나무는 자신이 포도나무처럼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포도나무는 복숭아나무처럼 똑바로 서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또한 소나무는 라일락처럼 날씬하지도 못하고, 향기도 없다고 불평이었다.

 

그런데 모두 시들어 있는 꽃 중에도 유독 생기 있고 아름다운 꽃이 있었다. 그 꽃은 바로 팬지였다. 임금은 꽃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팬지야! 다들 슬픔 속에서 시들어 가고 있는데 너는 작은 꽃이지만 꿋꿋이 피는 걸 보니 짐의 마음이 매우 기쁘구나!"

"네, 감사합니다. 저는 원래 볼품없는 꽃이잖아요, 하지만 임금님께서 떡갈나무나 소나무나 복숭아나무 혹은 라일락만 원하셨다면 저를 뽑아 버리고 그 자리에 그들만을 심으셨을 겁니다. 임금님께서 저를 심으신 까닭은 저를 보시면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기 위함이란 것도 알지요. 그래서 저는 임금님께서 저를 보시면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시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어요."

 

임금은 이후로 팬지꽃을 한층 더 아끼며 사랑했다. 이 우화가 부여한 교훈처럼 겸손한 사람은 어떠한 외부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지켜 나아간다.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평화의 마음을 전해주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연말 결산을 했는데 백만 원이 온데간데없이 비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빈 돈을 메워 넣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은행에 면목이 없어 견딜 수가 있어야죠."

부산 모 은행 어느 지점 입, 지급 계에 다년간 근무하던 행원 박 00 씨의 체험담이다. 크리스천이었던 박 00 씨는 괴로운 마음에 성전을 찾았다.

 

"하느님! 이 돈만 찾게 해 주신다면 앞으로 한 달 동안 성당 변소 청소를 하겠습니다. 제발 찾게 해 주십시오!"

기도 덕분이었는지 며칠 후 행방불명이었던 백만 원은 후배의 계산 착오였음이 밝혀졌다. 그때부터 박 00 씨는 매주 주일마다 다들 꺼리는 성당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애당초 한 달만 하겠다던 약속이 벌써 이십여 년째다.

 

"낮 열두 시 교중미사가 끝나면 대걸레와 왁스를 들고 화장실을 찾는 것이 일요일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돼 버렸어요. 휴지통을 치우고 왁스로 깨끗이 바닥을 닦아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오르지요."

 

이 시간만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박 00 씨의 특별한 행복의 순간이다. 처음 청소를 시작할 때 등에 업었던 첫딸도 스무 살 숙녀로 자라 더불어 대걸레를 밀겠다고 나서는 통에 엄마와 다투기가, 일수란다. 이렇듯 우리의 신앙은 스스로 가꾸어 영글게 하는 것이다. 가을걷이하는 농부의 마음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