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소망 | 2024년 4월 묵상글

松竹/김철이 2024. 4. 2. 09:03

소망

 

                                                                  김철이 비안네

 

 

옛날에 어떤 부자가 돈은 많이 있었으나 자식도 없고 별로 웃어볼 만한 일이 없어 하루는 말을 타고 여행을 가는 도중에 앞을 바라보니 한쪽 다리를 저는 걸인이 행색은 남루하고 미래는 드높은 산에 안개를 두른 듯했는데 즐거운 듯이 성한 한쪽 다리로 지탱하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그대는 무엇이 그렇게 기뻐서 춤을 추는가?”

 

걸인이 답하길

“첫째, 하느님께서 나를 지으실 때 하등동물로 짓지 않고 사람으로 지은 것이요, 둘째 내가 다행히 한쪽 다리만 절므로 동서남북을 어디든 마음대로 다닐 수 있기 때문이요, 셋째 현세에서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 하나 없으나 가난한 사람이 진 복 자라 하셨으니 내 죽으면 하느님 품에 안길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소.”

 

아주 돈이 많은 미망인이 있었는데 이 미망인은 시간이 남아돌아서 사회활동도 왕성했고 세계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어서 집에 머물 때가 거의 없었다. 미망인 슬하에는 소아마비 장애를 지닌 열여섯 살 된 딸이 있는데 어머니가 무척 잘해 주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옷가지를 비롯해 보석, 시계, 향수 등등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한 아름씩 선물을 안겨 주었다. 미망인이 해외에 머물 때 딸의 생일을 맞으면 딸의 전속 간호사를 시켜 화려한 화분을 생일 선물로 보내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여행 중에 간호사를 시켜 딸의 생일 선물로 화분을 보낸 후 자신이 돌아올 때는 더 좋은 선물을 사 가겠다는 말을 전하게 하였다.

 

간호사가 들고 온 생일 선물을 본 딸은

“엄마, 선물은 싫어요. 제게 필요한 것은 엄마예요. 엄마가 나하고 같이 있어 주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필요지 않아요.”

라며 울부짖었다. 딸이 원했던 건 어머니였다. 바로 어머니의 정성 어린 돌봄, 어머니의 따사로운 손길, 어머니와 함께 같은 식탁에서 오순도순 식사하는 것이었다.

 

시골의 한 소년은 가정 형편이 워낙 가난하여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자

“하느님! 진학의 길을 열어 주십시오.”

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겉봉에 “하느님께”라고 적힌 이 편지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우체국에서 고심 끝에 근처 성당으로 보냈다. 성당 주임 신부님의 주선으로 소년은 대학에 진학하고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하느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사제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여 신학대에 입학해 졸업 후 서품식을 거쳐 하느님의 대리인인 사제가 되었다.

 

어느 한 소년이 길을 걸을 때면 항상 땅만 내려다보고 걷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결국 그 소년은 성인이 돼서도 폐지 줍는 일만 하다가 생을 마쳤다. 또 다른 한 소년은 길을 걸으면서 언제나 높은 하늘과 우뚝 솟은 빌딩을 쳐다보며 자랐다. 소년은 훗날 수십층이나 되는 빌딩들을 소유한 대기업의 회장이 됐다. 사람은 무엇을 보고 사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지고 결정이 된다. 우리 역시 땅의 것에만 뜻을 두지 말고 보다 드높은 곳에 존재하는 귀하고 소중한 것에 소망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소망이 숨어있다.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는 소망인 것 같지만, 정말로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면 이런 소망 이루어 달라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은가, 막연하게라도 모두 이런 비슷한 소망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 먼 세월의 언저리에서 가수 남진 씨가 불러 히트시킨 가요 중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임과 함께 한 백년 살고 싶네.’라는 노래가 있었다. ‘한 오백 년’이란 민요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한오백년 정도는 살아야 원 없이 살았다는 느낌으로 이러한 가사를 떠올려 지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는 소망은 너무 터무니없는 소망일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바로 그 소망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는 소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한다. 아마 우리 신앙인 중에 ‘어휴! 지겨워. 이 세상에서 같이 사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영원히 같이 살아야 한다면 난 못살아!’하고 속으로 외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마음에 두어야 할 참 소망은 현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만 존재함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