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드높은 은혜 | 2024년 3월 성요셉 성월 묵상글

松竹/김철이 2024. 3. 5. 09:07

드높은 은혜

 

                                                           김철이 비안네

 

 

어느 아버지의 슬하에 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중 한 아들은 유난히 몸이 약하고 소극적이어서 늘 아버지의 마음에 근심거리로 머물렀다. 하루는 아버지가 다섯 그루의 작은 묘목을 사 왔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고 일 년간 잘들 길러보라고 하였다.

 

아울러 나무를 가장 잘 기른 아들에게는 특별한 선물을 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아들들은 제각각의 노력으로 정성껏 나무를 길렀다. 일 년이 조금 지나 아버지는 아들들의 나무를 비교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장 몸도 약하고 자신감이 없어 보이던 아들의 나무가 가장 크고 아름답게 성장해 있었다.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허약한 아들을 칭찬했다.

 

“너는 분명히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식물학자가 될 거야.”

아들은 아버지의 칭찬에 기뻐하였고, 한 층 열심히 나무를 기르겠다고 다짐했다. 이튿날 일찍 자신이 기르던 나무로 다가간 아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버지가 아무도 없는 숲에서 본인의 나무에 물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아버지는 허약한 아들이 힘을 얻길 바라며 아무도 몰래 나무를 보살펴 준 것이다. 그 후 그 아들은 비록 유명한 식물학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미국의 삼십 이대 대통령이 되었고, 대공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이십 세기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겼다.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처럼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격려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해 나아갈 수 있었다.

 

한 소녀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서

“난 널 사랑한다. 아가야”

라는 애칭을 들으면서 자랐다. 소녀가 어른이 되었을 때도 아버지는 언제나 똑같이

“사랑한다, 아가야”

라는 애칭을 잊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녀가 사회인으로 성장하여 집을 떠난 후에도, 또한 그녀가 어디를 가든지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딸을 보아도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녀는 아버지 옆에 앉아 아버지와 더불어 했던 숱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항상 아버지의 그늘에서 보호받아 왔음을 감사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해주던 사랑의 말들을 듣지 못하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슬펐다. 그때 아버지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아버지의 가슴에 귀를 가까이 대자

“사랑한다. 아가야”

라는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온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시골집에 계신 가족들에게 자주 전화 연락을 했다.

"아버지, 저예요. 잘 지내셨어요?"

이렇게 시작하는 부녀지간의 마지막 대화에 아버지는 항상 한마디 덧붙이셨다.

"할머니 바꿔줄게."

딸이 없이 아들만 여섯을 기르셨던 할머니는 첫 손녀인 그녀가 태어나자 마치 막내딸을 얻은 듯 애지중지하시며 키워주셨다. 그 탓인지 그녀가 어릴 때 어머니와 사별하신 후 홀로 홀 어머닐 부양하시는 아버진 딸자식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신 듯하다. 언젠가 어버이날 아버지께 편지를 쓰면서 깜빡 잊고 할머니의 안부를 빠뜨렸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할머니 들으시라며 써지지 않은 문구를 지어 편지를 읽으셨단다. 그녀가 할머니 안부를 쓴 것처럼 그래야 할머니께서 서운해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고 할머니를 위해드리는 것이 당신께 효도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신 그녀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따뜻한 속사랑을 그 누가 쉽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해바라기를 바라보듯 예수 그리스도님만을 우러러보며 신앙생활을 지속해 간다. 하지만, 예수님이 세상에 드러내시기까지 숨은 공로자가 계신 데 그 공로자는 바로 요셉 성인이다. 모순된 점은 삼십여 년간 예수님을 길러내신 요셉 성인의 드높은 은혜를 기리는 기도는 성 요셉 성월 기도뿐,

 

우리가 매일 바치는 기도문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천 년 전 요셉 성인의 일상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어림짐작으로 묵상해 보아도 성인의 일상은 무한정 참고 인내하는 순교의 삶이었다. 위 세 아버지의 상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드높고 위대하다 하겠는데 성인을 기리는 기도래야 성 요셉 성월 기도뿐이니 매일 성인의 삶을 묵상하는 이가 몇이나 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