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진정한 주인공 | 2023년 성탄 맞이 묵상글

松竹/김철이 2023. 12. 5. 10:15

진정한 주인공

 

                                                        김철이 비안네

 

 

보리 이삭에 낱알이 많이 열리면 한 포기에 사백오십 알까지 열리는데 처음 돋아난 줄기를 그냥 자라게 하면 겨우 팔십 알에서 구십 알 정도밖에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농부는 보리 싹이 나오면 발로 밟는다. 이때 처음 나오는 약한 싹은 꺾이고 밟혀서 더는 자라지 못한다. 그 후 다시 새싹이 나오는데 이것은 전보다 더 강한 줄기로 자라게 되어 사백 알 이상이 열리는 튼실한 보리로 탄생한다. 해서 무지막지할 정도로 보리밟기를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보리밟기하듯이 피조물에 숱한 고난을 주신다. 고난을 잘 견디어 낸 피조물은 큰 신앙으로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고난이 올 때면 하느님께서 보리밟기하시는 중이라고 믿고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와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등 당시 알려진 세상의 90%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당대 최고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갔다. 그는 당시 대표적인 금욕(禁肉)의 철학자이며 반문명적(反文明的)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디오게네스에게 대왕이 말했다.

“그대가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 보아라.”

그때 디오게네스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조금만 옆으로 비켜 주십시오. 대왕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합중국 국방장관(國防長官)이었던 뉴턴 베이커의 감동적인 체험담이다. 전쟁 중 유럽의 어느 야전 병원을 방문했을 때 심각한 부상을 당한 한 미군 병사를 보았는데 그는 두 다리와 팔 하나뿐만 아니라 한쪽 눈마저 실명한 상태였다. 베이커 장관이 같은 병원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그 불행한 청년이 죽지 않고 살았느냐?“

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원장은 웃으며

"그 병사는 이 병원에서 자기를 간호해 주던 간호사와 결혼했으니 산 것이 틀림없겠죠“

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 몇 해가 지나 베이커 장관은 국방장관직(國防長官職)을 사임하고 유명한 존스 홉킨스 대학의 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해 졸업식에 갔다가 박사 학위를 받는 졸업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이 청년이 바로 전쟁 중 심각한 부상을 당해 야전 병원에서 거의 한 오라기 희망도 없어 보였던 그 병사였기 때문이다. 베이커는 반가운 마음에 일부러 앞으로 나가 졸업장을 받는 청년의 손을 잡고 격려의 말을 하였다. 그랬더니 그 청년은 오히려 베이커를 이렇게 위로하는 것이었다.

 

"베이커 장관님, 은퇴하셨다는 것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보람 있는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니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더 힘차게 사십시오."

베이커는 이때만큼 자기 삶에 대하여 용기를 갖게 된 적은 없었다고 회고(回顧)하였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 군인들이 사랑하는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부터 뉴욕 거리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인들을 환영하기 위하여 숱한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미국의 상, 하원 의원들과 귀빈들이 새벽부터 길 양쪽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고 대통령이 자리에 앉자 마침내 군인들의 개선 행진이 시작되었다. 그 행렬의 선두에는 육군이 앞장서고 뒤를 이어 해군과 공군이 따르며 해병대가 지나갔다.

 

끝으로 한 작은 부대가 입구에 들어서자 갑자기 대통령을 비롯해 귀빈들과 서민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그리고 지나가는 그 작은 부대를 향해 끝없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 작은 부대는 상이군인(傷痍軍人)들로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팔과 다리를 잃어버리거나 눈 혹은 몸뚱이 한 부분을 잃어버린 군인들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그들이야말로 개선 행렬의 진정한 스타들이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삶이 끝나고 천지(天地)의 주인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 앞에 서는 그날에는 앞의 상이군인(傷痍軍人)들처럼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았던 사람들이 바로 이 시기의 진정한 주인공일 것이다. 고로 이 시기에 우리를 찾아오실 주인공께선 잘 나고 많이 가진 자를 위해 오시는 것이 아니라 못나고 헐벗은 자를 위해 오시는 만큼 우리 역시 빛으로 찾아오실 주인공께서 오시는 참뜻을 깨닫는 한편 이 시기의 진정한 주인공이 될 준비를 갖추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