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현대순교의 길 | 2023년 순교자성월 맞이 묵상글

松竹/김철이 2023. 9. 5. 13:26

현대순교의 길

 

                                                                            김철이 비안네

 

 

우리는 매년 구월이면 반복하여 순교자성월을 맞는다. 이뿐 아니라 순교자성월이 돌아올 때마다 나태해진 우리의 신앙생활에 채찍질을 가하는 뜻에서 박해 시대를 거쳐 영광의 순교 월계관을 받으신 한국 순교 성인 성녀들이 걸으신 피의 순교 길을 따라 걸어보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신앙생활에 임해보지만, 며칠 되질 않아 동상이몽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통에 매년 구월의 다짐을 물 흐르듯 흘려보냈던 체험을 숱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했던 신앙적 병폐를 떨쳐버리고 다시 한번 일어나 재산도 천륜도 목숨도 헌신짝 버리듯 하고 십자가의 길을 따랐던 순교 성인 성녀들의 삶을 우리 가슴에 쟁이는 뜻에서 주변에서 흔히 뵐 수 있는 몇몇 한국 순교 성인 성녀들의 순교의 길을 묵상해 보기로 하자

 

첫 번째로 소개할 순교 성인은 이호영 베드로인데 이호영은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신유박해 후 모친과 홀로 된 누이 소사(아가타)와 함께 입교했다. 부친이 대세를 받고 세상을 떠나자, 서울로 이사하여 열심한 신앙생활을 이어갔으며 이 덕분에 유방제(柳方濟) 신부로부터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천팔백십오 년 이월 한강 변 무쇠막에서 누이와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혹독한 고신을 당했으나 비명 한마디 지르지 않고 참아내어 결국 형조에서 극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때 결안(結案)의 사학죄인(邪學罪人)이라는 문구에 대해 천주교는 사학이 아니라 정도(正道)이며 거룩하고 참된 도(道)라 수결(手決)할 수가 없다고 사생결단으로 버티자, 포졸들이 강제로 수결시켰다.

 

극형 집행이 연기되어 사 년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누이 소사와 함께 한날한시에 순교하자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다가 천팔백삼십팔 년 십일 월 이십오 일 긴 옥살이 끝에 얻은 병과 옥고로 옥사(獄死)했다.

 

두 번째로 소개할 순교 성인은 정국보 프로타시오인데 정국보는 원래 개성의 유명한 양민 가문에서 출생했으나 벼슬을 하던 조부가 죄를 짓자, 부친과 함께 상민으로 신분을 감추고 상경하여 선공감(繕工監)에서 일하며 미천하게 살았다.

 

천성이 선량하고 겸허했으므로 서른 살 경 천주교를 알게 된 후 곧바로 입교하여 유방제 신부에게 성세성사를 받았고, 그 후로는 홍살문 근처에서 아내와 함께 세례성사를 받으러 상경하는 시골 교우들을 돌보았는데 자녀 열네 명을 가난과 병으로 잃어버렸고, 자신 또한 가난과 병에 시달리면서도 그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인내와 극기의 신앙 자세를 잃지 않아 모든 교우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던 중 천팔백삼십구 년 기해박해가 시작되자 그해 사월 밀고되어 아내와 함에 체포되었는데 포도청에서의 갖은 형벌과 고신은 참아냈으나 형조에서 반복된 숱한 고신과 형벌은 참아내지 못하고 배교하였으나 석방되자마자 배교한 것을 뉘우치고 형조에 들어가 배교를 취소하며 다시 체포해 달라고 간청했고 배교 취소를 거절당하자, 오 월 십이일 갖가지 고신의 여독과 염병으로 들것에 실린 채 형조판서가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형조판서에게 직접 자신을 체포해 주길 요구했고 그날로 체포되어 오 월 이십일 포청에서 곤장, 이십 오도를 맞고 이튿날 새벽에 순교했다.

 

세 번째로 소개할 순교 성녀는 김아기 아가타인데 김 아가타는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전혀 신앙을 모르고 살다가 친정 언니의 열심한 권면으로 늦게 천주교를 알게 되어 교리를 배웠는데 기억력이 나빠 십 이단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지만, 하느님을 알고 믿고자 하는 열의는 대단하였다.

 

이다지도 큰 열과 성을 다해 교리를 배우던 중 천삼백육 년 시월 김 아가타는 김업이 막달레나, 한 아기 바르바라 등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체포되었다. 포도청의 교리에 관한 질문에서 김 아가타는 "나는 오직 예수, 마리아밖에 모릅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했고, 갖은 혹형과 형신을 이겨낸 후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에 갇혀 있던 교우들은 예수, 마리아밖에 모르는 김 아기가 왔다고 그녀를 반겨 맞아 주었다. 그 후 형조에서 극형을 선고받은 김 아기는 형 집행의 유예로 삼 년을 옥살이하던 끝에 옥중에서 대세를 받고 천팔백삼십구 년 오 월 이십 사일 여덟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이에 반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순교적 삶은 어떠한지 살펴보기로 하자. 엄밀한 의미의 순교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증거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현대의 상황은 대부분 피의 증거를 요구하는 박해의 시대는 막을 내린 바 있다. 첫 3세기의 잔혹한 박해가 끝난 후 교부들과 신도들은 순교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아일랜드 수도원에서는 엄밀한 의미의 순교를 적색순교(赤色殉敎) 즉 피의 순교라 하고, 반면에 현실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뜻에 충실하며 속죄와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것을 녹색순교(綠色殉敎) 즉 땀의 순교라고 일컫는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처럼 피의 순교를 당할 위험은 없어졌으나 날로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올바른 가치관의 부재와 혼돈 속에서 '땀'으로써 그리스도의 진리와 삶을 증거해야 할 소명은 더욱 커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순교 성인들의 순교 정신과 투철함으로 무장했던 신앙심을 우리의 삶의 목적과 거울로 삼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그 역할을 다하는 땀의 순교는 오늘날 더욱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이것이 순교자성월을 기념하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삶의 자세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