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산다
최상훈 디모테오 신부님(서운동 본당)
사순 제5주일입니다. 눈앞에 다가온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바라보면서, 오늘 독서와 복음은 교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파스카 신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줍니다. 예수님을 통한 신앙 생활이란 막연한 결심, 아니면 단순히 ‘잘 살아야 하는데…’가 아니라 파스카 신비를 이해하고 그 삶으로 초대받는 신비의 여정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축제에 예배드리러 온 그리스 사람 몇 명이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라고 청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만나서 얘기하지 않으시고 마치 독백처럼 밀알 이야기를 하십니 다. “밀알 하나가 떨어져 죽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인생의 본질, 예수의 정체, 파스카 신비는 인간의 언어로 전달될 수 없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자아(ego)는 자기를 보호하고 고수하려는 강력한 본능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동시에 인간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는 ‘참된 나를 찾고 싶습니다.’와 동의어가 아닐 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참된 자아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강의를 들어서도 아니고 참된 자아 는 다른 사람의 인격을 향해 개방될 때 실현됩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오늘날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에게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겠습니 까? 문득 든 생각이 혁신적인 교리서를 만들어 내고, 교리학교나 성경학교를 많이 만들어 강의 수준을 높이고, 훌 륭한 강사들을 양성시키는 방법을 마련해야겠지요. 이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이겠지만, 더 본질적 인 교회의 응답은 파스카 신비를 사는 것, 교리 지식 뿐 아니라 썩는 밀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그리스 사람의 청원에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은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격적 전수,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썩는 밀알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곧 파스카의 놀라운 신비가 다가옵니다. 죽어야 산다는 신앙의 역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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