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부터 먹고 보자
저는 은평구 응암역과 역촌역 사이에 위치한 ‘밥집알로’ 라는 식당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자립준 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에서 퇴소한 청년들을 통칭하는 말 입니다. 이들이 저녁 한 끼를 든든히 먹으러 오는 밥집알로 는 말이 식당이지 가정집을 임대하여 청년들과 만나는 곳 입니다. 밥집알로에서 '알로'는 예수회 수도자로 살다가 어 린 나이에 하느님 곁으로 간 알로이시오 곤자가(1568~1591) 성인의 이름에서 왔습니다. 그가 청소년의 수호성인이라 의미 있었습니다. 게다가 응암역 근처에 이미 자립준비청 년들의 모임 공간 ‘까페알로’가 있었기에 이름이 서로 잘 어 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까페알로는 자립준비청년들의 사랑방 같은 기능을 염두 에 두고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예상과는 달리 청년들 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문을 연 이유도 있었 고, 청년들의 기본적인 관심사를 확인해 볼 여유 없이 문을 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2021년 한가위 명절 연휴에 소규 모의 청년들을 까페알로에 모아서 간담회를 열었고, 까페알 로에 요청하고픈 활동이 뭐가 있을지 함께 고민했습니다. 이 때 보편적인 지지를 얻은 내용이 밥을 함께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까페알로는 주방 시설이 작았기에 우리는 밥집을 위한 공간을 하나 더 얻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청년들이 성인의 나이가 되면 양육시설을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립준비청년들의 외로움 탓에 드러나는 여러 사회적 현상들은 이들의 퇴소 연령을 늦춘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가장 좋 은 방법으로서 자립준비청년들이 시설을 떠나지만 멀지 않 은 곳에 서로 따로 살면서, 일정한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만 나고 생활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까페알로, 밥집알로가 시설을 떠난 청년들이 가 장 많이 흩어져 살고 있는 은평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밥 집알로에 찾아오는 고객들 중에는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해 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밥집알로는 함께 밥 먹기를 바라 는 청년들의 바람을 담고 있고,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요 보호 청년들을 위한 집입니다. 저와 봉사자들은 함께 식사 하며 청년들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청년들의 살아가는 이 야기를 들으며 그들을 알아갑니다. 밥을 함께 먹는 것보다 더 따스한 정서 지원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수님 께서 성찬의 전례를 선물로 남겨주신 것도 우리의 몸과 마 음을 살리시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아듣게 됩니다.
밥집이 문을 연 지 두 해가 다 되어가는 요즘, 까페알로 에도 젊은이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골치 아픈 거 싫어 하고 대략 본능에 따라 살아가던 자립준비청년들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철학적인 질문과 옛날 이야기로 풀어가 는 교양 교육 등을 중시하게 되었을까요? 일 년여 동안 우 리가 함께 밥을 먹고 나니 다른 곳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 듯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제가 생각하던 교양보 다는, 함께 밥을 나누는 것이 먼저임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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