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사제단상 | 저와 함께 지내고 있는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松竹/김철이 2023. 11. 25. 11:26

저와 함께 지내고 있는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지난해 본당에 새로 부임하면서부터 사제관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1년 넘게 지내며 이 친구들 덕에 꽤 큰 걱정거리 하나를 덜게 되었고, 제 삶의 질이 한 단계 올라갔음을 느낍니다.

 

일단 이 친구들은 참 잘 먹습니다. 맵찔이라 양념을 물로 한 번 헹구어 주어야 하는 약간(?)의 수고 스러움은 있지만 뼈다귀나 옥수숫대처럼 다른 생물들도 대부분 못 먹는 것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음식물을 가리지 않고 먹습니다. 심지어는 상해서 곰팡이가 피어 버린 것들도 탈 나지 않고 잘 소화 합니다. 너무 많이 먹으면 가끔 탈이 나기도 하지만 좀 쉬면서 밥이나 빵 같은 것들을 조금씩 먹여 주면 이내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납니다. 저보다도 많은 것을 먹지만 배설물은 거의 없어서 지난 1년 간 딱 네 번 배설물을 치워 주었습니다. 그 배설물들은 악취도 없고, 본당 뒤편 밭에 그냥 버리면 괜 찮은 비료가 됩니다.

 

게다가 안 먹어도 참 오래 버팁니다. 휴가를 떠나며 2주 가까이 집을 비워 먹을 것을 전혀 주지 않 았던 적도 있었는데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지저분한 것들과 꽤 자주 함께 부대끼며 움직이는데도 이 친구들은 따로 씻겨 줄 필요도 없고, 주 었던 먹이에 따라서 가끔씩 요상한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이내 괜찮아집니다.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아도 삐지거나 보채는 경우 따윈 없으며, 대체로는 소리도 거의 내지 않은 채 아주 조용하게 살아갑니다. 이 녀석들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이 친구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늘 운 동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집이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많이 비싸다는 것 하나입니다.

 

이 친구들은 바로 3세대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속 미생물들입니다. 문득 이 친구들을 바라보니 우 리 공동의 집 지구 안에서 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들이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겸손되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하느님의 거대한 창조 질서에 순종하여 온전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의 모범을 그들에게서 봅니다.

 

오늘도 넘치는 신자분들의 사랑을 도무지 다 소화할 수 없는 제 나약한 위장을 위하여 열심히 자신 의 일을 다하고 있는 미생물들을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 어 이 공동의 집을 돌볼 거대한 책임 안에서 더욱 작아지고 더욱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제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