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종교가 없었다. 지난 20여 년간 그렇게 생각해 왔 다. 중학생 때 할머니 손에 이끌려 가족을 대표하여 성당을 다니긴 했다. ‘아가다’라는 세례명을 얻고 성 당활동을 활발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나 를 앉혀두고 통보했다. 엄마와 이혼할 것이며, 이혼 과 동시에 우리는 새어머니 집에서 살 것이라고. 이 혼과 재혼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하루아침에 낯 선 동네에 있는 새어머니 집에서 살게 되었다. 공포 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에게 순응하는 게 당연했던 나는 싫다는 소리 한번 못했다. 숨죽인 채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내 안식처였던 본당과 갑작스레 헤어지면서 종교를 향한 마음도 닫았다. 그땐 무엇에게도 마음을 주기 싫었다.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파주 운정으로 이사를 왔다. 날 사랑하는 남편과 강아지 같은 아이 둘이 내 곁에 있으니 이 정도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이었다. 집 앞 공원 나무들 사이로 뾰족한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당 지붕이었다. 이사 온 아파트 바로 앞에 성당이 지어진 것이다. 그 앞을 산책하고, 출퇴근하면서 힐끔힐끔 성당 지붕을 쳐다봤다. 괜 히 지붕을 바라보고 싶었다. 20년 동안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던 생각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쳤다. ‘성당에 가고 싶다.’ 생각이 확고해지 고 나서 남편에게 슬며시 마음을 말했다. 평 생 종교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던 남편은 놀 랍게도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나도 집 앞 에 생긴 성당에 가보고 싶었어.”
처음으로 성전에 들어가 가족 넷이 나란히 앉았다. 알 수 없는 전율이 흐르며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무슨 감정인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울음을 터트리지 않으려 간신히 참을 뿐이었다. 그렇 게 첫 미사가 끝났다.
그로부터 우리 가족은 무엇인가에 이끌려 정신없이 여정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살았다. 아이들 먼저 유 아세례를 받고, 남편과 나는 성전에서 관면혼배를 올렸다.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한 남편은 같은 해 12월 크리스마스 전날 ‘대건안드레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최근 우리 부부는 같이 견진성사까 지 받았다. 이 모든 게 1년 안에 이루어졌다.
성당에 다니면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받 았다. 내 작은 일에도 축하한다며 손을 잡아 주시는 분들, 아침 미사를 오다니 장하다며 어깨를 토닥이 시는 분들이 있었다. 구역 청소를 가도 장하다며 칭 찬, 아이들과 손잡고 성당을 걷기만 해도 칭찬이다. 아빠보다도 아빠 같고 엄마보다도 엄마 같은 사랑 을 성당에서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따스 한 사랑이다. 나도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베풀고 싶 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 마음으로 지내 다보니 성당의 영상 촬영과 편집, 구역의 반장, 헌화 회 일을 하게 됐다.
성당 지붕을 다시 올려다본다. 벚꽃들 사이로, 초록 색 나뭇잎들 사이로, 노란 단풍들사이로, 소복이 덮 인 눈 사이로 사계절 내내 날 지켜보던 성당 지붕. 이 제는 안다. 그것이 길 잃은 어린양인 날 지긋이 바라 보던 예수님이셨음을. 언제든 내게 오라고 하시며 두 팔 벌리고 기다리시던 품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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