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만인의 어머니 | 2023년 성모성월맞이 묵상글

松竹/김철이 2023. 5. 1. 13:31

만인의 어머니

 

                                                                              김철이 비안네

 

 

이십여 년 전 안동교구에 잠시 머물던 시절 겪었던 체험담인데 홀로 가난하게 늙어 가시는 외로운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착한 이웃들과 본당 교우들이 자원봉사자와 가사도우미가 되어 드렸지만, 할머니의 신상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자에게 벗이 되어 주라는 말씀을 따르는 교우들이 말없이 머리 잘라드리고 목욕시켜 드리고 때때로 밥을 챙겨드리며 말동무가 되어드렸는데, 때가 된 어느 날 노환으로 쓸쓸하게 운명하셨다. 한 달에 한 번씩 봉성체(奉聖體)를 하시면서 하느님 나라와 인연을 맺고 사셨기에 장례미사로 보내드리는데, 장례미사가 봉헌되던 중 까만 양복을 입은 신사가 까만 승용차를 몰고 가족인 듯한 사람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할머니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갑자기 가슴이 미어지는 서러움을 느껴야 했다. 사연이야 있었겠지만, 왠지 야속하고 허전할 만큼 슬펐다. 잘난 아들의 고결(高潔)한 품위를 지켜주시느라 끝내 말없이 돌아가신 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면서 신은 언제 어디에나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유대 격언이 떠올랐다.

 

어느 영성 서적에서 읽은 내용인데 스물세 살의 한 처녀 가사도우미가 독거노인인 할머니를 돌보아 드리던 어느 날 임종하는 자식 하나 없이 할머니가 외롭게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지 열흘쯤 지나서 미국에 살던 할머니의 아들이 가사도우미 처녀가 다니는 직장으로 찾아와 가사도우미 앞에 무릎을 꿇고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라며 펑펑 울더라는 이야기였다. 그 도우미가 쓴 회고록 말미에서 할머니를 통하여 인간을 용서하고, 인간과 함께 슬퍼하는 자비로운 신의 섭리를 깨닫게 됨이 할머니가 남겨주신 큰 선물이라 했다.

 

가만히 성모 마리아를 떠올리며 어머니라고 불러보자, 육신의 어머니를 부르듯이 실감 나게 다가오시지 않는가? 사람마다 어머니께 대한 신뢰와 의탁이 다르겠지만, ‘어머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금세 뜨거워지는 놀라운 마력을 지니고 있음이다. 성모 마리아도 우리 육신의 어머니와 똑같이 어머니이다. 단순히 영적으로만 어머니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가 어머니라고 불러 주시기를 기다리시는 우리의 참 어머니이시다.

 

우리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 순간 어머니라는 단어가 지닌 놀라운 마력은 우리 안에서 신비롭게 작용하는데 어머니라는 이름을 부르면서 가만히 그 안에 머물면 포근함과 평화의 봇물이 서서히 가슴으로 차오르면서 깊은 쉼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오랫동안 어머니 마리아를 떠올릴 때면 늘 가슴이 저며 오는 이름이었다. 웃으시는 모습보다는 늘 고통을 짊어지시고 우리를 위해 눈물 흘리시는 모습으로 그렇게 내 마음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늘 마음 안에 올바로 살지 못한 것 같은 마음 죄의식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선뜻 어머니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어머니에게 다가가기가 늘 망설여졌다.

 

전 세계 코로나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부터 깨닫게 된 것인데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기도드리는 중에 어머니의 마음은 단순한 아픔 이상을 능가하는 큰 사랑이라는 것을, 그분의 사랑은 바다와 같이 깊고 드넓은 사랑이고 그 사랑 안에 머물면 편안한 영적 휴식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엄마의 품 안에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듯이 우리도 삶 안에서 지치고 힘들 때, 어머니에게 가서 그분 안에 머물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쉼이 되어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솟아난다는 진리를 깨닫지 않았든가! 우리가 서로 각각 다른 마음가짐이나 모습으로 어머니에게 다가간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을 지닌 분이다. 누구나 그분 안에 머물 수만 있다면, 편안한 쉼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어머니 앞에 앉은 자녀의 하나로 자기 모습을 바라보자, 어머니 앞에서는 숨길 것도 없고, 토로하지 못할 것도 없질 않은가? 우리는 여러 가지 걱정과 불안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쓸데없는 기우에 사로잡히는가 하면, 실제로 근심스러운 일들이 생기고 마음이 우울하거나 외로움에 젖어 들곤 한다. 그냥 어머니에게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자. 우리를 세상에 낳아주신 친모(親母)께 털어놓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