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엄마

松竹/김철이 2022. 5. 18. 01:25

엄마

 

                                                                              김철이 비안네

 

 

 

 세례 후 한참 불타오르는 열성으로 기도와 묵상에 빠져있을 이십여 년 전의 체험담인데 오전 기도 후 성경을 읽고 있을 때였다. 평소 그다지 가깝게 지낸 이웃이 아닌 옆집 아낙이 현관문을 삐죽이 열고 고개를 문 안으로 들이밀며

 

삼촌! 우리 애들 잠시 돌봐주실래요? 급히 어딜 다녀와야 하는데 애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어요.”

 

 거절하기엔 아낙의 표정이 난감해 보여 유치원생 전후의 고만고만한 아이 셋을 맡았는데 제 신변처리조차 간신히 해낼 처지의 내가 아이 셋을 혼자 돌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기도와 묵상은 죄다 포기한 채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어야 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안겨주고 간 인형과 막대 사탕을 소일감 삼아 때론 칭얼거리기도 하고 엄마의 존재를 잠시 잊기도 하며 나름 잘 놀았다. 반나절이 흐른 후 애들 엄마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애들보다 더 반가웠던 내가

"얘들아, 엄마 오셨다!"

하는 소리에 품에 꼭 안고 있던 갖가지 인형과 남은 막대 사탕을 죄다 버려두고 엄마를 따라 불이 나게 달려가 버렸다.

 

 이웃집 아이들이 가버린 현관문 앞에서 동그마니 남은 인형과 막대 사탕을 내려다보며 깊은 묵상에 빠졌다. 과연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

이백여섯 개의 뼈를 추려 지팡이 삼고 십여만 개의 머리털을 뽑아 짚신을 삼아 드려도 다 갚지 못할 모친의 드높은 은공을 입고도 엄마의 드높고 드넓은 사랑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그 아이들에겐 엄마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름이었겠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만큼 소중한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곱씹어 봐야겠다.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우리에게 있어 그만큼 소중한 것은 그 무엇일까? 죄다 잃어도 괜찮을 만큼 놓아 버리고 달려갈 수 있는 그것이?

 

 평범한 우리 세속사와 같은 어머니이지만, 결코 우리와 같지 않은 성모 어머니의 일생을 통해 우리가 영혼에 새겨야 할 것은 무엇이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묵상해 보자. 십자가상에서 내려진 상처투성이 아들의 싸늘한 시체를 받아 안은 어머니의 고통, 피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도 눈물을 삼켜야 할 가슴 먹먹함, 이 두 가지 묵상 거리는 우리가 평생을 두고 묵상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우리 교회는 매년 오월을 맞아 특별히 성모님의 믿음과 주님께 향한 드높은 사랑을 더욱 깊이 묵상하도록 인도한다. 보통 성모성월을 맞아 각종 신심행사를 통해 성모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성모성심(聖母聖心)의 생애를 더불어 묵상하며 지낸다. 이에 우리는 끊이지 않는 묵주기도를 통해 삼위 하느님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고, 성모님의 믿음을 닮아가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천 년 전 갈릴래아 나사렛 시골 마을의 마리아라는 한 여인은 여니 여인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갔다. 아울러 하느님 구원의 날을 고대하며 생활했던 삶의 모습도 우리와 닮아있다. 이러한 한 시골 여인을 통해 하느님께선 드높고 특별한 당신의 구원 섭리를 드러내셨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인의 몸을 통해 잉태되어 이 세상에 아기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하신 사건이다.

 

 이 구원의 섭리는 마리아가 특별하고 세상 그 누구보다 뛰어나고 특별한 삶을 살았다기보다, 하느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시어 이루어진 일이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드높고 거룩한 섭리를 받아들여야 했을 땐 몹시 당황스럽고 두려웠을 것이다. 남성(男性)을 몰랐던 처녀인 몸으로 아기를 잉태한다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론 받아들일 수도, 생각하거나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며 천사의 알림에 응답하셨다. 걱정과 근심 불안함을 떨칠 순 없었지만, 성모님의 군말 없는 응답은 오롯이 하느님의 뜻에 순명(順命)하며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셨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한 성모님의 믿음을 우리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봉헌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도 성모님을 닮아 묵주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신비와 성모님의 믿음을 깊이 묵상하는 뜻깊은 한 달을 보내며 묵주기도를 통하여, 급변하는 코로나19 상황을 보내는 힘겹고 고통스러운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끊이지 않는 기도의 징검다리를 놓아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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