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 삶과 영적 삶
김철이 비안네
바리새인(고대 그리스어: Φαρισαῖος 파리사이오스)은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시대에 존재했던 유대교의 경건주의 분파, 중간계급 평신도 경건주의를 가리킨다. 그들은 본디 정치적 목적의 집단이 아니라 주로 학자와 경건한 신자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가리켜 세상으로부터 더러운 존재들로부터 분리돼 아주 청결하고 깨끗한 존재로 격상시키며 큰 자부심을 지니고 살았다. 그들은 당시 대중적 지지를 크게 받은 바 있다.
기원전 100년경 바리새인들은 유다 교를 민주화(民主化)로 이끌고 이를 통해 성전 대사제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길고 오랜 투쟁에 돌입했었다. 율법학자(律法學者)들은 잘나가던 시절 당시 유다 사회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녔던 입권기관(立券期間)이자 사법기관(司法機關)이며 고대 유대의 최고 의결 기관이었던 예루살렘의 산헤드린(sanhedrin)에서 일했었다. 그들은 구약성경의 필사자 또는 편집자로 활동하며 구약성경의 정경을 확정했고 성경 원문의 순수성을 지키고 보존하려고 숱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예수님 시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나름대로 그 시대를 배경으로 내로라하며 한 가락씩 했던 신분의 사람들이었다.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 상류층(上流層), 식자층(識者層)에 속했었고, 전체가 죄다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그러다 보니 그들은 목에 깁스를 한 듯 힘이 잔뜩 들어간 채 뻣뻣하게 살았었고 쓸모없는 우월감에 젖어 살았었다. 이렇게 나름대로 잘 나가고, 자칭 경건하고 훌륭하다고 여겼던 신분의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사정없이 까대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님이셨다.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의 시각에서 봤을 때 하류층(下流層)이자 근본 없는 신분의 소유자가 훌륭하고 경건한 신분의 소유자인 자신들을 무참히 까댔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지 코앞에 보듯 하다.
시시때때로 예수님께 영적 까임을 당하던 그들은 따로 모여 대책 회의를 개최했고, 계속되는 예수님의 쌍날칼 같은 말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단 한 가지 어떻게 해서든 제대로 된 꼬투리 하나를 잡아 예수님을 고발하기로 작정했다.
끝내 드높아지고 싶은 자신들의 권위와 위상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의 외아들을 십자가상의 생죽음을 향해 몰고 가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의 말씀, 그 말씀이 너무나 강경하고 위엄에 찬 어조라 그들이 받아들이기엔 힘든 점도 없지 않았으나 예수님을 없애지 못해 안달이 났던 그 시점이라도 늦지 않으니 빨리 하느님께로 돌아서라는 예수님의 눈물겨운 말씀은 더는 그들에겐 쇠귀에 경 읽기가 되었다.
결국, 가장 하느님을 잘 알고 가장 하느님을 사랑해서, 자칭 하느님의 장자라고 여겼던 그들은 가장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고 하느님 구원의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말았다. 이러듯 한 장면 한 장면 살펴본다면 예수님은 세계 최초의 진보운동가(進步運動家)이자 신분 제도(身分 制度)를 허물은 신분 제도(身分 制度) 폐지(廢止) 운동가(運動家)셨음을 능히 느낄 수 있음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늘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자기 성찰일 것이며 일상생활 가운데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그리고 이웃들을 통해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가슴 아프지만, 내 인생의 부정적인 경험, 쓰라린 체험을 통해 전해오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이고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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