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영적 무기

松竹/김철이 2022. 4. 27. 01:25

영적 무기

                                                                     김철이 비안네

 

 

 한 세상 살아가면서 누구나 예외 없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 감당해내야 할 십자가 가운데 가장 큰 십자가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나이를 먹어가고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력으로 정지시킬 수 없는 세월의 흐름에 의해 세상 무대 뒤로 사라져가고 점차 세상의 주역에서 조연으로 세상 중심의 외곽으로 밀려나야 하는 현실, 더불어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고독이나 소외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충만했던 삶의 일선에서 물러나고 기력이 쇠하고 병들어 친숙히 지내며 사랑하던 이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언젠가 온종일 기다려도 아무도 찾아줄 사람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느낄 소외감이란 참으로 큰 십자가일 것이다.

 

 더 한 현실은 노환에 시달리며 사회적으로도 가정 내에서도 아무런 역할도 기여도 못 하며 때로 상황이 한층 악화되어 그 누구의 도움 없이는 거동이 어려울 때, 아무리 손사래 쳐도 남은 것이라곤 죽음뿐일 때 그 비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겐 그런 충격의 무게는 훨씬 가벼운데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귀에 못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신앙의 진리는 그 무엇인가?

 

 아무리 고통스럽고 소외감을 느낀다 해도 인내로 견디면 세상 소풍 끝날 더 아름다운 세상, 더 충만하고 행복한 세상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곳엔 더는 끔찍한 고통도 무거운 십자가도 없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느님 자비 안에 사랑했던 모든 이들과 영원히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행복해하며 기쁜 일상 속에 여유로운 노년을 즐길 수 있음이다.

 

 우리 교회 역사 안에서 노년이라는 고통을 너무도 영웅적으로 잘 극복한 분이 한 분 계시기에 소개하자 한다. 그분은 바로 그 유명한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뉴먼 추기경님이시다. 추기경님은 처음엔 성공회 사제로 서품됐다가 긴 영적 여정을 거쳐 가톨릭으로 회심해 훗날 추기경으로 서임됐으며 이후 2010919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20191013일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시성(諡聖)되어 성인품(聖人品)에 오르신 바 있는데 연세가 드실수록 추기경님의 기도에 대한 애정은 아주 컸다. 특별히 가톨릭 성직자들이 의무적으로 바치는 성무일도에 대한 그분의 애정은 정말 대단하셨는데 주로 시편으로 이루어진 이 성무일도를 너무도 좋아하신 나머지 이런 표현까지 쓰셨다.

성무일도는 내 기쁨의 원천이다.”

 

 더 많은 연세가 더 드시면서 문제가 생겼는데. 너무도 많은 독서와 집필을 하신 나머지 말년에 이르러 거의 실명 위기에 빠지게 되셨다. 그 순간 추기경님을 지척에서 간호하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만큼 그분께서 큰 실망과 좌절에 빠졌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신심이 그렇게 두터우셨는데 왜 실망에 빠지셨겠는가? 단지 시력을 잃음으로 인해 생기는 육체적인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더는 그분께서 그렇게 좋아하셨던 성무일도 기도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좌절도 잠시뿐이었다. 성무일도 대신 그분께서는 다른 영적인 무기를 손에 드셨다. 그 무기는 바로 묵주였다. 실명 후 추기경님께서는 묵주를 손에 드시고 온종일 묵주기도로 성모님과 더불어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는 관상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셨다.

 

 추기경님께서는 어떤 처지 어떤 십자가 앞에서도 단연코 한순간도 굴하지 않으시고 기도로서 하느님을 찬미했던 사람이셨다. 때론 받아들이기가 힘드셨겠지만, 십자가를 주시는 분도 하느님임을 인지해야 한다. 비록 우리가 지고 갈 일상의 십자가 무게가 지나치게 무겁다 한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우리 십자가를 떠받치고 계심을 기억하면 좋겠다. 우리 영적 주군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매일의 십자가를 완전히 제거해주시진 않지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우리와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면서 따뜻이 위로해주심을 자각하며 영적 무기를 손에서 떼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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