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유월이 오면

松竹/김철이 2022. 6. 8. 01:26

유월이 오면

 

                                                                 김철이 비안네

 

 

 우리는 매년 유월이면 예수 성심을 묵상하는데, 마치 유월 푸르른 하늘에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듯 강렬하고 뜨거운 예수님의 성심을 마주하게 된다. 본래 예수님의 성심은 그렇게 강렬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하시다. 하지만 들쑥날쑥하며 전 세계를 병 들여가는 코로나19 탓인지 요사이엔 왠지 그러한 느낌보다는 지치고 병들고 아파서 허덕이는 예수님의 성심이 자주 떠오른다. 사랑에 굶주리고 목말라 맥없이 쳐져 가시는 예수님의 슬픈 성심이 때로는 선을 넘어 한없이 죄스러운 심정에 감히 그분의 성심을 우러러보지 못할 지경이다. 숱한 세월 우리의 갖은 욕심으로 맺은 온갖 시기와 질투, 분노와 적개심, 경쟁과 다툼, 분열과 대립, 무관심과 불성실의 열매들로 예수 성심에 가했던 무지한 폭력을 떠올리며 자가 반성의 유월을 살자

 

 현대 사회 그 어느 곳에서도 참 포도나무에서 우러나오는 참사랑의 열매를 찾아보기가 드문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선 갖은 인고로 고혈을 짜내며 아파하는 또 다른 예수 성심이 존재하는 만큼 십자가상 예수 성심에서 거듭해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피와 물의 성사를 무참히 짓밟고 무시했던 행위는 없었는지 살아온 우리의 삶을 한 번쯤은 되돌아보는 유월을 살자

 

 이천 년 전 십자가상에서 숱한 피와 물을 쏟으시며 세우신 구원의 성사가 무색할 정도로 변질되고 타락한 우리의 모습을 각자의 양심에 비추어 보며 온갖 시기와 질투, 분노와 적개심, 경쟁과 다툼, 분열과 대립, 무관심과 불성실들로 예수 성심에 더 큰 대못을 박고 있진 않은지 곱씹어 묵상하는 유월로 삼자

 

 지극히 자애로우신 예수 성심께서는 우리 각자의 귓전에 너무나도 애절하게 타이르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리니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흩어짐 없이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러 당신의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자양분을 받아먹고 성장해 나아가길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룩하신 은총에 보답도 못 한 채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방법을 올바로 깨닫지 못한다. 그저 성전 성합(聖盒) 안의 성체 앞에 혹은 예수 성심의 자비로운 성상 앞에 무릎 꿇어 몇 순간 기도하는 행위로 그분 사랑 안에 늘 머문다고 자가최면(自家催眠)을 걸 뿐이다. 사랑의 근원이신 예수 성심께서 매 순간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용서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은총을 청할 뿐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주님 앞에 이 몸은 죄인이라고 고개를 조아리며 자비를 청할 뿐, 성심께 돌려드리는 것은 변함없는 온갖 시기와 질투, 분노와 적개심, 경쟁과 다툼, 분열과 대립, 무관심과 불성실의 열매들뿐이면서. 우리는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녕 깨닫지 못하고 있음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몰라서 예수 성심의 사랑 안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왜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를 내면으로부터 절실히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거룩하신 예수 성심사랑 안에 머물지 못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님께서는 각자의 전부를 노리는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나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입히고 모욕을 가한 이들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성인 성녀가 아니고서야 하늘이 두 쪽이 난다 한들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당한 만큼 똑같이 되갚아 주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사랑이라니? 눈 감으면 코 베가는 험하고 야박한 세상사에서 사랑 타령했다간 바보 소리를 동반한 갖은 조소(嘲笑)를 예수 성심 십자가 지시듯 한 몸에 다 떠안을 건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세상 실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세상을 살다 마음이 무거울 때 차라리 주님 앞에 잘못을 빌지언정 세상의 조소 거리가 되는 선택은 쉽게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아직은 사랑할 몸가짐을 갖추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예수 성심이 좀 더 상처받으시고 고혈을 좀 더 쏟으시더라도 좀 더 참고 아파하며 봐달라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신앙은 이기적이고 모순투성이라는 것이다. 내게 잘못한 이들을 값없이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없음을 우리 영혼 속에 쟁여야 할 것이다.

 

 예수 성심 성월은 예수님의 성심을 한층 더 깊이 묵상하는 달이다. 하느님을 사랑하셨고 인간을 사랑하셨던 그분의 생애를 묵상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가까이하셨고, 의인이든 죄인이든 차별을 두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소유가 많건 적건 개의치 않으시고 모든 사람을 만나 주셨다. 이즈음 우리는 이다지도 큰 사랑을 닮으려 애쓰고 우리 탓에 늘 아파하실 예수 성심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해 드릴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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