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2021년 성탄 맞이 묵상글_바보의 영성, 걸레의 영성

松竹/김철이 2021. 12. 8. 01:41

 

바보의 영성, 걸레의 영성

 

                                                                                김철이 비안네

 

 

 성탄은 올해도 우리 한가운데 다가와 있지만, 우리가 당면해 겪고 있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성탄 전례는 반복해서 시작된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시련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우리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 전례를 맞이해야 한다. 연이어 엄청난 고통과 상실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정적, 사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계속될지 기약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기 예수님의 성탄 앞에서 무슨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장차 수천 대의 매질을 당하고 모멸스러운 십자가형으로 돌아가실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난감하고 곤혹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세상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 만민의 회개를 위해 벌거벗은 갓난쟁이 모습으로 다가오실 구원자의 앞에서, 매년 거듭되는 성탄의 의미는 현재 우리가 사는 코로나 시대에 맞춰 계속 재해석되어야 하고 성찰되어야 한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은혜로운 대사건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을 지어내신 하느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인성을 지닌 사람이 되시고, 특별히 이 시기에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각자를 만나러 오신다는 것이다. 오늘의 어둠이 아무리 짙다 할지라도 내일 또다시 빛이 어둠에 가려진다는 것도 아니며 하느님께서는 항상 당신 백성과 동행하시는 한편 아픔과 상실, 고통의 순간에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신다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 곧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다.

 

 때론 고통과 시련은 우리를 더 깊은 내면으로 향하게 만들고 더 진지한 신앙의 여정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코로나 시대에서 각자가 맞아드려야 할 갖가지 혹독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현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겠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밝아올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에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훨씬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갖가지 고민과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 전 세계 수많은 청소년의 외침, 시시때때로 음습해 오는 생계의 위협에도 하소연 한마디 할 수 없는 2,590만 명의 난민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곳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탄생하시는 아기 예수님을 경배해야 하겠다.

 

 성탄을 맞이할 우리가 영혼에 새겨 각별히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성탄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를 묵상해 본다면 성탄절은 참으로 생애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을 충족시키는 성탄 선물, 근사하게 차려진 성탄 파티, 달콤하고 로맨틱한 성탄 구유와 전례 등등 성탄은 세상 그 무엇보다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추억거리들이다. 그렇지만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던 베들레헴 마구간에는 근사하고 로맨틱한 분위기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당시 현실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정했다. 예수님 탄생의 분위기는 비참하고 서글펐다. 예수님 탄생 당시 사회적 상황 역시 암울했다.

 

 하느님께서 욕심 많고 죄 많은 이 세상에 육화 강생(肉化降生)하신 시기는 만민이 행복해할 태평성대 시대가 아니라, 가장 암울하고 어려운 시대, 로마 식민 통치 시대, 가장 불안한 시대, 예수님 탄생에 앞서 예수님의 탄생을 지우기 위해 어린이 학살을 명령했던 헤로데 안티파스 (herode antipas) 영주가 갈릴리와 페레아를 통치했던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다. 아울러 성탄을 맞이할 이 시기에 이러한 모습들을 묵상의 쟁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던 최초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황제처럼 강력한 지배자의 모습으로도 오지 않으셨으며 지혜로 똘똘 뭉친 현자의 모습으로도 오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탁월한 능력을 지닌 해결사의 모습으로도 오지 않으셨다. 스스로 힘으로는 머리조차 옆으로 돌릴 수 없는 갓난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음을 인지하고 하느님 인류 구원의 역사는 바로 이 시점 우리 한가운데 우리가 겪고 있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현실 안에서 시작이 되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 역시 이 어려운 코로나 시대에서 적지 않은 고통으로 가슴앓이하는 우리 각자의 안에 이루어질 거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세상 부모님들은 물질적인 보상이 없더라도 모름지기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그 숱한 희생 속에서 큰 기쁨을 얻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집중하고 그 무언가를 주기 위해 노력할 때 기쁨이 자생한다. 나보다 좀 더 어려운 이웃을 찾아 도울 때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내 마음이 채워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타인을 기쁘게 하여 얻는 감정을 우리는 행복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들을 줄여서 말하기를 바보의 영성을 추구하는 자, 걸레의 영성을 실천하는 자라고 말한다. 언감생심(焉敢生心) 인간 세상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사건이 예수님의 탄생이자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이다.

 

 하느님께서 벌거숭이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드높은 뜻은 바보의 영성, 걸레의 영성을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시며 완성하러 오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같이 눈 뜬 시각장애인, 귀 연 청각장애인을 자청하여 주변에 굶주린 예수님, 헐벗은 예수님이 수두룩한데도 애써 눈 가리고 귀 막아 왔다는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인 이즈음 거듭해서 이어진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우리 주변에서 배고파하고 추위에 떨던 예수님을 솔선수범하여 몇 분이나 도와드렸는지! 우리 양심에 물어보기로 하자.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말똥 소똥 냄새 진동하는 마구간에서 탄생하심은 드높아지고 싶고 더 가지고 싶어 하는 우리에게 더 낮은 곳, 덜 가진 곳에 참사랑의 진리가 있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일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더 헐벗고 더 굶주린 예수님을 우리 주변에서 찾아봄이 좋을 듯싶다. 예수님 행하신 바보의 영성, 걸레의 영성을 닮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