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는 아무나 하나
김철이
"부모를 공경하는 효행은 쉬우나, 부모를 사랑하는 효행은 어렵다."라는 명언을 남겼고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가(道家), 사상을 담은 책을 지어낸 장자(莊子)의 교훈이 21세기를 쟁이고 있는 현대사에 있어 부모에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참사랑으로
효행을 행하는 자식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힘든 일이 아닐까!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지극한 효심이 하늘에 닿아 산신령이 호랑이로 화하여 내려준 산삼 두 뿌리로 양친의 병환을 낫게 했던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장흥리 효자 황기원(黃基源)과 같은 효자는 전무후무하여도 자신을 세상에 있게 해 준 부모의 재산을 탐내다 부족해서 제 부모 목숨마저 떨어진 헌신짝보다 업신여기는 불효자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야속하고 비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술로 인해 방탕한 생활을 하다 개과천선(改過遷善)한 어느 불효자의 실화를 이 장에 나누고 우리는 부모님께 어떻게 대했는지 반성해 보기로 하자. 여럿 날 함박눈이 내리고 혹한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해 겨울이었다. 반평생 동안 술을 아주 좋아했던 애주가 불효자는 전날 과도하게 마신 술의 숙취 탓에 속이 너무 쓰려서 평소 자주 드나들던 소고기 국밥집을 찾았다. 소고기국밥 한 그릇을 시켜놓고 해장 술잔을 멍하니 바라보며 쓰린 속을 달래고 있는데, 국밥집 출입문이 열리더니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한 중년 남자 어른의 손을 이끌고 조심스레 어정걸음으로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두 사람의 깔끔하지 않고 허름한 행색은 한 눈에도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사내아이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중년 남자는 사내아이의 아빠인 듯싶었고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인듯하였다. 그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멀리서도 금세 느낄 수 있을 만큼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금방 알아차린 국밥집 주인이 앉았던 계산대 자리를 박차고서 벌떡 일어나 사내아이와 중년 남자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이것 보세요! 얻어먹는 것도 염치가 좀 있어야지 원. 이렇게 손님이 없고 아직 마수도 하질 못했는데 재수 없게 아침부터 찾아오면 어떻게 해요. 다음에 와요."
소고기 국밥집 주인이 퉁명스럽게 막말을 내뱉자 먹먹했던지 말대꾸도 한마디 못한 채 한참을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내아이는 나가주기를 재촉하는 주인의 불같은 성화에도 침묵을 지키며 앞을 못 보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묵묵히 국밥집 홀 중간에 놓인 자리를 골라 앉았다. 국밥집 주인은 그제야 그들이 얻어먹으러 온 걸인이 아니라 손님의 자격으로 국밥을 사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어 아저씨! 소고기국밥 두 그릇만 주세요."
"응, 알았어. 그런데 얘야 이리로 좀 와 볼래?"
계산대에 앉아 있던 국밥집 주인은 손짓하여 아이를 불러 계면쩍은 미소를 지으며
"이걸 어쩌면 좋니?"
"아저씨! 왜 그러세요?"
"미안하지만, 지금은 국밥을 팔 수가 없구나. 네가 앉은 그 자리는 예약한 손님들만 앉을 자리라서 말이야."
걸인이 아니더라도 남루한 사내아이 부자의 행색 탓에 장사에 지장이 있진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상술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눅이 들어있던 사내아이는 국밥집 주인의 거짓말에 낯빛이 금세 시무룩 해졌다.
"아저씨! 빨리 먹고 나갈게요. 오늘이 우리 아빠의 예순한 번째 생신인데 우리 아빤 홀로 절 키우시느라 여태 소고기국밥을 드셔보지 못했는데 제가 내일이면 다른 가정으로 입양을 가게 되어 그전에 아빠께 소고기국밥을 드시게 해드리고 싶어서요. 아저씨! 제발 부탁이니 우리 아빠께서 정당한 손님 자격으로 국밥 한 그릇 마음 편히 드시게 해 주세요. 네?"
사내아이는 행여 잃어버릴세라 차디찬 손바닥으로 꽉 쥐어 눅눅해진 천 원권 몇 장과 한 주먹 가득한 동전을 꺼내 국밥값을 미리 계산하였다.
"알았다. 그럼 빨리 먹고 다른 손님들 오기 전에 서둘러나가야 한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서둘러 먹고 나갈게요."
아이는 코가 땅에 닿도록 국밥집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아빠가 앉은 맞은편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아이의 표정엔 왠지 모를 슬픔이 가득했다. 잠시 후 국밥집 주인은 소고기국밥 두 그릇을 사내아이와 아빠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는 계산대에 앉아 무심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빠! 제가 간 보고 양념장 넣어 드릴게요."
아이는 아빠의 국밥 그릇을 앞으로 당겨놓고 양념장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으로 숟가락을 가져가더니 재빨리 자기 국밥 그릇 속에 담겨 있던 몇 안 되는 고깃덩이와 내장 등을 죄다 떠서 앞을 못 보는 아빠의 국밥 그릇에 옮겨 놓았다.
"아빠! 이제 됐어요. 어서 많이 드세요. 그리고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 주인아저씨가 우리가 빨리 먹고 나가야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있댔어요. 그러니 어서 밥 뜨세요. 제가 깍두기 올려 드릴게요."
순간 수저를 들고 있는 아이 아빠의 두 눈 가득히 뜨거운 눈물이 고이는 듯싶더니 금세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계산대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국밥집 주인은 조금 전 자신이 행했던 행동과 언행에 대한 후회와 뉘우침으로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질 못했다. 이 눈물겨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애주가는 시각장애인 부자의 따뜻하고 훈훈한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느라 국밥을 한 술도 뜨지 못한 채 본인의 국밥 값과 사내아이 부자의 국밥값을 대신 계산한 뒤 아이에게 미리 받았던 국밥값을 되돌려 주라는 당부를 남기고 사내아이 부자보다 한 걸음 앞서 국밥집을 나왔단다. 숱한 세월 부모님께 불효한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며 반성의 눈물을 흘렸단다.
애주가가 며칠이 지난 후 우연히 듣게 된 사내아이 부자의 사연은 참으로 눈물겨웠다. 장애인 생활 시설에서 성장한 사내아이 아빠의 나이 쉰 살 때 생활 시설에 봉사 왔던 여성과 정이 들고 사랑의 씨앗이 움터 장애인 생활 시설을 퇴소하여 결혼까지 이어져 사내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는데 아이를 낳던 산모는 과다출혈로 아들자식을 한번 안아보지도 못한 채 아들자식과 영원히 만나지 못할 이별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아들자식을 엄마 없이 홀로 키우게 된 아이의 아빠는 본인의 몸도 성치 못한 남자가 혼자의 몸으로 젖먹이를 키우려니 갖은 고생이 말로는 표현이 어려울 지경이었단다. 다행히 편부슬하(偏父膝下)에서 자란 아이는 성품이 모나지 않고 주변의 칭송을 받는 아이로 자라줬는데 아빠가 오래전부터 앓아온 신경성 당뇨병이 심해져 신체 여러 곳에 심각한 후유증이 드러나 더는 본인이 아들자식을 돌보기란 역부족이라는 생각으로 아이의 아빠는 피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평소 친분이 있던 이의 가정으로 입양을 보내고 본인은 치료와 생활을 돌봐줄 장애인 생활시설로 재입소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마치 현대판 심청전을 방불케 했다.
그 후 애주가는 단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던 날이 없었던 자신의 생활 태도를 개선하여 술을 끊는 한편 오십 평생을 살면서 부모님께 불효만 저질러왔던 삶을 돌이켜 반성하며 부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나름대로 성심성의를 다해 효도했다고 한다. 물질이 넘쳐나는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라면 한 해의 겨울이 시작되는 이즈음 천금 만금을 다 주어도 살 수 없는 부모님께 어떤 모습으로 효행을 실천하는가에 대한 자기반성 계기의 시점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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