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우여곡절도 많고 희로애락 많은 것이 세상이라고… 그러나, 말이 쉬워 우여곡절이고 희로애락이지 막상 나의 눈앞에 내 몫의 숱한 우여곡절, 희로애락이 다가선다면 애써 고개 돌려 외면하지 않을 자 과연 몇이 되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평생 자신과 손잡고 동행할 갖은 애환과 사연을 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사람은 이 숱한 희로애락과 힘겨운 씨름을 하며 이겨내야 하고 이 인생사 씨름에서 이기든 지든 다 감수, 감당하며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본디 부강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백의민족 조상 대대로 따뜻한 마음과 정을 나누며 생활해 왔음은 굳이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능히 알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 하나 애써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나라 국민 가슴속엔 서로 나누며 도와주는 따뜻한 정(鄭)의 씨앗이 움터 피어났다는 것이다. 굳이 먼 세월 돌아보지 않고 나의 유년시절만 되새김질해보아도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 누구 하나 특별히 많이 가졌던 사람은 극히 드물었지만, 동서고금 어느 민족의 가슴속에 없었던 따뜻하고 온유한 정이 강을 내어 흘렀다는 것이다. 이웃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그 일이 마치 내 일인 양 손발을 걷어붙여 불행 중 다행이란 속설이 생겨날 만큼 그 불행을 감소시켜 주었고 이웃의 행복은 나의 행복인양 함께 기뻐해 주었다. 궂은일 좋은일 가리지 않고 서로 내 처지에 닥친 일처럼 여기니 설사 누구 한 사람 불행의 신이 고약한 심통을 부려 불행스런 사건 사고를 당한다 하여도 내 이웃이 당한 불행은 곧 나의 불행이며 외, 내적으로 아픔을 겪는 이웃이 생길시엔 그 아픔 또한 나의 아픔이고 시련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아파해 주었고 함께 울어주었다는 것이다. 불행을 당했던 하나의 마음에 열의 마음을 보태주니 아무리 큰 불행이라 하여도 불행은 열 이상으로 나누어지니 불행을 당한 이웃의 마음은 열 이상의 위로와 위안을 받았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그 시절 어른들의 입과 입을 통해 쉽게 들을 수 있었던 단어 중 하나가 멀리 사는 일가친척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사촌이 났다. 라는 말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암울했던 시절이라 삼시 세 끼 걸식했던 이도 많았고 차마 체면 때문에 남의 눈이 무서워 구걸만은 할 수 없어 수시로 보채는 배꼽시계를 물로 달래던 이도 많았고, 주린 배를 부여안고 피눈물을 절로 쏟아야 했던 이도 많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이들을 그냥 외면하며 버려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걸식하는 이를 위해 밥 안칠 때 쌀 한 종재기 더 앉혀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걸식하던 이의 얼어붙은 마음마저 녹여주었고 어떤 이는 굶주려 이웃을 위해 삼시 세 끼니를 가족처럼 한 밥상에 둘러앉아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뜨거운 정을 나누었다. 어디 이뿐이었겠는가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라 평소 따뜻한 정과 마음을 나누던 부모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점심밥을 먹지 못하던 학우에게 자신이 먹을 점심 도시락을 내주고 잠시 배고픔을 이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무허가 집이 철거를 당해 살이 절로 터지는 동지섣달 추운 겨울 날씨에 기약 없는 노숙을 해야 하는 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따뜻한 온돌방에서 언 몸을 녹여주던 아이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오복조림을 당하는 같은 반 친구를 위해 자신의 육성회비로 대신 내게 하고 부모에겐 육성회비 낼 돈을 잃어버렸다며 부모의 눈과 귀를 감추는 거짓을 자청하는 아이도 있었으며, 몇 년에 걸쳐 모은 저금통을 깨서 돈이 없어 소풍을 가지 못하는 같은 반 급우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봄 소풍을 갔던 아이도 있었다.
이다지도 정 많고 눈물이 많던 우리나라 국민 가슴이 언제부터인가 따뜻한 인간미의 가뭄에 메마르고 갈라진 논바닥처럼 정이 메마르고 눈물이 메말라 이웃에 도둑이 들어 “도둑이야!” 하는 외마디 비명만 듣고도 자다 말고 팬티차림으로 어디까지 도둑을 쫓아가 이웃의 궂은일을 내 일처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아파트 바로 옆집에 흉기를 든 강도가 들어 집주인의 매우 급한 비명을 듣고도 문을 박차고 나가 도와주기는커녕 열려있던 현관문마저 다급히 닫아버리는가 하면, 의료혜택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해산날이 되었으나 병원비가 무서워 병원에도 가지 못한 채 집에서 산고를 겪는 이웃을 위해 산파를 자청하여 아기를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노숙하는 여인이 해산날에 공원 벤치에서 심한 출혈을 하여 몹시 위험한 상황을 보고도 몸소 도와주거나 119구조대에 신고해 주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던 딸아이가 대변을 보고 싶어 한다며 공중화장실을 찾아 자리를 떴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심각한 이기주의 때문일 것이다. 이 시대는 경제살림은 물론 먹거리는 대풍의 시대인지 몰라도 정(情)과 인간미(人間±味)는 대 흉년 시대라는 것이다. 먼 훗날엔 어찌 변할지 모르는 일이지만 정과 인간미 대 흉년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시대별 가장 불행한 삶을 산다 하여도 과히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이 불행한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의 시린 가슴에 따뜻한 횃불이 돼주는 이들이 있어 그 따뜻한 가슴을 혼자 느끼기엔 너무 아쉽고 이들의 마음 씀씀이를 널리 알려 자기밖에 모르는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식은 가슴에 따뜻한 정과 인간미의 횃불을 짚이고자 이 장을 열지만, 그들이 나아가는 선행 길에 욕이 되고 장애가 되지 않을까 몹시 조심스럽고 두려움마저 느낀다.
야박한 세상에 작은 정의 불씨가 되고 인간미 실종의 시대 낭떠러지에 선 현대인들의 차가운 가슴에 인간미 흐르는 피의 선구자가 되고자 발 벗고 나선 이들은 제다 평범한 생김새를 지녔었다. 평범한 생김새에 걸맞게 지닌 직업 또한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었다. 평범함에서 행해지니 그들의 선행이 더욱 돋보였다. 그들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샘물은 누군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중증장애인과 소외된 노인들읊 비롯해서 그 밖에 뭇사람들의 손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계층의 이웃들이었다. 내가 그들을 만났던 것은 작년 세모를 며칠 앞둔 임진년 십이월 하순이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설립을 위한 준비과정 중 동래구 ILC 준비위원 중 한 지인이 내게 하는 말이 일명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이라고 하는 어느 사회 봉사단체에서 봉사생활 일 년을 정리하는 뜻에서 장애인과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을 위한 조촐한 잔치를 열고자 하는데 이 자리에 우리 동래구 ILC 준비위원들을 초대했다는 것이었다.
행사 당일 조금 일찍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행사장 역시 아~ 그 집이라는 상호가 붙은 평범한 대중음식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대중음식점은 봉사단체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의 회장님이 경영하는 가게였다. 행사장 앞에 장애인 택시 두리발을 세워 내리니 봉사정신이 몸에 밴 듯한 그들은 솔선수범하여 휠체어를 밀어주는가 하면 계단이 있어 불편한 곳에선 휠체어를 들어 옮겨주었다. 그들이 행하는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가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푸짐한 갖가지 음식과 사람의 정이 오가는 가운데 송년 잔치가 시작되었고 장애우와 어르신들은 한 해 동안 야박한 세상을 사노라 속알이하며 가슴에 응어리진 것들을 행사장 노래방 기를 통해 쏟아냈다. 흥이 무르익을 무렵 망가지려면 확실하게 망가지라는 속설을 대변하듯 봉사단 가족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 남녀노소 불문 곡절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각박한 세상을 사느라 절로 쌓인 마음의 벽을 죄다 허물었다. 또한, 그들은 청빈의 정신과 효 정신을 발휘하여 함께 자리했던 장애우와 어르신들께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가족들의 소개와 일 년 사업보고를 하는데 그들의 영혼과 육신은 제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과 늘 함께 있음을 피부로 능히 느낄 수 있었다. 매월 첫 토요일 연세 많으신 주위 어르신들께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는 걸로 시작하여 소외된 계층의 주택수리 전기, 수도, 난방 전반에 걸쳐 그들의 식지 않고 늘 따뜻한 인간미를 전했음을 한순간 감정으로 쉬 깨달을 수 있었다. 임진년(壬辰年) 용의 해에 외적 내적으로 적지 않은 시련과 아픔을 겪어야 했던 나는 그들의 살아 숨 쉬는 인간미를 접하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들의 모습과 표정에서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을 더 절실히 배워 깨달았고 한 마리 개미의 힘이라야 분명히 미약하고 보잘것없지만, 열 마리 백 마리 개미의 힘이 모여 합쳐지면 못할 일이 없고 이루지 못할 현실이 없을 거라고 믿어진다. 부디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미 한 마리의 능력을 발휘하고 한 마리 개미의 능력을 아끼지 않아 이 야박한 세상을 밟혀줄 횃불이 되어줄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그들의 손길이 닿는 곳에 사람이 향기로 남는 세상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소망 빌어본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그들의 사랑이 닿는 곳마다 사람 사는 향기가 절로 풍기며 이들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따뜻한 온정의 마르지 않는 강물이 온 세상을 뒤덮어 흘러넘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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