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김 철 이
그리 크지 않은 창밖을 통해 이미 살아버린 큰 세월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루해가 의무를 다 마치고 붉은 노을이 되어 서산 너머로 사라질 무렵이면 말 수 적고 조용한 성품의 한 젊은 여인의 모습이 아지랑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달려간다. 여인은 한국의 전형적인 여성상인 듯하다. 여인은 다소곳한 한복을 입었고 치맛자락이 바람에 날려 흩어질까 남군의 낡은 넥타이를 허리띠 삼아 야무지게 동여매고 여인은 오래된 습관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 질 녘이면 동편으로 나 있는 부엌문 앞을 서성여 온 듯싶다. 여인을 보아하니 표정에 왠지 모르는 우수가 걸쳐있고 눈가에는 한숨 섞인 이슬마저 촉촉이 맺혀있다. 또한, 매일 같은 시간이면 여인의 등엔 사지가 꼬이고 뒤틀려 제 어미의 목마저 감싸 안지 못하는 한 머슴아이가 껌딱지처럼 업혀있다. 껌을 씹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해 문틀에 붙여놓았다가 다시금 씹었던 아픈 추억의 그 시절 그 껌딱지처럼… 이 모습이 유년시절 나와 내 어머니의 자화상이며 햇살이 두껍게 내리쬘수록 짙게 드리워지는 아픈 기억의 그림자다.
나는 아무리 떼도 흔적이 남아있는 껌딱지처럼 늘 어머니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어머니와 나는 세상 소풍 길에서 모자간의 인연으로 만나 오십 평생을 동고동락하며 질경이같이 질긴 끈이 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연습도 복습도 없는 인생살이 한 번 왔다 한 번 가는 생의 엇갈림 길에서 잘 가시라고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 드렸던 망자(亡者)의 뇌리엔 아마 지금도 나의 존재는 떨어지기 어려운 껌딱지 흔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반백(半白)이 된 아들자식의 주름진 얼굴을 어루만지며 마냥 안쓰러워하시던 노모의 은혜로운 손길은 맞이할 수 없지만, 어머니 그 크나큰 사랑을 내 어찌 잊겠는가, 가끔 사회 지면을 통해 밖으로 새나왔던 곱지 않은 일들이긴 하지만 장애를 지닌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들도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실감도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이해도 되질 않았다. 비록, 타인의 손에 의해 주사 한 방으로 사지가 뒤틀리고 꼬이는 장애를 지녀 숨을 쉬며 움직이는 한순간 한 동작이 고통이 동반하는 삶이었지만, 어머니 더없이 크신 사랑이 늘 내 곁을 맴돌았었기에 내가 겪으며 살았던 고통을 단 한 번도 고통이라 여기지 못했다. 또한, 사대육신이 성한 사람도 힘겨운 희로애락이 닥칠 양이면 생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던데 어느 중증 장애우에 뒤지지 않은 중증 장애를 지닌 나는 여태 오십 평생을 살면서 이다지도 힘겨운 삶을 내가 왜 살아내야 하고 이젠 불행의 여신이 꿰어 끌고 가는 힘겨운 삶의 뚜레를 벗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맹세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심한 고열 때문인 경기 탓에 주사를 맞은 이후 사지가 꼬이고 뒤틀리는 현재 뇌병변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던 나는 다섯 살이 되도록 기발(起發)은커녕 자력으로 일어나 앉지도 못했었다.
그 시절 어머니의 소망은 내가 내 두 발로 걷는 것은 둘째 치고 두 무릎 땅에 딛고 두 손으로 기어 다니기라도 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속설처럼 이 못난 아들자식 때문에 가슴에 대못이 박힌 채 누구보다 진한 아픔의 피를 흘려야 했던 어머니 가슴에 품었던 그 소망도 소망이고 기도였던지 내 나이 일곱 살이 되던 해 유월 초하루 가문행사가 있어 울산 친척 할아버지 댁에 갔었는데 어른들이 맡은 일에 분주한 손길을 놀리고 있을 무렵 안방에 뉘어 놓았던 일곱 살배기 아이가 난생처음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할 때 용트림을 하듯 갖은 용을 다 쓰며 엉덩이는 하늘로 치솟고 얼굴을 방바닥에 부비면서 두 무릎을 모아 가까스로 일어나 앉더라는 것이다. 그 후 온몸에 갖은 힘이 다 들어가서 그렇지. 앉은 것은 그렇게 앉는다 치더라도 살아 숨 쉬는 사람이 한자리에서 피고 지는 꽃도 아니니 집안에서나마 가고 싶은 곳을 가야하고 만지고 싶은 것은 만져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러려면 걷든 기든 이동을 해야 하는데 이제 겨우 앉기 시작한 아이가 무슨 재주로 몸소 이동한단 말인가. 해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누운 채 온 방을 굴러서 이동하는 것이었다. 어린 소견에 어디서 그렇게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던지 지금 떠올려도 한 편으론 가슴이 먹먹해 오고 또 다른 한 편으론 우습기도 하다. 굴러다녔지만,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줄곧 누워서 지내다시피 했던 지겨운 생활에서 해방되니 천하를 다 얻은 듯싶고 두 발로 마음껏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그 후 일 년여 지난 어느 날 안방에서 마루의 높은 문턱을 넘어 마루로 굴러 나가려다 문득 생각났던 것이 발로 걸을 수 없으니 대신 두 무릎을 세워 걸어봐야겠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것은 파고들어 알아내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던 성격이 발동하여 곧바로 무릎을 세워 한 발짝 떼놓으려는 순간, 앞으로 거꾸러지듯 넘어지고 만 것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넘어질 때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처럼 혀를 입 밖으로 빼물었던 탓에 아래위 치아가 맞물린 턱을 문턱에다 내려찍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혀의 윗부분이 이에 물려 적지 않은 상처가 났고 입안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주체할 수 없어 반은 도로 삼키고 반은 어둔한 손놀림으로 두터운 겨울옷소매로 닦아냈는데 하필이면 그날 따라 어머니께서 데운 물을 세숫대야에 담아 안방으로 들고 들어오시는 것이 아닌가? 옷소매에 묻어있던 핏자국을 보신 어머니께서 웬 피냐고 물었을 때 어린아이의 생각인데 순간적으로 어디서 그렇게 기특하고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던지 사실대로 어머니께 말씀드리면 속상해하실 것은 물론 병든 아들자식 때문에 눈물 마를 날 흔치 않은 어머니 눈에서 눈물바람을 일게 할 터, 거짓말이라도 해서 그 위기부터 모면하고 보자는 생각에 코딱지를 떼다 잘못하여 코피를 조금 흘렸을 뿐이라며 애써 웃어 보였다. 모르고도 속고 알고도 속는 것이 자식을 향한 어머니 사랑이기에 세상 갖은 풍파 다 겪어 눈치 백단이신 어머니께서 그다지도 허술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실 리 만무한데 하얀 거짓말인 것을 알아채시고 눈감아 주신 듯싶었다. 철부지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사건을 무사히 감당해 냈다는 뿌듯함은 있었으나 앞으로 넘어질 때 윗니에 물려 반쯤 떨어져 나갔다 간신히 붙어있던 혀의 살점이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절로 들썩이는 통에 동반하는 고통과 함께 며칠 동안 남모르는 속앓이를 했었다. 오십 년이 넘은 지금은 그 상처에 새살이 돋아 아팠던 기억의 흔적조차 희미해졌지만, 사건의 영문도 모른 채 사고 당시 아들자식이 아파했을 거라는 느낌 하나로 무척이나 속상해하셨던 어머니 심정은 절절히 느껴진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몸살로 자리에 눕지 않는 한 날이면 날마다 성치 못한 아들자식 등에 업고 온 동네 마실을 시작하셨다. 동네 주민이 철도원 가족들로 구성되어있던 당시 부산 동래구 연산동 철도관사 백여 호가 넘는 가정을 두루 구경시켜 주시는 것이었다. 접할 기회가 드문 내게 다른 가정의 가풍과 풍습을 몸소 느껴 먼 훗날 부모 없는 세상을 살아갈 때 낯설음 없이 대처하라는 뜻이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당시엔 몇 분의 시간만 하례하면 아름답고 풍요로운 시골풍경을 접할 수 있었던 터라 점심 후 아들을 등에 업은 어머니는 한가로이 아랫마을로 마실을 가셨다. 어머니는 마실가는 도중 한없이 펼쳐지는 대자연과의 대화법을 내게 가르쳐 주셨다. 대자연의 언어와 마음을 알아듣는 방법은 어떤 경우든 오래 참고 오래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장차 몸이 성치 못한 아들자식이 험난한 세상을 살면서 누구에게든 밀리지 않고 사람 구실 하면서 살려면 아무쪼록 오래 참고 오래 기다리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는 무언의 교훈을 주신 듯싶다. 천금, 만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이 교훈이 현재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나의 영혼에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유산이 되었고 중증 장애를 지닌 몸으로 드물게 내 영혼보다 더 사랑하는 아내와 세상 가운데 한 가정을 이루어 생활하는 데 있어 큰 재산이라 여겨진다.
어머니께 졌던 빚 한 품 갚지 못했는데 다음 세상에 부자로 사시려는지 어머니 하늘나라 가신지 거의 십여 년, 하늘이 내게 선택권을 주시어 다음 세상에 어머니와 내게 혈윤의 인연으로 살게 하신다면 어머니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와 외동딸로 살면서 등골에 홈이 파여도 등 내주는 부정(父情)으로 살 텐데 이젠, 등 내어줄 어머니는 없지만, 모든 면이 어머니와 많이도 닮은 아내가 수족(手足) 되어 영혼의 껌딱지처럼 붙어있으니 일 년 삼백육십오일 시절 없는 세상 마실을 간다.
손을 의지대로 사용하지 못하니 창공을 날며 모이를 쪼는 새처럼 생각은 너른 세상에 날려보내고 긴 스틱 입에 물고 글 사냥하며 사는 생활 변함없지만, 몇 줄의 글로서 야박한 인간사 부대끼며 살다가 상처 입은 영혼들의 아픈 심사 보듬어주고 힘겨운 세상사에 지친 영혼들 한순간 기대어 쉬어가라 등 내어주며 내 영혼의 껌딱지 아내와 함께 생애 끝 날까지 그 옛날 어머니와 못다 한세상 마실 다 하고 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