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김철이
인생이란 슬픈 사연이 생겼을 때 곁에 한 마디 위로해줄 수 있는 친구를 지닌 사람들에겐 살아 느끼는 천국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언제나 혼자인 사람들에겐 살아있는 지옥이라 능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생이란 작은 방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작고 비좁은 방이라 하여도 정리정돈만 잘한다면 더 넓고 쓸모 있게 사용할 수 있으니까 인생이란 가깝고 편한 길을 두고 멀리 돌아서 가는 기나 긴 여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섬나라, 뉴질랜드에는 작은 다리 하나만 놓으면 빨리 건널 수 있는 강을 삼십 분이란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해 가며 돌아서 가는 길이 있다고 한다. 이 길은 일부러 돌아서 가도록 다리를 놓지 않았다고 한다. 쉬운 것은 어려워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멀리서 찾고 잘못된 일은 늦게 깨닫고 늦게 후회하며 아쉬워하라는 것인데 실패와 성공, 기쁨과 슬픔, 죄다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 뜻은 급히 먹는 떡이 쉬 취한다는 우리나라 속담도 있듯이 아는 길도 물어 가고 식은 물도 불어 식혀서 마실 만큼 인생을 여유롭게 살라는 교훈을 평상시 생활방식에서 보여주는 것인데 이 깊고 신묘한 뜻은 “빨리빨리”를 선호하는 이 시대 우리나라 국민의 취향에는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인생은 짧게 잡아 사십 년 길게 잡아 칠십 년을 살아야 하니 다 같은 인생을 살지만 조금은 너그럽게 조금은 여유롭게 살라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 말에 못마땅해 눈을 희번덕거리며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하지 마라며 남의 인체 속에 든 심장마저 꺼내 갈 수 있으면 능히 빼 가고도 남을 시대에 살면서 여유는 무슨 여유이며 너그러움은 무슨 너그러움이냐며 극한 핀잔을 주겠지만, 같은 칠십 년을 산다고 가장할 때 빨리 달려가 작고 좁은 방에 살 것인지 조금은 느리고 여유로운 보폭으로 걸어가 큰방에서 살아갈 것인가는 우리가 결정해 나아갈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인생을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하는 판단이야 인생이란 등짐을 진 채 평생을 허덕였던 우리 인간의 몫이 될 수가 없다는데 억울하고 빈정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비리 먹은 조랑말의 썩은 고삐를 잡고 소나기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탈길을 숨이 턱에 차도록 몰아쉬며 눈이 퀭하게 들어간 모습으로 엉금엉금 기어오르듯 할 때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잘 훈련된 명마의 가족 고삐를 한 손에 느긋하게 잡은 채 야시비 곱게도 내리는 얕은 언덕길을 곰방대 길게 빼물고 갖은 자태 다 동원하여 대자연 희롱하며 콧노래 흥얼거리듯 할 때도 있을 테지만, 공평하든 불공평하든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그 판단은 세상을 지어내고 관장하시는 이의 몫으로 돌려야겠지만, 어떤 놈은 살이 터질 만큼 지독한 추위가 몰아쳐도 따끈한 온돌방에 누워 호강에 터진 아랫배나 긁적거리고 어떤 놈은 산더미 같은 얼음덩어리 위에 앉아있어도 숨이 턱에 차는 오뉴월 삼복더위에 살이 탈 듯한 열판 위에서 혀가 만 발이나 빠지도록 일을 해야 하는가 하고 골 곧게 따져도 누구 하나 제대로 답해줄 자 없을 터,
세상 그 어떤 장르의 공부이든 해답과 정답이 있지만 유일하게 해답과 정답이 없는 장르가 바로 인생공부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인생공부를 주 과목으로 교육하는 학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의 교육 과정과 방식은 달라도 이 모든 배움이 올바른 인성을 위한 과정이고 시대별로 사회 공헌을 할 인생공부에 속한다지만 인생공부에 가장 가까운 철학 과정에서도 인생공부의 기초 공사만 해줄 뿐이지 기둥도 각자 인생을 살아갈 개인의 몫이고 서까래도 지붕도 각자 본인이 알아서 자신의 몸에 알맞게 얹고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집을 짓는 데 있어 부실 재료로 건물을 세울 때 실제 사람이 육체를 의탁, 의지하는 집보다 인생의 집이 한층 더 빠르게 상하고 부식이 된다는 것이다. 육체를 담을 집은 지키기나 쉽다지만 인생의 집을 지키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육체를 담을 집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허물고 다시 지으면 된다지만 인생을 담을 집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도 허물고 다시 짓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다. 반대로 육체를 담을 집을 허문다고 가정할 땐 집을 허물기란 생각보다 쉽지가 않은데 인생을 담을 집을 허문다고 가정할 땐 시간으로 따진다면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순간 마음을 잘못 먹기에 따라 천금,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한 인생을 손쉽게 망가뜨리고 천길, 만길 밑으로 타락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서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소중한 인생의 집을 짓고 방을 꾸밀 시엔 한 번 생각할 것 두 번 생각하고 두 번 고심할 것 세 번 고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크이긴 하지만,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닌 듯싶다. 왜냐하면, 사람은 평생을 놓고 자기 집을 가져보려고 안달복달하는가 하면 그도 모자라 갖은 꼼수 다 부려 그럴듯한 전셋집에서라도 살아보려 온갖 용을 다 쓴다. 어디 그뿐인가? 몸을 의탁하는 육적인 주택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큰 털 속에 든 사람의 품성이나 인격을 말하는 됨됨이의 주택 안 큰 방을 차지하려고 평생 전력투구를 하는가 하면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해도 단독 주택은커녕 작은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에 세들어 사는 경우도 많지만 개는 평생을 하루에 몇 번 짓기만 하여도 끼니 해결은 물론 생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 단독 주택에서 생활한다는 것이다. 처지에 따라선 한평생 사람의 인생이 개의 생애보다 못할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 거라는 것이다.
인생을 살고 싶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살기 싫다 하여 제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날 낳아 길러주셨으니 모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