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병상 일기

松竹/김철이 2015. 4. 21. 17:26

병상 일기

 

 고작 해야 한 번 왔다 한 번 가는 인간사 세상에서 사람이 평생을 사노라면 갖은 희로애락 다 겪는 것은 다반사이고 상상조차 못했던 불의의 사고나 자신의 인생길에서 전혀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과 타인의 삶 속에서 없었으면 하는 갖가지 우환과 근심 걱정거리들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하여 가정의 안방 한가운데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한 가정 가족들의 마음을 수시로 졸이게 하는가 하면 한 가정의 일가족을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기가 일수다. 이 악마의 시험대에서 지혜와 용기와 끈기로 잘 버티어낸 일가는 종전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고 가족들의 마음이 곡식 낱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일가의 분위기가 마치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어수선하다면 모든 상황은 불행의 여신이 바라고 있던 대로 이끌려 나아갈 것이다. 소중한 사랑의 울타리인 한 가정의 위기로 변모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길에 수시로 들락거리는 불행의 바람이 가까이 불지 않도록 쉬지 않고 늘 깨어서 행복의 부채질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용빼는 제주가 있어 갖은 우환 더러 피해 가라 엄히 꾸짖을 수 있는 일도 아니라 너나없이 꺼진 불도 다시 보자던 교훈을 되살려 호시탐탐 인생살이 전면을 넘보는 갖은 우환과 불행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어선 안 될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하니 인간사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듯이 매번 다가오는 갖은 우환을 손수 물리칠 수 없는 것이 인간사 원칙이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노크 없이 찾아드는 불행과 우환의 발걸음을 막을 자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기에 누구 하나 자신의 코앞에 닥쳐올 우환이나 재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궂은일 당하고 싶어 당하는 사람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밤새 안녕이란 말처럼 과학문명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이야말로 각종 악재와 우환의 도마 위에 벌거숭이로 올려져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아침 출근길에 아내와 웃는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은 남편이 여느 날보다 이른 퇴근을 한다 싶더니 평소에 높았던 혈압 탓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 다복했던 한 가정을 순식간에 불행의 도가니로 몰아넣는가 하면 세상 어느 자녀보다 착하고 성실했던 아들이 학교 다녀오마 나가더니 건널목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다 인도로 뛰어든 자동차에 치여 집을 나선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팔자에 없는 장애인의 멍에를 뒤집어쓴 채 평생 얼굴에 참다운 웃음 한 번 담을 수 없을 암흑의 운명을 살아내야 하는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평생을 홀로 자식들 키우며 가게를 경영하던 어머니 이른 아침 물건을 떼러 길을 나섰는데 인근 공사장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수십 시간을 이승과 저승을 헤매다 식물인간이 되어 생의 승과 패를 산소호흡기 하나에 반납한 채 사경의 사슬을 넘나드니 금쪽같은 자식들의 마음을 가마솥 아궁이 속 장작불로 타게 하였으며 없는 살림살이에 이십삼 년을 뼈빠지게 공부시켜 일류 대학을 졸업시킨 고명딸이 대기업에 취직하여 첫 출근하던 날, 지하철 사고로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한 채 꽃다운 나이에 이 세상과 사별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는 일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현실이 우리가 몸 붙여 사는 세상이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고 사건을 앞장세워 찾아오는 갖은 우환과 재해들이 우리 인간이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허점을 보일 때 불행의 신은 여지없이 우리 사람들 목에 크고 작은 우환의 올가미를 뒤집어씌우는데 이 올가미를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이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두뇌의 회전이 잘 되고 지혜가 뛰어난 사람도 힘이 세서 천하장사를 능가한 사람도 작정하고 갖가지 모습으로 덤벼드는 우환의 기세에는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갖은 우환이 찾아올 때 곰보 째보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였던지 기억은 잘 나질 않으나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인생의 선배로서 교훈 삼아 해주셨던 말씀이 있었는데 벌써 몇 달째 그 말씀이 귓전을 맴돈다. 그 교훈은,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가졌다고 자랑 말고 성하다고 자랑 말라는 것이었다. 그 말씀의 뜻은 많이 지닌 재물도 자랑하지 말고 몸이 성하다고 아픈 사람 업신여기지 말고 성한 육신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니 그때 그 말씀이 나를 두고 하셨던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심한 장애를 지녔지만, 내실은 누구보다 건강했었기에 내심 나는 언제까지 건강할 것이고 병원 신세를 지며 장기간 치료받을 일 따위는 내겐 없을 것이라 교만과 갖은 오만을 다 떨었는데 갖은 우환을 지배하는 불행의 신은 그 허점마저 그냥 버려두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부상이 육 개월이 넘는 소중한 시간 동안 나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줄이야 정말 작은 일로 다쳤던 어깨 인대, 연이어 같은 팔에 찾아온 지독한 근육통, 목디스크 증세로 눌려진 팔의 신경이 왼팔과 다섯 손가락을 자극하는데 그 아픔이 아픔이란 표현을 사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었다. 아프고 걸리는 것은 기본이고 아리고 쑤시고 찌르고 저리고 따갑고 시리기까지 하니 어느 천하장사가 견디어 내겠는가. 아픈 것도 아픈 것이었지만, 심하디 심한 갖가지 통증들 때문에 밤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었다. 작년 오월부터 시작된 투병기간 동안 네 시간을 넘겨 숙면을 취해본 일이 없었다. 잠이 오질 않아 못 자는 것이 아니라 번갈아 가며 수시로 찾아드는 갖은 통증들 탓에 간신히 잠이 들었다가도 놀라 자던 잠을 깨기가 일수였다. 수면 장애로 힘겨워하는 이들의 심히 괴로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일시적이었지만, 수면장애 탓에 신경쇠약 노이로제 스트레스성 화병까지도 체험해봤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 모든 점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한도 끝도 없을 터, 아픔과 괴로움이 밀려들 때면 그치지 않는 비는 없으니 내 육신에 내리는 소나기도 언젠가는 그치겠지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내 영혼 속 텃밭에 뿌리 깊게 심으려 안 간 노력 다 기울였다.

 

 그러나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도 있듯이 다친 부위가 나을 때까지 나 자신은 당사자이니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이십사시간 문설주 껌딱지처럼 곁에서 갖가지 시중을 다 들며 손과 발이 돼주어야 했던 아내가 너무 힘겨워 지칠까 봐 내심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아내는 몸은 하나지만 두 사람 몫의 일상생활을 잘 해주었다. 어깨 인대와 지독한 근육통과 목디스크와 탈이 난 왼팔의 통근 치료 중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해 보름간 팔자에 없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었는데 통근치료 다닐 때 못지않게 힘들고 인내를 요구하는 시간이었다. 보름의 입원기간 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하다시피 했던 이들에게 이 장을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한다. 입원기간 동안 입원한 내 방을 가장 먼저 노크했던 이는 밤을 새워 입원 환자들을 보살피는 야간 담당 간호사였다. 세 명의 간호사가 번갈아가며 환자를 돌보곤 했는데 말띠 간호사로 통했던 나와 띠동갑 간호사는 시끄럽지만, 정 많고 잘 챙겨주는 스타일이었다. 사십 대 중반으로 느껴지는 간호사는 나와 같은 신앙을 지녔지만, 현재 쉬는 중이었다. 이 간호사는 말이 별로 없고 조용한 성품에 자기 일에 충실히 하는 사람이었다. 끝으로 꼬맹이 간호사로 불리었던 스물네 살의 간호사는 나이에 걸맞게 애교도 많고 정도 많았지만 잘못되어 가는 점은 기필코 바로 잡아주는 성품을 지닌 아가씨였다. 이 세 명의 간호사가 번갈아 가며 매일 아침 일곱 시 입원생활 하루의 아침을 깨우고 나면 여덟 시쯤이면 두 명의 주방 아줌마가 번갈아가며 매 끼니를 갖다 주었고 그러고 나면 청소하는 아줌마가 하룻밤의 인생 찌꺼기들을 말끔히 청소해 주었다. 여덟 시 반경이면 원장 선생님께서 회진하고 나면 일상적인 입원생활이 시작되는데 병실에 갇혀 입원생활 해보는 것이 난생처음인지라 새장에 갇힌 새가 그다지도 갑갑할까? 동물원 동물들이 그다지도 갑갑할까? 정말 숨이 막힐 정도였으니 언 육십 년 동안 병마에게 붙잡혀 바깥생활 제대로 못 해본 나도 이러한데 성한 육신으로 활동하다 입원한 환우들이야 오직 하겠는가, 여러 교훈과 깨우침을 얻었던 보름간의 입원생활이었지만 오십의 마지막 고개에서 접했던 우환과 시련을 헛되게 여기지 않고 남은 삶 보배로운 토양으로 삼아 매사 더욱 겸손하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이들을 한 번 더 돌아보리라는 마음을 지니게 된 것이 가장 큰 덕으로 생각하며 남은 삶 덤으로 살라는 하늘의 지엄하신 천명으로 여겨 모든 상처 아물고 나면 내게 주어진 본분 다 하며 한층 더 열심히 살아보리라. 먼 훗날 내 죽어 하늘나라 갔을 적에 저도 이만하면 잘 살다 왔고 이만하면 쓸만합니까? 하고 세상을 관장하는 이에게 물어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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