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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넘는 인생고개

松竹/김철이 2015. 2. 25. 14:30

절로 넘는 인생고개

 

 사람이 한평생을 사노라면 굽이굽이 수천 리 흘러가는 강물 같고 넘다 보면 지칠 것 같은 험준한 재와도 같은 인생의 고개를 절로 만나게 된다. 인생의 고개에서 쉼 없이 흐르는 세상 원리를 대변하자면 한 사람의 생명을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 움트기 전 땅속에서의 꿈은 잉태기이고 포유기는 묘목이라 할 수 있고 이십 약관까지는 애목이며 중년은 거목이요 노년기는 고목 봉춘의 색바랜 꿈에 매달리는 고목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꽃은 늙어도 뿌리는 늙지 않고 청춘이지만 사람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고 늘 청춘이 되고 싶어 한다. 나이테는 겹겹이지만 생활에 대하여 충만 된 열정으로 열심히 생활하는 데서 표현되었다 할 것이다.

 생애 주어진 천수를 다하고 달릴 수 없는 늙은 말은 구유 속에 입을 담그고 있어도 뜻은 천 리를 달린다는 속설처럼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노련미를 절로 나타내며 곰삭아 피는 저승 꽃의 신화로 핀다. 유년기를 거쳐 소년기를 벗어나 청춘기에 들어서면 인생의 첫 고갯길로 오른다. 청춘은 사계에 비유하면 봄이라 표현하겠다. 혈기와 자존심은 자본이고 용기는 통행증으로 가슴에 붙은 열정적 불은 그 누구도 쉽사리 끌 수가 없다. 그러나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청춘의 고갯길은 실패(失敗)의 원인(原因)으로 반죽하여 잠시 인생을 수렁 속으로 밀어 넣는 아픔도 겪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여 기가 죽거나 위축된 생활을 해서는 인생에 도움이 못 된다. 이러한 시기는 인생공부에서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청춘은 노련할 수 없기에 실패는 이미 예전에 예고된 것으로 노련하다는 것은 청춘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의 장점이 될 수가 없다. 청춘기는 인생의 한 단계지 인생의 지속상태가 될 수가 없다. 별로 하는 일 없이 공연히 분주한 하루는 턱없이 짧고 이율배반적으로 일 년은 늘 달려도 제자리걸음이다. 청춘의 귀에는 일력 장이 한 장씩 넘어가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세상 누구도 어떻게 늙어야 좋은지 알지 못하면서도 쉼 없이 흐르는 세월 따라 자기도 늙어가고 끝내 죽게 되는 생명의 행진곡의 가사도 곡조도 모르면서 인생을 우습게 여긴다. 늙어서 여태 살아온 인생을 곱씹는 참회(懺悔)는 인생의 총화(總和)이기는 하지만, 푸른 참회는 실수에 대한 보상일뿐이다. 이 시기에 겸하여 금, 은 보화 같은 인생의 고개를 넘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고개는 꿈많은 환상의 고개로서 타인과 타인이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몇 년간은 비몽사몽 간에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며 울고 웃으며 절로 넘는 [광대의 고개]라 하겠다. 두 번째 고개는 세상과 타협의 고개로서 신혼생활의 꿀과 같은 단맛도 일장춘몽 한 장 추억의 페이지로 넘어가고 서로 애써 타협하며 보기에도 아슬아슬 위험한 권태기를 간신히 넘는[송한(悚汗)의 고개]라 하겠으며 세 번째 고개는 인생 투쟁의 고개로서 결혼 후 십여 년 동안 유년시절부터 여태 가슴속에 저장해 놓은 사랑의 알곡들을 다 내어준 상대방을 알고 나서 피차 서로 자신과 투쟁하며 상대를 애써 끌어안으며 간신히 현기증을 참는 [비몽사몽(非夢似夢)의 고개]라 하겠다. 내일 또다시 동녘에 해는 뜨고 강물도 쉼 없이 흘러갈 테지 하는 희망에 불타던 인생의 태양은 중천에서 작열하고 세상 관리자 뭇 인생은 뼈 빠지게 뛰고 달린다. 투(套)의 열매가 시련과 갖은 고뇌에 곰삭아 무르익을 중년기는 청년기의 마지막 간의 역이자 또 다른 인생의 맛을 느끼게 될 노년기로 향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무감동의 시기이며 불혹의 나이답게 모름지기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며 개탄(慨歎)과 탄식(歎息)이 있을 뿐, 가슴 두근거리게 할 감동은 없다. 굽이굽이 고갯길에 세상을 쥐락펴락할 불승분노(不勝憤怒)의 노도(怒濤)와 화산(火山)도 절로 소멸된다는 것이다. 별다른 기대심 없이 장차 다가올 운명과 견여금석(堅如金石)을 맺듯 약속을 한다. 인생 평생의 동반자 격정은 곤히 잠들기 시작하고 인생길에 곰삭아 피는 저승 꽃처럼 애수(哀愁)가 눈을 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고 바뀐 시간 근 이십여 년을 더불어 생활하면서 자타(自他)의 장단점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인 일조 달리기처럼 서로 보조를 맞추며 돌고 도는 [헛도래기 고개]와 함께 살 붙여 살면서 남편과 아내와 정신적 별거나 헤어진 것처럼 자기의 삶을 체념하고 다시 한번 포기하는 [찬 서리 고개]를 울며 겨자 먹기로 넘어가야 한다. 걸어온 길 되돌아설 수도 없고 이미 살아버린 인생 누구에게 되물릴 수도 없다. 남자가 사십 대에서 오십 대에 이르면 호색(好色)가로 변한다고 말했던 서양의 어느 철학자의 철학과는 상반되는 점도 있으나 불혹(不惑)의 나이인 마흔이면 남녀 구별 없이 모름지기 자기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여태 넘어온 인생고개보다 근신을 바탕으로 장차 다가올 인생고개를 한층 더 충실히 넘어야 한다는 또 다른 표현일 게다. 청춘기엔 필요보다 과잉된 신심이 고질병이었다면 중년기엔 불필요하게 넘치는 의심이 고질병으로 앓게 된다. 세상 나들이 나온 인생길에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고개는 통일의 고개로서 지나간 과거의 모든 이들을 서로 죄다 털어놓고 남은 삶 열심과 온 힘을 다해 살며 잘 죽기 위해 잘 사는 [비탈길 고개]이다. 천명의 내리막 고개에 올라서서 어정거리는 사이 어느덧 생의 연륜은 환갑()을 지나 황혼길로 접어드는 고갯마루에 서게 된다. 세월이 얼굴에 새긴 연륜을 보듬으며 인생이 허무함에 한숨을 얹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보다 속으로 곰삭아 절로 지는 마음의 더 많은 주름살이 심어진다. 세상 뭇 남성들은 느낌으로 늙어가고 세상 뭇 여성들은 눈으로 늙어가는 것이 통례이다. 주름살은 남자들에게서는 연륜의 상징이 되고 여자들의 얼굴에서는 노쇠의 표지가 되기도 한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만년(晩年)일 것이다. 만년에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로는 노옹(老翁)과 노파(老婆)라는 단어일 것이다. 아무도 당면한 생활에 열애하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노년에 들어서면 일상대화는 주로 후손들을 향한 사랑의 고백일 것이다. 늙어도 생활을 열애하는 것은 현명한 생활의 모습이지만 자기 생명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자칫 추하고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평생을 쌓아온 덕망도 한순간 물거품으로 사라질 노년기엔 자칫 잘못하면 인생비극 제5장 5막의 막이 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엔 그토록 근면 성실한 삶을 살아보려 해도 무엇에 홀린 것처럼 잘살아지지 않았건만 성실하지 않으려 해도 성실해지는 단계가 이 단계인데 결혼해서 30년이 지나면 완숙해진 단계로서 마음먹고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석양의 노을처럼 잠시 행복을 불태울 [천국 고개]이다. 사람이 늙으면 남는 것이 살면서 겪은 경험이라 말한다. 비록 이 경험의 필기장은 두텁긴 하지만 [지낭(智囊]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절로 넘는 인생고개에서 천국 갈 노잣돈이나 마련했다면 성공한 인생이요 잘 살은 삶이라 칭송받겠지, 멀미가 절로 나고 청춘과 한숨을 잎에 말아피우며 넘어야 할 인생고개 한 해가 저물어 갈 이 시점에 밝아올 또 다른 한 해 동안 어떤 인생고개를 넘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