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낙엽의 향기

松竹/김철이 2014. 12. 17. 17:23

낙엽의 향기

 

 

 세상 사람들은 나무나 꽃으로부터 이미 떨어진 잎을 가리켜 흔히 낙엽이라 부른다. 또한, 사람들은 낙엽 보기를 황금을 돌처럼 여기듯 한다. 최영 장군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서그럴까? 아니다. 황금은 황금 이상으로 여기며 일 년 열두 달 마음의 손아귀에서 단 하루도 내려놓지 못하면서도 정작 황금을 황금으로 볼 줄 모르는 어두운 마음의 눈을 지녔기 때문일 게다. 또 한 가지 세상 사람들은 추운 날씨가 해동하기 무섭게 춘삼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꽃과 나무의 향기와 자태에 마음을 빼앗겨 변화하는 계절 일부에 불과한 그것들을 찾아 헤매면서도 정녕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 부딪기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 그 어떤 향기에도 비교할 수 없는 낙엽의 향기를 제대로 맡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낙엽이 무슨 향기가 있느냐며 반문하는 이도 없지 않아 있지 않을까 싶어 한 해의 낙엽이 세상 뭇 사연을 안고 땅에 뒹구는 이 계절에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버릴 낙엽의 향기를 찾아 현재에서 벗어나 과거와 미래의 시간 속으로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타임머신의 힘을 빌려 대자연에 속하는 낙엽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려 한다. 낙엽이라 하여 나무와 꽃으로부터 떨어진 부산물이라는 기성 관염(旣成 觀念)에서 벗어나 인간사 나무와 꽃에서 떨어져 세상사 물기 젖은 땅 위를 사뭇 뒹굴면서도 침묵만 지키는 사람의 낙엽, 사람의 향기를 찾아서…

 

 인간 낙엽의 향기를 찾아 떠나는 첫 번째 여정의 사례는 평생을 힘들게 살면서도 타인을 위한 희생, 봉사정신으로 사람이 사는 향기를 짜내며 생활하신 칠십 대한 노파의 이야기다. 노파는 스무 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결혼하였으나, 한 여인으로서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결혼하고 보니 남편이란 사람은 술과 도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탕아(蕩兒)였다. 노파의 남편은 한 가정의 가장 노릇은 물론 한 부인의 남편 역할조차 포기하며 노파와 육십 년을 불행한 삶을 살았던 삶이었다. 노파는 말이 좋아 부부였고 법이 무서워 남편과 같은 지붕 아래서 생활했지 부부로서 남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것이었다. 남편이 가정을 등한시하는 동안 노파는 슬하의 육 남매와 함께 먹고살아야 했기에 재래시장 한 켠에 목판에 담긴 생선을 팔아 간신히 생계를 이어갔으며 육 남매를 하나같이 대학교 졸업을 시켰다. 거기까지 이르기엔 숱한 고생을 세 끼니 밥 먹듯이 했던 것은 물론 노름돈을 돼달라며 폭행과 행패를 일삼는 남편의 극성맞은 성화를 견디다 못해 몇 푼 집어주면 며칠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가 돈이 떨어질 때면 챙피한 줄도 모르고 시장으로 찾아와 수많은 사람의 눈조차 의식하지 않은 채 돈을 내놓으라고 생선 자판을 들어 엎는 광란을 부리니 사람의 감정을 지니고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일이 전부가 아니었다. 시거든 떫지나 말라던 속설에 걸맞게 본부인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 살아있음에도 술집에서 바람처럼 스쳐 갈 인연의 여인을 데려와 안방에 앉혀놓고 세 끼니 꼬박꼬박 지어다 바치라고 하니 온전한 정신으로 생활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테지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형벌인지 겪지 못한 이는 모를 터, 고장도 나지 않는 세월은 물처럼 흐르고 영원히 건강한 삶을 살고자 했던 삼천갑자 동방삭도 끝내는 죽어야 했고 소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천하장사도 병이 날 때도 있는 법, 영원히 방탕한 삶을 살고 싶었던 노파의 남편 또한, 평생을 무질서하고 방탕한 삶을 즐기다 오십 대 중반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의 몸이 되자 생의 마지막 날까지 껌딱지처럼 붙어있을 것만 같았던 술집 여자는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어디론지 사라졌고 늙고 병든 남편은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노파의 독차지가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파는 병든 남편을 거두며 싫은 내색 한번 내보지 않고 병수발을 해냈다는 것이다. 행여 자식들이 젊은 시절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행했던 행실을 되새김질하여 싫은 내색을 내보일 때면 오히려 자식들을 타이르고 다독였다는 것이다. 이 노파의 삶이 세상에 묻혀 흔적없이 사라져도 입에서 입으로 살아 전해져 세상 터전에 한 줌 토양이 되니 이 것이 바로 인간 삶의 낙엽이 뿜어내는 사람의 향기일 것이다.

 

 두 번째 여정의 사례는 고아로 자라 자수성가(自手成家)했던 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의 이야기다. 기업가는 경영하는 기업을 일으켜 세우기까지는 고생이란 단어가 부끄러워 십 리나 달아날 정도로 숱한 고생을 했었다. 기업가는 자신의 전부를 투자하여 일구어낸 자산을 유년시절 자신처럼 고생하는 이들을 위해 쓰고 싶어 마음을 굳히고 실천하니 결실을 보아 향기를 내어 품었다. 부모 없는 아이들과 돌보는 자녀 하나 없이 외롭게 생활하는 독고노인들을 숨어서 돕기 시작했는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큰 가르침에 걸맞게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을 돕는 일을 하기를 동고동락하는 자기 식솔들조차 모르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세상 그 어떤 향기보다 짙고 향기로운 낙엽의 향기, 사람의 향기라고 단정 지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낙엽의 향기를 찾아 떠나는 세 번째 여정의 사례는 열 개를 가진 자가 하나를 떼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가진 자가 하나를 둘로 나누어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타인을 돕는 한 장애인이 행한 더없이 보배로운 선행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다. 겉으로 보기엔 절룩거리는 다리에 한마디 말을 하려고 해도 온 얼굴 근육을 동원해야 하는 통에 보는 이들의 시야에 때로는 부담을 줄 때도 있지만, 마음만은 세상 누구보다 반듯했다. 그는 그와 흡사한 장애를 지닌 여인과 백년가약을 맺고 살면서 슬하에 딸자식 하나를 낳아 길렀다. 그의 부부는 시장에서 휴지를 팔아 간신히 세 식구의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주위에 자신들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곳에 눈길을 돌렸고 그들 부부가 하루 품을 팔아 번 돈에서 정확하게 두 몫으로 나누어 자신들보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도와온 지 삼십 여년, 그 장애인 부부는 가진 것 별로 없어도 늘 행복했고 그 행복한 마음을 주위에 나누어주는 평화의 전령사를 자청하여 나선 것이었다. 아홉을 가진 자가 열을 채우기 위해 하나 가진 자의 손에 든 것마저 뺏으려 하는 것이 사람의 욕심인데 그들 부부는 하나 가진 것마저 나누려 하니 타고난 천사이며 타고난 바보일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참 바보의 삶을 사는 것이 세상 어떤 삶보다 어렵고 힘든 것인데 그들 부부는 성치 못한 몸으로 절며 그 힘겹고 아무나 실천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냈으니 그들의 영혼 속에서는 그 누구도 쉽게 흉내 내지 못하는 낙엽의 향기가 저절로 풍겨 나올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그 장애인 부부의 사람 사는 향기가 돋보기가 되어 사람의 영혼 속에서 썩고 곰삭아 뿜어져 나오는 사람의 향기가 낙엽이 져서 몇 줌 토양으로 땅속에 묻혀갈 이 계절, 온 세상을 가득 메웠으면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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