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부산교구 509

누룩 | 나를 찾아오신 때

나를 찾아오신 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우셨다. 그 때 예루살렘을 향하여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 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 였기 때문이다.”(루카 19,44)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읽으며 나는 두려 움을 느꼈다. 주님께서는 분명 나에게도 가끔, 혹은 자 주 찾아오셨을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찾아오셨는데 내가 알지 못했던 때는 언제였을까. 이른 새벽, 맑은 정신으로 눈을 뜨게 되면 그것은 주 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것이라고 했다. 묵상하기 좋고 기도하기 좋은 고요한 시간, 이불 속에 누워서 쓸데없 는 잡념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다면 주님께 서 나..

세대간 소통 2024.04.27

열두광주리 | 우리의 이름이 시작된 곳

우리의 이름이 시작된 곳 “요한아~!”“영아~!”“신부님~!” 지금까지 살아오면 서 누군가가 저를 부를 때 자주 듣게 되는 말들입니다. 제가 가진 이름들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이 이 름들은 희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라는 희망, 거룩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희망, 사랑하고 봉사하며 기쁘게 살아가겠다는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분명 내 것이기는 한데,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사 용합니다. 그래서 이름은 본질적으로 “부르심”과 연 관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내 이름이 불려질 때, 우리는 자신을 자각하게 되고, 나를 부르는 이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 이 나에게 가진 희망과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르고..

세대간 소통 2024.04.20

착한 목자의 삶 | 박상운바오로 신부님(만덕성당 주임)

착한 목자의 삶 박상운바오로 신부님(만덕성당 주임)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고 노력하는 모든 성소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성소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라 고 말씀하시면서, 목자와 삯꾼의 차이, 울타리 밖의 양 들과 목자의 직무, 착한 목자이신 당신의 권한을 말씀 하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핵심은 ‘착한 목자로서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착한 목자 의 삶’은 목자로서의 직무와 연관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목자로서의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양들 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 을 내놓는다.”(요한 10,11) 우리는 일을 하면 그에 따른 대가를 바라지만, 오히 려..

사제의 공간 2024.04.19

누룩 | “평화가 너희와 함께!”

“평화가 너희와 함께!” ‘지란지교’라 하면, 늘 유안진 시인의 시가 생각납니 다.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 지 않는 친구…”가 곧, 지란지교를 나누는 벗이지요. 가족이나 친지일지라도,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어 이 야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말이 날까’ 두 려워서입니다. 상대방을 믿고 나눈, 속 깊은 대화가 돌 고 돌아 다른 사람에게서 듣게 되는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 같습니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게 세 상 사는 모습인가 봅니다. 수년 전 이야기입니다. 사월 중순 즈음에 한 학생이 면담을 신청해 왔습니다. ‘말이 날까’ 두려워 가족에게 조차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하던 차에 저를 찾아온 것입 니다. 믿고 상담하러 와 준 것만 해도 고마웠습니다. 여러 날 학생..

세대간 소통 2024.04.13

예수님, 감사합니다! |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님(부산가톨릭신학원장)

예수님, 감사합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님(부산가톨릭신학원장)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서도 여전히 의심 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제자들, 끝없는 죄책감에 시 달리며 좌절하고 있는 못난 모습을 전해줍니다. 순간 마음이 철렁했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고작 3주일 만 에 잃은 듯한 제 모습 같고 제 꼴이라 싶었던 것입니 다. 이야말로 주님을 조롱하는 일이고 비난하며 등을 돌리는 일이기에,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때문일까요? 딱한 제자들의 모습에 별로 마음을 쓰 지 않으시는 듯, 쿨하게 대해주시는 예수님의 배려가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그저 제자들의 영혼이 어서 회 복되도록, 손과 발을 보여주고 못 자국까지 확인시켜 주시는 그 다정함에 마음을 떨었습니다. 당신께서 주 신 평화를 ..

사제의 공간 2024.04.12

누룩 | 나의 행복 리스트

나의 행복 리스트 청·청·해(청소년·청년의 해)의 목표가 쉬워서 한 번 에 외워졌다. “하느님 안에서 청소년과 청년이 행복을 느끼는 것” 8년 동안 성당을 다니며 행복을 느꼈던 기 억과 본당 공동체에서 받은 사랑을 알리고 싶다는 생 각에 쓰게 되었다. 1. 스물한 살, 비신자였던 내 고민을 진심으로 경청 해주고 함께 고민해 준 신부님. 2. 그냥 이유 없이 반갑다며 10m 전부터 손 흔들고, 손잡아 준 수녀님. 3. 언젠가 내가 세례를 받을 때 대모를 서주겠다며 웃었던 오빠,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라면 전부 응 원하고 믿어주는 항상 내 편인 대모님. 4. 궁금한 것이 많았던 나의 질문을 다 받아주고, 오 르간도 가르쳐 준 오빠. 5. 몸이 아파 힘들어할 때 따스하게 안수해 준 신부 님과 기도해준 청년들...

세대간 소통 2024.04.06

질문하는 사람, 토마스 | 홍경완 메데리코 신부님(부산가톨릭대학교 총장)

질문하는 사람, 토마스 홍경완 메데리코 신부님(부산가톨릭대학교 총장)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는 일은 인간의 것입니다. 인 간만이 질문을 던지며 그 까닭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 냥은 받아들이기 싫다는, 수용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찾고 싶다는 인간 의지의 강력한 표현이 질문을 던지 는 행위입니다. 믿음에 대해선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 게 의심하면 불신앙이 더 커질 듯 보이지만, 실은 질문 을 통해 얻어낸 것들이 든든한 토대가 되어 제대로 된 신앙이 뿌리를 내리게 이끌어 줍니다. 신앙은 그 마지막 자리에선 어떤 의심이나 질문도 필 요 없는, 심지어 믿는다는 말조차 무의미한 *지복직관 의 순수가 자리하고 있을 터이지만, 그건 마지막에나 일어날 바라마지않는 일이고, 그리로 향하는 길 위에 서는 늘 ‘믿기 위해서 ..

사제의 공간 2024.04.04

누룩 | 무덤을 허물고 일어나

무덤을 허물고 일어나 세례받은 지 50년이 다 돼가니 그만큼의 부활을 보 냈을 겁니다. 어릴 땐 달걀주는 부활절이 명절 같아 좋 았습니다. 한때는 부활 사건을 의심한 적도 있었습니 다. 흰머리가 생길 때쯤에서야 십자가의 희생과 예수 님 부활을 통해 우리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부활의 신비를 조금씩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기쁨을 간직한 주님의 백성으로 살기보다 세상일에 바쁜척하 며 예수님 주변을 서성이는 ‘부활구경꾼’으로 살아온 시간이 훨씬 많았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사순절을 맞이하며 신약성경 필사를 시작했습 니다.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내 몸 가까이 느껴보고 싶 었습니다.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 말씀이 내게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쓴 날과 안 쓴 날의 차이가 ..

세대간 소통 2024.03.30

빈 무덤 -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보는 곳 | 신호철 비오 주교님(총대리 )

빈 무덤 -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보는 곳 신호철 비오 주교님(총대리 ) 영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표 현하는 말씀을 하실 때 당신 의 온존재를 말씀에 담아서 선물로 주십니다. 그래서 하 느님은 말씀을 낳으시고, 말 씀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은 이 말씀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 시고 만물을 돌보고 이끌어 오셨습니다. 말씀이 사람 이 되시어 사람의 눈앞에 나타나셨고, 인간의 언어로 써, 하느님은 영이시며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를 돌 보고 이끄신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나타나시자, 사람들은 그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심을 알아듣지 못하였 습니다. 그래서 말씀께서는 당신의 본래 모습,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계시는 그분을 만날 수 있도록 제..

사제의 공간 2024.03.29

마음 안에 주님의 십자가를 세웁시다. | 한건도미니코 신부님(이기대성당 주임)

마음 안에 주님의 십자가를 세웁시다. 한건도미니코 신부님(이기대성당 주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인 오늘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 비를 완성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그 때 당신을 향한 군중들이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호산 나”를 외치며 환영합니다. 군중들은 자신들의 꿈인 다 윗의 나라를 예수님에게서 본 것입니다. 반면에 유대 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위험한 인물로 냉랭하 게 쳐다봅니다. 잠시 후 열렬히 환호하던 군중들도 점 차 태도를 바꿉니다. 유대 지도자들과 한패가 되어 예 수님을 반대하는 살인 동조자로 돌변합니다. 힘없이 체포된 예수님을 보자, 자신들의 꿈이 깨졌다고 죽이 려고 크게 외칩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제자들도 수난당하시는 예수님을 버립니다. 베드로 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

사제의 공간 2024.03.20

누룩 | 뿌리 찾기와 순교자

뿌리 찾기와 순교자 족보는 시조부터 편찬 당대까지의 계보를 기록한 가 계기록(家系記錄)을 통칭한다. 특히 조선시대 족보는 양반 계급의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잘 드러내고 공고 하게 만드는 문화적 상징물이다. 당대 양반들이 족보 출간에 소비한 종이는 인구 1인당 세계 최고인데, 바 로 족보가 갖는 이러한 함의(含意) 때문이다. 이처럼 양반들이 족보를 편찬 간행하는 일은 자신들의 정체 성을 확립해 나가는 주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성씨와 계보에 대한 지식은 보학(譜學)이라 불렸다. 이는 당대 양반이 그들의 지위에 걸맞게 처신하기 위 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상식이었다. 오늘날 성 씨와 본관에 관한 지식이 전통문화의 중요한 일부로 인식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현재 일반인들에게도 자신들..

세대간 소통 2024.03.16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 | 김명선 사도요한 신부님(중앙성당 주임)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 김명선 사도요한 신부님(중앙성당 주임)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만나면 고뇌와 절 망에 쌓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세상까지 외 면하려 합니다. 나약한 자신의 모습 안에서 자괴감에 쌓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곤란을 겪기도 합니 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극도의 상황에 처하자 인간 적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려주십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 서는 아버지께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 겪으시는 고 통을 이렇게 보여주십니다.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 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 어나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 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요한 12,2..

사제의 공간 2024.03.14

누룩 | 참 삶의 길

참 삶의 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지혜를 가르쳐 주지만, 힘겹지만 진정한 체험을 지속하다보면 영적인 성장이 일어나서 어떠한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꿋꿋이 나아갈 수 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한 사람의 스토리가 있다. 그는 조직 폭력배와 마약쟁이라는 어둠의 삶을 박차고 일어 나 진정한 빛을 발견했다. 풀 한 포기 없는 척박한 땅이 었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난 후 생명의 꽃이 피어 나는 느낌을 그에게서 받는다. 하요한과의 인연은 20년 전 그의 아들의 정신과 진 료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잘 몰랐으나 시간 이 지나면서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알게 되었다. 그는 13살 때 가출하여 소매치기로 소년원을 전전했고, 성 인이 되자 시외버스터미널을 관리하는 깡패조직에 들 어가 각목과 쇠 파이프를 휘두..

세대간 소통 2024.03.09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 | 심원택 토마스 신부님(사무처장)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 심원택 토마스 신부님(사무처장) “어미 새와 아기 새가 있었습니다. 어미 새는 아기 새 가 귀여워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주었습니다. 아기 새 가 자라서 어른이 되어도 어미 새는 계속 먹이를 물어 다 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미 새는 늙었습니다. 늙 은 어미 새는 이제 더 이상 아기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자 어른이 된 아기 새는 어미 새의 머리를 콕콕 쪼았 습니다. 배고프다고 화를 내면서 콕콕 머리를 쪼았습 니다.” 큰 사랑을 받았으면 베풀 줄 알아야 하는데, 어른이 된 아기 새는 받는 데만 익숙해졌지 사랑을 베풀 줄 몰 랐습니다. 깨닫지 못하고 누리려고만 했습니다. 물고 기를 잡을 방법은 생각지 않고, 주어진 물고기만 붙잡 ..

사제의 공간 2024.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