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 147

누룩 | 함께하는 기쁨

함께하는 기쁨 지난 2023년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렸던 세계 청년대회에 참가했었습니다. 3일간의 교리교육 시간 에 한국어로 배정된 성당에는 1,000명 가량의 청년들 이 모였습니다. 그 중에 하루는 부산교구에서 담당했 는데 총대리 신호철 주교님과 함께 ‘자비’를 주제로 신 앙 체험 나눔과 함께 하는 성시간과 미사를 준비했었 습니다. 성시간이 시작되고 떼제 성가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 전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뭉클한 감동과 전율이 밀 려왔습니다. 1,000명 가량의 청년들이 열정을 다해 성 가를 불렀고 연습이 없었는데도 여기저기서 화음이 터 져나오면서 거대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 조화는 이후 미사까지 이어졌고 자발적으로 휴대 폰 라이트를 켜고 힘차게 생활성가를 부르면서 기쁨 과 감동을 나..

세대간 소통 2025.05.24

부산교구 | 누룩 | 사람이 왔다.

성소의 완 몇 년 전 어느 날, 설거지 봉사를 하시는 분이 그릇 의 뒷면을 정성스레 닦는 모습을 보고 문득 ‘나는 그릇 의 뒷면도 잘 닦고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음 식을 담는 안쪽은 물론이고 바깥면도 깨끗하게 씻어 야 함이 당연한데, 나는 안쪽만 신경 쓰고 있지는 않 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앞면과 뒷면이 있습니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 기쁜 면과 아쉬운 면이 늘 공존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세상의 앞면 - 밝고 기쁜 면들만 중요시하면서 어둡고 아쉬운 면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요? 최근, 미등록이주민에 대한 단속이 매우 강화되고 있습니다. 출퇴근길에 단속을 당하는 것은 물론, 식당 에서 점심을 먹다가도, 종교생활을 위해 성당이나 교 회를 가..

세대간 소통 2025.05.17

누룩 | 성소의 완성

성소의 완성 부르심은 응답이 있어야 그 역할이 온전히 이루어진 다.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었을 부르심은 아마도 엄마의 부르심이 아닐까 한다. “밥 먹어라.” 놀거나 TV를 보 거나, 요즘 같으면 컴퓨터 게임이나 휴대폰을 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할 때도 있고 대답만 하고 밍기적 거리 거나 마침 배가 고파 부르심을 기다린 때도 있었을 것 이다. 제때에 가서 앉으면 가장 맛있을 때에 맛있게 먹 을 수 있고 늦으면, 좀 식어버리거나 맛난 음식은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안 가고 버티다 등짝을 맞는 경우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말만 하고 가지 않으면 진정한 응답이 되지 못한다. 행동이 따르는 응답만이 제대로 된 응답이다. 예수님 께서는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

세대간 소통 2025.05.10

부산교구 | 누룩 |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하십시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하십시오.주일 오후 3시, 성당 입구가 소란스럽다. “○○언니 왔 어요?”“○○는 오늘 못 온대요.” 아이들의 목소리엔 늘 생기가 넘친다. 신부님이 나오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 들은 더욱 신난다. 유치부에게도, 6학년에게도 신부님 은 친구다. 중고등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신부 님만큼 키가 크고 덩치가 큰 아이들도 수다쟁이가 된 다. 고3 아이들도 주일학교 행사와 전례에 참여한다.본당 회장단은 늘 주차 관리를 하며 아이들의 안전 을 챙기고 은총 잔치에서는 앞치마를 두른 채 팝콘을 만들고 크로플을 굽는다. 캠프를 가는 날이면 손맛을 자랑하는 연도회와 자모회가 손을 잡는다. 첫영성체 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위해 구역과 반에서는 기도로 힘을 보탠다. 미사 시간마다 부..

세대간 소통 2025.05.03

누룩 |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때아닌추위에움츠려있던움들이꽃망울을팡팡 터트리기시작한봄날.나직한산을병풍삼아누워있 는묘지위로도햇살이자글자글내리고있었다.저멀 리동산에는공원안에잠들어있는모든이들을예수 님이양팔벌려당신품으로불러들이는모습이보이 고, 제2봉안당건물위에는성모님이주님께우리들의 바람을전구하시는듯두손모으고기도하고계신다. 양산에있는천주교하늘공원으로갔다.우리보다 먼저주님곁으로간이들을만나기위해서다.제1봉 안당은수리를하려고건물전체외벽쪽으로비계가 설치돼있었다.봉안당주변이공사자재로어수선하 여마음이걸리긴했지만안으로들어갔다.어김없이 피에타상이맨먼저눈에들어온다.사랑하는아들의 주검을안고비애와비통함이가득한성모마리아님! 조그만초에불을붙여놓고두손을모은다.“성모님, 너무슬퍼마시고조금만기다리셔요.곧주님이다시 오실테니까요.” 새로지은제2봉안..

세대간 소통 2025.04.12

누룩 | 최고의 유산

최고의 유산  부족한 제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이들 은 서로 닮았지만 각자 개성이 다르고 서투른 엄마인 저는 아이들을 잘 키우려는 마음은 크나, 무엇을 어떻 게 해 주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위한 다는 것이 사소한 일에 있어 간섭하며 통제하려 했기 에, 아이들과의 거리가 소원해진 만큼 대화도 줄고 아 이들의 방문은 굳게 닫혀버렸습니다. 제 뜻과 전혀 다 른 상황에 마음이 아파 눈물도 나고 화도 났습니다. 아 이들을 사랑하여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최 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힘들어 할 때 엄마 인 제 마음은 모든 것을 제 탓으로 돌리고 싶었습니다. 엄마라는 것이 버겁고 힘들고 속상할 때 아이들을 생 각하며 하느님께 울부짖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최선이며..

세대간 소통 2025.04.05

누룩 | 무리요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자비의 노래

무리요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자비의 노래  17세기 스페인 세비야의 거장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1617-1682)는 바로크 미술의 화려함과 극적 인 표현보다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섬세한 감정 표현 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그는 귀족 초상화뿐 아니라 종 교화, 풍속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 으며, 특히 세비야 빈민들의 삶과 신앙을 진솔하게 담 아낸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에는 신앙심 과 함께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자비가 깃들어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는 이러한 그의 예술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주보 표지 작품 는 루카 복음서 15장의 ‘되찾은 아들 의 비유’를 화폭에 옮긴 작품이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 산을 탕진하고 거지꼴이 되어 돌아오는 장면을, 무리 요는 극적인..

세대간 소통 2025.03.29

누룩 | 현세의 복음적 삶, 내세의 영원한 삶

현세의 복음적 삶, 내세의 영원한 삶  몇 년 전부터 17세기 중국에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 알폰소 바뇨니(1568-1640)가 저술한 한문서학서 『사말론四末論』을 번역하고 있다. 한문서학서는 명나 라 말부터 서양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전교활동을 전개 하면서 천주교 교리와 서양 문명에 관한 지식을 담아 한문으로 저술한 책이다. 이러한 한문서학서들이 조 선에 전래되었고, 우리 신앙 선조들은 이들 서적에 대 한 연구를 통해 천주교를 이해하고 신앙에까지 이르 게 되어 한국천주교회 설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사말론은 천주교의 사말 교리를 적어 놓은 것이다. 요리문답으로 교리를 배운 옛 신자들은 ‘사말’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도 생 소할 것이다. 사말은 사람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네 ..

세대간 소통 2025.03.22

누룩 | ‘생태적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순례자’

‘생태적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순례자’올해는 교회의 희년 정신으로 모든 창조세계가 본래 의 자리, 생명의 자리로 돌아가는 은총의 해이자, 『찬 미받으소서』 반포 10주년을 맞이하는 특별한 해입니 다. 전 세계에서 전쟁이 멈추고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 아가는 기쁨의 희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삶의 존 엄성을 회복하는 자비의 희년, 공장 옥상에서 고공 농 성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로 당당하게 돌아가는 희망의 희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 엇보다 자연 생태계가 인간의 과도한 개발과 억압으 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 을 다시금 노래하는 희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어릴 적, 저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동네 반찬가게 에서 콩나물과 두부를 사오거나, 기름집에서 식용유..

세대간 소통 2025.03.15

누룩 | ‘나’ & ‘우리 함께 together’

‘나’ & ‘우리 함께 together’  어릴 적 저는 매주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성당 에 갔습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 토요일이 기다려졌는 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여름 신앙학교, 성탄 예술제, 성월마다 열리는 행사들, 그리고 예수님을 만 나러 가는 길이 설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성당에 가 면 지금도 그렇지만 마음이 평온해지고 편안함을 느 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들은 그런 기쁨을 덜 느끼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교회 밖에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요소들이 많아 지고,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신앙적 환 경이 변화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 다. 물론 교리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 램을 준비하고, 즐거운 신앙생활을..

세대간 소통 2025.03.01

누룩 | 예수님 깨우기

예수님 깨우기  언론사에서 일한 지 30년이 됐습니다. 많은 일이 있 었지만 요즘 같은 정치적 혼란은 처음입니다. 정쟁이 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만 찬반이 거칠어지는 광 장의 흥분을 틈타 냉소와 분노, 독선 같은 어둠의 힘들 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정치 이야 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고 진영의 논리로 상대를 비난하는 지금의 갈등을 보편 된 공동체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 민이 깊어졌습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일행을 태운 배가 돌풍에 휩싸였 을 때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풍랑을 잠재우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제 자들이 닻과 돛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깨우는 그 순간 이 기적의 시작입니다. 알량한 지식과 경험의 완고함..

세대간 소통 2025.02.22

누룩 |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2005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청소년분과장님의 주 일학교 교리교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겁도 없 이 “한번 해볼게요.”라고 대답을 하고 중3 친구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 자 먼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부모님께 하지 못했 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또한 서로 단합도 잘 되어 성당 안과 밖에서 재미있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그 렇게 1년을 보내고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교리교 사를 그만두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 계속 떠올라 어느 날은 괜히 교사 실 앞에서 얼쩡거려도 보고 토요일 미사에 참례하기 도 했다. 언제든 교리교사를 다시 시작할 마음을 늘 가지고 살다가 ..

세대간 소통 2025.02.15

누룩 |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부산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 환자들의 영적돌봄가 로서 오늘도 어김없이 기도로 하루를 연다. ‘주님 병자 들을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 야 하나요? 제가 어떻게 할까요?’ 떨리는 간절함으로 도와주시기를 청하며, 아픈 이들을 만난다. 병동에서 환자나 보호자들이 가끔 나지막이 나에게 묻곤 한다. 아주 조심스레... “저~기... 수녀님 이곳에 오면 한... 얼마 정도 있다 죽게 되나요?”, “사람의 마음 먹기에 달렸지요. 어떤 분은 한 2~3일 생각하고 오시 지만 대세를 받고, 과거 삶을 정리하면서 모든 것을 내 려놓고 새로운 결심으로 매일을 산다고 고백하시며, 입원한 지 두 달이 지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 가셔서 세 례성사까지 받고 재입원하여 지금도 잘 견디고 ..

세대간 소통 2025.02.08

누룩 | 이 겨울의 시간

이 겨울의 시간  조용히 강의실에 들어오는 그를 보았다. 전동휠체어 를 미끄러지듯 밀고 들어와 맨 앞줄에 착석했다. 팔십 이 넘은 연세에도 눈빛만은 빛났으나 고개를 들지 않 았다. 매번 원고를 제출했으나 원고 분량이 길고 도대 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섬광처럼 떠오르는 생각의 파편들이 백지에 툭툭 떨어져 도로 위에 나뒹 구는 낙엽처럼 부스러지고 있었다. 그 원고들을 첨삭 할 때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니 다른 수강생들은 첨삭시간을 갉아먹는 노인에게 보내는 시선이 따가웠 고, 노인의 눈은 나를 아프게 했다. 노인은 태어나면서 다리를 못 썼다. 초등학교도 가 기 전에 그는 구두닦이가 되었다. 구두가 어설프게 닦 이면 어른들 중에는 화를 내거나 구두통을 걷어차기 도 했고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

세대간 소통 2025.02.01

누룩 |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가 사랑할 때   “먹을 식량이 없어 아이들이 쓰러지고 있어요.” 절박 한 심정으로 도움을 청하는 아프리카 말라위 카피리 지역 여성들의 목소리다. 지난해 11월 우기임에도 계 속되는 가뭄에 심어 놓은 옥수수는 말라죽고,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리는 등 가뭄과 홍 수 피해가 동시에 일어났다. 일찍이 없던 기상이변에 따른 재앙이라며 주민들은 울부짖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가뭄과 홍수,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폭력과 테러,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으로 내몰고 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 소서’라고 우리가 바치는 ‘주님의 기도’와는 전혀 딴 세 상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20여 년,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지를 다니면서 상상..

세대간 소통 2025.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