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 98

누룩 |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이자 제56 차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는 하 느님 백성 가운데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가리킵니다. 제2차 바 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 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 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 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처럼 하느 님의 잔칫상에 앉는 합당한 준비로 등잔에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기다 림에 지치지 않고, 주님께서 오실 때에 서둘러 마중하여 혼인 잔치에 함께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 리석은 처녀들처럼 등잔은 가지고 있되 기름이 없다면, 믿음은 있되 신앙이 없는 형식뿐인 신앙인일 것 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늘 “예, 여 기 있습니다.”라고 ..

세대간 소통 2023.11.11

누룩 |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큰딸이 고3 때쯤이었습니다. 천 사 같던 딸들이 작심한 듯 냉담을 선언하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부 모의 신앙에 반기를 드는 것이냐며 큰소리를 냈습니다. 하지만 시간 을 쪼개고 잠을 줄여 입시에, 이후 에는 취업에 매달리는 딸들을 보 며 마냥 반대만 할 수는 없었습니 다. 그렇게 몇 번의 갈등 끝에 딸들 의 냉담을 묵인했습니다. 대신 언 젠가 주님 품에 다시 돌아올 거라 는 딸들의 말을 믿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 자 결승전, 부상으로 쓰러진 딸을 보며 관중석의 어머니는 오열하며 “기권해도 돼”라고 외쳤습니다. 하 지만 딸 안세영 선수는 힘줄이 끊 어진 무릎에 테이프를 감고 기적처 럼 승리를 일궈냈습니다.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딸을 보는 그 어..

세대간 소통 2023.10.28

누룩 | 매주 만나는 하느님 나라

매주 만나는 하느님 나라 제가 일하는 이곳 노동사목에는 주일마다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찾 아옵니다. 외국어로 진행되는 미사 를 봉헌하고자 오는 친구들, 어려운 상황에 처해 도움을 청하러 오는 친 구들,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친구들 입니다. 또한 주일마다 운영되는 무 료진료소 도로시의 집을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무료진료소 도로시의 집은 주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운영됩니다. 상시적으로 내과, 치과, 물리치료과 가 운영되며 한 달에 한 번 안과 진 료가 있고, 비정기적으로 건강검진 과 예방접종 등 이주노동자의 건강 과 관련된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습 니다. 주로 주중에 병원을 찾기 어려 운 친구들,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값 이 부담스러운 친구들, 한국어가 서 툴러 병원을 찾기 어려운 친구들이 찾아옵니..

세대간 소통 2023.10.14

누룩 | 저는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저는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군대 두 번 오니까 어때 요?”라는 질문을 들을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실제로는 “신부님은 전 역하면 어디로 가세요?”입니다. 그 런데 이 사실이 군인들에게는 굉장 히 부러운 일인가 봅니다. “저는 부산교구로 원복합니다.” 라는 대답을, 이들은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라고 알아듣습니다. 제 가 만나는 대부분의 군인들은 돌아 갈 곳이 없습니다. 지금 현재에 충 실하며, 국가에 충성하고자 하는 이들이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중이기 때문 에 불안해합니다. 전역하고 나면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군이라는 곳이 원래 자유롭지 않 습니다. 딱딱합니다. 그리고 불안 한 곳입니다. 아직은 전쟁이 일어 나지 않았..

세대간 소통 2023.10.07

누룩 | 고산 위에서 만난 목자

고산 위에서 만난 목자 얼마 전 키르기스스탄 여행 때의 일이다. 그날도 낡은 지프차를 타고 산속으로 구불구불한 비포장 도로 를 따라 해발 3,000m가량 되는 높 은 산을 넘어 이동 중이었다. 그러 다 인적이라고는 없는 길에 고장이 난 듯한 트럭과 나이 지긋한 남자 둘이 있었다. 현지인 가이드가 나를 향해 묻는다. “잠시 멈추고 무슨 일 인지 알아봐도 될까요? 이야기인즉, 두 남자는 두어 시간 거리에 있는 산 아랫마을 목동으로 가축들을 데리고 여름내 산에서 지 내고 있다. 그런데 밤이 되어도 몇 마리 양이 돌아오지를 않아 찾으러 산 위로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만 차가 고장이 나서 오도 가도 못 한 채 도움을 요청하고자 기다린 게 하루가 지났다. 주로 말을 타고 가 는데 그날은 날이 저물어 트럭을 탄..

세대간 소통 2023.09.30

누룩 | 형제복지원 피해자

형제복지원 피해자 형제복지원 피해자 N의 정신과 진료를 담당하게 되었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 알코올의존으로 고 통받고 있는 N. 아동기를 악몽 같 은 그곳에서 보냈으니 수십 년이 지 난 지금도 그의 공포는 현재진행형 이며 술이 유일한 위안거리다. 부산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일시보 호 위탁시설로 지정받았으나 눈에 거슬리는 일반시민들까지 강제 수용 했던 곳으로, 1975년부터 십 년동안 아이, 노인, 장애인, 여성에 이르기 까지 삼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금 되어 구타, 성폭행, 강제노역 등 가 혹행위를 당한 총체적 인권침해 사 건으로 공식 인정된 바 있다. N이 여섯 살 때 동네에서 놀고 있 는데 낯선 어른이 잠시만 차에 타라 고 하더니 형제복지원으로 데리고 갔단다. 그 길로 끊임없이 가혹행위 에 시달려야..

세대간 소통 2023.09.23

누룩 | 시련이 왜 하느님의 은총인가?

시련이 왜 하느님의 은총인가? “선생님, 배추에 소금을 왜 뿌려 요?” “뻣뻣한 배추는 푸릇푸릇 싱싱 하게 자랐지만 뻣뻣한 그대로는 김 치가 될 수 없지. 소금을 켜켜이 뿌 려 진한 눈물 흘리고 나면 살강살강 아삭아삭 부서지지 않고 포기포기 돌돌 감은 맛있는 김치가 되지.” 인생을 살다 보면 시련이 간간이 온다. 인생의 파도! 넘기 힘든 큰 것 도 있고 비교적 수월한 것도 있다. 인간에게 시련 없는 인생은 없다. 가만히 살펴보면 인간이나 배추 나 사는 모습은 같다. 잘 자란 배추 에게 소금을 치면 살짝 숨이 죽는 다. 배추로서는 죽을 맛이다. 싱싱 한 배추는 끝없는 눈물을 흘린다. 절인 배추는 맑은 물에 두세 번 헹 구어져 소쿠리에 담긴다. 배추는 ‘아! 이제 시련이 끝났구나.’ 생각하 지만 천만의 말씀..

세대간 소통 2023.09.09

누룩 | 연애와 결혼

연애와 결혼 저는 비혼주의자였습니다. 어린 시절 자주 다투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태풍 속에서 언제 깨질지 모르는 흔들리는 유리창을 보는 것처럼 제 마음은 늘 위태롭고 불안했었습니다. 부모님의 혼인 생활은 행복하기보다는 우울하고 답답한 모습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이란 하얀 웨딩드레스 를 입은 사진 속에서만 행복한 것이고 실상은 전쟁 터 같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친구로 알게 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아 이보리색 스웨터를 입은 그에게는 비누 냄새가 은 은하게 났습니다. 아직 앳된 소년 모습에 장난기가 많은 그 친구는 제가 여자이니까 이래야 한다거나 본인이 남자니까 저래야 한다는 편견 없이 저를 아 주 편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를 통해 따뜻한 봄날에 얼음이 녹듯이 마음이 편안해져 ..

세대간 소통 2023.09.02

누룩 | 우리를 성장시켜주는 노동

우리를 성장시켜주는 노동 노동이란 단어는 저를 포함한 어 떤 이웃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곤 합 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 을 유지하려면 노동은 필수이며, 많 은 시간과 에너지를 노동에 소모하 며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부터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 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 쳐 먹으며,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창세 3,17.19 참조) 죽을 때까지 생계유지를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은 슬프기도 하지만 자아실현을 돕기 도 합니다. 노동은 인간의 생각과 마음에서 시작되어 행위로 표현되고 다시 인 간에게 돌아갑니다. 세상 대부분의 일자리들은 최종적으로 ‘누군가’ 또 는 ‘자신’을 대상으로 향합니다. 혼 자 일하는 업종들도 마찬가지로 결 국 ‘..

세대간 소통 2023.08.26

누룩 | 작지만 중요한 각자의 역할

작지만 중요한 각자의 역할 TV 야생 동물 프로그램을 보면 맹 수와 초식동물이 어우러져 일정한 규칙을 지키며 공존하는 아프리카 초원의 멋진 모습이 나온다. 많은 장면 중, 초식동물을 발견하여 잔뜩 웅크리고 지켜보고 있다가 어느 순 간 폭발적인 순발력을 발휘하여 멋 진 갈기를 휘날리며 질주한 끝에 먹 잇감을 낚아채는 사자의 모습은 탄 성을 자아내게 한다. 가히 백수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하다. 그러 나, 사냥 천재인 사자도 신체의 어 느 일부에 밸런스가 깨지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 기보다도 약한 다른 맹수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한 번 은 이빨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사 자가 먹지 못하니 힘이 없어 사냥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하이에나 무리의 공격을 받아 힘 한번 못..

세대간 소통 2023.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