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1413

완전 ‘럭키비키’잖아! | 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님(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

완전 ‘럭키비키’잖아! | 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님(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클릭):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41104500054 [밀알 하나] 완전 ‘럭키비키’잖아!과거 별자리, 띠, 혈액형의 시대를 지나, 요즘 우리는 바야흐로 MBTI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정확히 16개의 유형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체계적www.catholictimes.org

사제의 공간 2024.11.08

“잘 사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 이세형 유스티노 신부님 (율하성당 주임)

“잘 사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이세형 유스티노 신부님 (율하성당 주임)  예수님은 외형에 치우친 율법학자들을 신랄하게 비 판하십니다. 인사받기를, 윗자리를 즐기고 남에게 보 이려고 기도는 길게 하는 그들은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거만한 마음처럼 보기 흉한 것도 없 습니다. 거만한 마음을 가지면 사람은 겸손함을 잃어 버려 자기 자신을 고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이 모든 중심에 있다는 그릇된 생각에 빠져 들어 잘못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거만한 마음이 죄는 아니지만 어 리석은 것입니다. 또한 자기혐오도 거만한 마음가짐의 하나로 봅니다. 주위의 사람들..

사제의 공간 2024.11.07

하느님께 나아가는 두 날개 | 박규흠 베네딕토 신부님(제14 동작지구장)

하느님께 나아가는 두 날개                                                           박규흠 베네딕토 신부님(제14 동작지구장)  우리는 꼭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꼭 1등이 누구인지 정해야만 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엄마와 아빠 중에서도 누가 더 좋은지 선택을 강요받으며 커온 우리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된 일인가 봅니다. 예수님 시대의 한 율법 학자도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 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 12,28) 하고 묻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도 하고 싶었던 질문을, 고맙게 도, 이 율법 학자가 대신해 준 것이기도 합니다. 이 율법 학자는 분명히 한 개의 정답을 바라고 질문했을 것입니 다. 정말..

사제의 공간 2024.11.03

“사랑의 기술을 배우는 신앙생활” | 윤대성 세례자요한 신부님(청룡오리정(해병대 제2사단) 성당 주임)

“사랑의 기술을 배우는 신앙생활”                                                                   윤대성 세례자요한 신부님(청룡오리정(해병대 제2사단) 성당 주임)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 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사랑의 기술, 에 리히 프롬) 모든 사람은 살아가면서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을 갈망하지만 대부분 굶주리면서 살아가고 있기에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싶다면 예를 들어 운동이나 예술, 음 악이나 요리를 배우려고 할 때처럼 동일한 과 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 랑의 계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첫째,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사제의 공간 2024.11.01

사랑의 착각 | 신진수 골롬바노 신부님(송정성당 주임)

사랑의 착각                                                               신진수 골롬바노 신부님(송정성당 주임)  여러분은 혹시 적당한 신앙생활과 손해 보지 않는 봉사활동 정도로 하느님의 축복과 삶의 기적적인 변 화를 꿈꾸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신앙인들이 하느 님과 적당히 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하느님의 사 랑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불안해하지 않고, 이웃을 적당히 사랑하고, 미워하는 삶으로 자신의 행복이 보 장된다고 믿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적당히 지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마음, 목숨, 정신, 힘을 다하라고 하셨고,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셨 습니다.(마르 12,29-31참조)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신 앙..

사제의 공간 2024.10.31

마음과 마음이 모인 곳에 | 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님(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

마음과 마음이 모인 곳에 | 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님(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클릭):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41028500079 [밀알 하나] 마음과 마음이 모인 곳에저에게 주어진 소임은 장애인 사목이지만, 사는 곳은 ‘평화의 모후원’이라는 양로원입니다. 경로 수녀회로 잘 알려진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하는 무료 양로원에 거주하면서www.catholictimes.org

사제의 공간 2024.10.30

진정한 기도의 자세 | 김병흥 세영알렉시오 신부님(칠곡가톨릭병원 행정부장)

진정한 기도의 자세                                              김병흥 세영알렉시오 신부님(칠곡가톨릭병원 행정부장)  오늘 복음에 바르티매오라고 하는 눈먼 거지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께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르 10,51).”라고 한 것을 볼 때, 태생 소경 이 아니라 후천적 장애로 보입니다. 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면 적 응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천적인 경우는 그전까지 익혀왔던 감각을 잃어버리면서 신체의 상실감은 물론, 심리적 상실감까지 가지게 됩니다. 이전의 자유로움을 알기에 예전의 온전함을 바라는 마음은 엄청나게 컸 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차별과 자신의 한계에 부 딪힌 나머지 길거리에 앉아 구걸밖에는 ..

사제의 공간 2024.10.29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박상운 토마스 신부님(안식년)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박상운 토마스 신부님(안식년)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 매오라는 눈먼 거지는 예 수님을 향해 외칩니다. 어 둠 가운데 머물던 그에게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절박함으로 마지막 희 망을 붙든 채, 군중 사이에 계시는 예수님을 향해 힘껏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잠자코 있 으라고 꾸짖으며 예수님과 그의 사이를 갈라놓습 니다. 그들의 방해에도 그는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 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사제의 공간 2024.10.28

우리도 진정으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자! | 김종민 사도요한 신부님(만년동 주임)

우리도 진정으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자!                                                                                             김종민 사도요한 신부님(만년동 주임)  오소서 성령님!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예요? 예수님이 오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어떤 것을 청하시겠습 니까? 오늘 복음에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가 나옵니다. 눈먼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향해서 “다윗의 자손 예 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이런 바르티매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진정으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기를 청해 봅니다. 바르티매오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로부터 주워들 었던 나자렛 사람 ..

사제의 공간 2024.10.27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 이근상 시몬 신부님(예수회)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근상 시몬 신부님(예수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자니, 살면서 피하고픈 참 아쉬 운 말입니다. 우리는 애달픈 자비보다는 당당한 거래, 다른 이의 처분에 매달리는 비루한 삶 대신,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 떳떳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남의 처분이 아니라, 내 요청이 힘을 얻는 삶을 사는 와중에 들이닥치는 가난은 곤 란합니다. 오늘 복음 속 바르티매오처럼 내놓을 게 없는 가 난은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자비에 기대어 외칠 뿐입 니다. 천덕꾸러기. 사람들은 눈치를 줍니다. 세상이 이런 이들에게 기대하는 미덕이란 잠자코 사는 것. 소..

사제의 공간 2024.10.26

당연하지 않을 때 보이는 것들 | 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님(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

당연하지 않을 때 보이는 것들 | 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님(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클릭):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41021500046 [밀알 하나] 당연하지 않을 때 보이는 것들우리 교구 사회복음화국에는 본당 외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위원회들이 많습니다. 제가 사목하는 장애인사목위원회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체, 농아, 시각, 발달 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장애www.catholictimes.org

사제의 공간 2024.10.25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오용환 가브리엘 신부님(동래성당 주임)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오용환 가브리엘 신부님(동래성당 주임)  헬렌켈러가 어느 날 숲속을 다녀온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별반 특별한 것이 없 었다고 했습니다. 헬렌켈러는 두 귀를 열고 두 눈을 뜨 고도 별로 특별한 것을 보질 못했다는 말을 이해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만일 나에게 사흘만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첫째 날은 자신을 가르치고 이끌 어 주신 선생님을 보고 싶고, 둘째 날은 아침엔 먼동이 트는 태양을 보고 싶고, 저녁엔 노을과 별을 보고 싶 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대자연을 보고 싶다고 했습..

사제의 공간 2024.10.24

“나야, 하느님!” | 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님(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

“나야, 하느님!” | 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님(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클릭):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41014500057 [밀알 하나] “나야, 하느님!”“신부님도 그 방송 보셨어요?” 요즘 유행하는 TV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듣는 질문입니다. “네, 저도 즐겨 보고 있어요”라는 대답에 의외라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아마 신www.catholictimes.org

사제의 공간 2024.10.22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4년 제98차 전교 주일 담화 (요약)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4년 제98차 전교 주일 담화 (요약)‘가서 모든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여라’(마태 22,9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올해 전교 주일을 위하여 선택한 주제는 혼인 잔치의 비유(마태 22,1-14 참조)에 관한 복음 말씀입니 다. 이 비유의 주인공인 임금은 자신의 초대를 손님들 이 거절하자 종들에게 이렇게 이릅니다. “그러니 고 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 라.”(마태 22,9) 우리는 이 핵심 구절을 성찰하면서 복음 화의 여러 중요한 측면들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1. ‘가서 초대하여라!’ 주님의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 하러 끈기 있게 나아가는 선교 사명임금이 종들에게 내린 명령에서, 우리는 선교 사명 의 핵심을 표현하는 두 단어를 발..

사제의 공간 2024.10.20

음악과 춤 그리고 포옹 | 이한석 사도요한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음악과 춤 그리고 포옹                                                                     이한석 사도요한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저는 서울 외곽에 살기에 명동성당 가는 길이 기쁩니다. 삶을 누리는 화사한 이들 틈에서 걷다 보면 저도 덩달아 마 음이 부풉니다. 그런데 가끔 거리의 음악 소리를 뚫고 들려 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웃음을 머금고 걷는 이들 사이에 서 그들의 환희를 책망하듯, 심판과 지옥을 부르짖는 외침 입니다. 제가 아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신데 그들이 외 치는 익숙한 단어들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분은 거리를 걷는 평범한 이들의 기쁨에 함께하시고, 이들의 실수에 아 파하시며, 화려함 뒤에 숨은 공허함도 안아주시는 분일 텐 ..

사제의 공간 2024.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