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사랑의 기술을 배우는 신앙생활” | 윤대성 세례자요한 신부님(청룡오리정(해병대 제2사단) 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4. 11. 1. 10:15

“사랑의 기술을 배우는 신앙생활”

 

                                                                  윤대성 세례자요한 신부님(청룡오리정(해병대 제2사단) 성당 주임)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 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사랑의 기술, 에 리히 프롬) 모든 사람은 살아가면서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을 갈망하지만 대부분 굶주리면서 살아가고 있기에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싶다면 예를 들어 운동이나 예술, 음 악이나 요리를 배우려고 할 때처럼 동일한 과 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 랑의 계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첫째,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둘째,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죠.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라고까지 하십니다. ‘계명’이란, 종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을 의미하는데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계명’이 들어있지 않다면 과연 그걸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예수님에게서 ‘사랑의 기술’을 배워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첫 걸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우리는 사랑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죠.

나와 가치관, 성격유형, 사고방식이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것,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 하는 것,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책임 지는 것 등 사랑은 한 가지 말로 정의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아마 하느님께서 인간을 세상에 보내신 까닭은 세상 속에서 다양한 사랑을 통 합하고 성장시켜 당신의 마음을 닮게 하시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에리히 프롬의 진단처럼, 자신의 성공, 출세, 돈, 권력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 하지만, 사랑을 배우는 데 있어선 인색한 우 리의 모습을 오늘 복음을 통해 성찰했으면 좋 겠습니다. 비록 처음엔 잘되지 않겠지만 ‘1만 시간의 법칙’(아웃라이어)이라는 말처럼 사랑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다 보면 어 느샌가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여 주신 그 사랑을 닮아갈 것이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