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시집 338

담쟁이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담쟁이 松竹 김철이 동그랗게 말아 올린 꿈 푸르른 마음속으로 접을래 빨간 흙담 속으로 거듭거듭 되감아 넣을래 다져 쟁인 꿈들이 산지사방 흩어져 내려도 팔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있기에 말고 또 쟁이면 되니까 넝쿨손 부르트고 잎사귀 메말라도 내일을 부여받지 못한 현실 속에 오늘을 말아 올리라 화초라 불러도 잡초라 불러도 중추월(仲秋月) 따뜻함이 있기에 서두르지 않고 꿋꿋이 나가리

개인♡시집 2023.10.08

하루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하루 松竹 김철이 오늘이란 이름표 달고 내일이란 삶의 둥지 속으로 소리 소문도 없이 데려다 놓는 생의 동반자 눈에도 차지 않고 품에도 들지 않는 임이라 부르리까 생의 살점을 뜯어 갈 철천지원수라 부르리까 시간의 공간을 빌려 창살 없는 감옥 속에 인생을 가둬놓고 세월의 채찍질로 저승 몰이 여념 없네 뉘라서 막을 손가 하루의 권세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짜진 틀 안에 죽어간 순교자 될 테지

개인♡시집 2023.10.01

인생 노래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인생 노래 松竹 김철이 세상 그 누가 지었나, 심오하고 미묘한 그 노래 가락마다 기쁨이요 소절마다 아픔이니 추리소설 같고 모노드라마 같다더라 한 박자에 웃고 두 리듬에 우니 관객 없는 무명의 무대 위 단역의 풍자극 같구나 때론 엇박자에 슬퍼하고 때론 같음표에 박장대소 거두절미 어차피 한번 부를 노래라면 비곡(悲曲) 말고 희곡(喜曲)만 쟁여 불렀으면

개인♡시집 2023.09.24

기일(忌日)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기일(忌日) 松竹 김철이 어느 지난날의 오늘 간혹 날 낳아주신 부모님 피눈물 절규로 떠나보내야 했던 절망을 겪어야 했다 간혹 몇십 년 동고동락하던 피붙이 작별도 하지 못한 채 속울음 꺼이꺼이 토해야 했다 태산준령 갖은 고뇌로 넘어도 얻을 수 없고 갖은 상념으로 강과 바다를 메운다 한들 이을 수 없는 혈연 세상 그 무엇으로 이을지

개인♡시집 2023.09.17

우정이란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우정이란 松竹 김철이 구름은 뭉게뭉게 신선인 양 시선은 멀리 두고 산봉우리 걸터앉아 잡나무 잡새 산 벌레 산짐승들 차별 없이 비바람 맞을세라 비바람 걸음 앞서 일러주고 먼 봉우리 흘러갔다 되돌아 흘러온다. 샘물은 송골송골 잔돌 큰 돌 가리지 않고 돌 틈에서 어깨를 걸고 걸어 솟고 솟아 짱돌 수수돌 자갈돌 석돌 구별 없이 씻어주며 헌신으로 흐르다가 돌 틈으로 되돌아 들어갔다 다시금 헌신으로 솟아나 희생으로 흘러간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서 뭇 인생 끝을 향해 줄달음치지만 우정이란 두 글자 따뜻한 피가 흐르는 가슴팍 차별 없고 구별 없이 영생을 누림이니라

개인♡시집 2023.09.10

물 2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물 2 松竹 김철이 누가 뭐래도 무색이요 누가 우겨도 무향인데 원대한 꿈을 품고 겸손한 걸음 아래로만 걷는다. 길이 없어도 한 마디 불평 없이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겸허한 행적 낮추어 흐르더라 가슴 타는 논밭도 가로질러 축이고 목 타는 초목들도 뿌리 속까지 촉촉이 적시네 때론 분노한 부정이 되고 때론 울분한 모정이 돼도 뭇 생명 품어 흐를 내리사랑 영원하리

개인♡시집 2023.09.03

물 1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물 1 松竹 김철이 물은 언제든 다툼의 씨앗을 빚지 않고 세상 누구와도 다툼이 없으라. 두서넛 달 혹한에 발이 묶여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의 걸음 춘삼월 부초를 엎는다. 드높은 하늘 무작정 등 떠밀어도 제 어미 제 새끼 사랑으로 품듯 물속 생명체 품어 흐른다. 부평초 신세 한순간 위로받지 못해도 마냥 흐르는 절개, 꺾지 않고 만삭의 계절 업어 도도히 거닌다. 동장군 칼바람 흘러야만 할 물길 통째 가로막아도 굴하지 않고 쉬었다 가고 돌아서 간다.

개인♡시집 2023.08.27

산에, 산에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산에, 산에 松竹 김철이 그대 품에 안기어 도란도란 세파에 병든 마음을 풀어놓고 해 질 녘 그대 홀로 남긴 채 돌아갑니다 금낭화꽃 늘어서서 배웅하고 몇 걸음 앞서 골골대던 물소리 어둑어둑 초저녁 계곡 길 열며 인생들 삶터로 되돌아갑니다 세상살이 살아가며 인생살이 늙어가며 버거운 삶 지칠 때면 먼발치 멍하니 그대를 바라다보고 정녕 그리울 때면 그댈 찾아 잠시 안식을 누리지요 그렇게 저렇게 살다가 그대를 영영 마주할 수 없는 날 그대 등성이 편히 누워 그대 닮은 그대로 되살 수 있을지

개인♡시집 2023.08.20

시묘살이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시묘살이 松竹 김철이 부모님 이별한 지 이십여 년 모습과 표정은 봄날 아지랑인데 이름은 영혼 속 껌딱지 지워질 줄 모르더라 이승과 저승의 거리 몇 리나 되길래 내 아비 내 어미는 밤이면 밤마다 밤마실 오가실까. 허리도 굽지 않았고 머리엔 서리도 내리지 않았네 반백이 넘은 날 보고 아들자식이라 부르니 내 아비 내 어미 계부 계모인 줄 알겠네 그래도 좋소이다, 살아생전 효도 못 한 아들자식 저승 가는 그날까지 영혼 속에 초막 짓고 시묘살이할 터이니 밤길 조심 하사 찾아오소서

개인♡시집 2023.08.13

꽃불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꽃불 松竹 김철이 “불이야!” “어디?” “어디?” 뭇시선이 머문 곳 산등성이 불은 산을 통째 삼키려는데 남녀노소 입질에 오르내리는 건 외마디 환성뿐 누구 하나 불 끌 생각이 없다. 화마는 절정에 이르러 산자락을 타고 오르더니 산골짝 계곡마다 퍼질러 앉아 메아리 인파를 부른다. 꾀꼬리 울고 잔대꽃 푸르게 필 무렵 진달래 꽃불은 생을 다한 깜부기불로 남겠지

개인♡시집 2023.08.06

인생은 하루살이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인생은 하루살이 松竹 김철이 뉘라서 모를쏘냐 금은보화 곡간에 쌓는 기쁨 인생사 소풍 걸음 맨발 벗고 맨몸으로 홀로 왔던 외길이니 나누고 정 베풀어 돌아 돌아 길에 꽃길 삼아 걸어가소 인생 백 년을 산다 해도 아픈 날과 슬픈 날을 뺄셈으로 빼고 나면 성한 날도 기쁜 날도 한순간 물거품인데 하루인들 헛살리까 소풍 온 기념으로 마음 문 자물쇠 끌러 놓고 슬픈 이도 아픈 이도 축복으로 맞이하세 앞앞이 복되어 소나기로 내릴 인생살이 길목에서

개인♡시집 2023.07.30

춘계전쟁(春季戰爭)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춘계전쟁(春季戰爭) 松竹 김철이 벙커 속 초록 신병들이 적군도 없는 전투의 파병을 위해 하나둘 머리를 내밀어 새파란 눈으로 적진을 응시한다. 폭음 없는 폭파는 삼천리 금수강산을 뒤엎고 시절의 패잔병 꽃샘추위 엳아홉 달 작전상 후퇴를 한다. 지하 참호 속에 은폐 중이던 동면 동물들 일제히 승전보를 전하고 얼음 되어 억류당하던 물은 자유 찾아 드넓은 물의 세계로 간다. 또 다른 전선의 승전을 위해 민들레 홀씨 특전병 되어 꽃바람 군 수송기 삼아 돌아오지 못할 정찰을 떠난다.

개인♡시집 2023.07.23

말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말 松竹 김철이 발도 없는 언어 몇 마디 천 리를 간다고 했지만 그 누가 허락했다고 남의 가슴에 왕소금을 뿌렸더냐 쓰레기이야 쏟으면 쓸어 담을 수도 있다지만 말 한마디 잘못 내뱉으면 다시는 쓸어 담지 못하거늘 입방정 그만 떨고 선산 묫자리나 찾기를 네 마음 아프면 내 마음 성하다더냐 말로 입힌 상처, 말로 씻으려 말고 네 살아있는 생명의 양심으로 기워 갚으렴 먼 훗날 네 죽어 저승 갈 적 세 치 혀로 내뱉은 몇 마디 네 말 올가미로 네 영혼마저 살릴 수 없으리

개인♡시집 2023.07.09

천태만상 | 제 4시집_삶의 고해 중에서

천태만상 松竹 김철이 세상사 드넓다 해도 꼴사나운 행세 천지에 널린 채 꼴값을 떨어대니 눈꼬리가 절로 오르락내리락 차라리 삭발하고 폭포 물에 득음이나 하련다 살다 살다 외로울 땐 산새 들새 벗하며 세상을 논하고 맹자를 논하더라도 검은 걸 희다곤 않으리 안주 없어 술 못 마시랴, 술이 뭐 별거더냐? 물이 술이 되고 술이 물이 되는 더러운 인생사 술 걸러 물로 마시겠네 너른 세상사 하루살이 생을 살다 날개를 접더라도 나날이 천태만상 속에 값없이 떠오를 둥근 태양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 보련다

개인♡시집 2023.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