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섭리를 바라보는 시선 | 김성태 요셉 신부님(내포교회사연구소 소장)

松竹/김철이 2024. 6. 22. 12:15

섭리를 바라보는 시선

 

                                                김성태 요셉 신부님(내포교회사연구소 소장)

 

 

내포, 너른 들에서 나고 자란 선생님은 천주를 두려 워한다고 했다. 그의 두려움 은 광활한 들판의 변화무쌍 에도 불구하고, 정연한 질서 로 조화를 이뤄가는 대자연 의 신비에서 비롯되었을 것 이다. 그게 천주의 섭리라는 걸 선조들은 알고 있었다.

 

그 시절엔 혹독한 가뭄이 흔하게도 찾아왔다. 다 자란 모를 내지 못한 농부의 가슴은 말라서 갈라진 땅만큼이나 깊이 패고 아렸을 것이다. 교우들은 그때마다 비를 청하는 9일 기도로 천주께 의지했다. 제아무리 메마른 하늘도 기도 끝에 다가온 ‘베드로·바오로 축일’에는 영락없이 비 를 주셨다고 했다. 세상을 대하는 선조들의 태도와 그를 기억하는 선생님의 표정에서는 섭리에 대한 경이로움과 신뢰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장마철이라 비가 오는 게 아 니라 내리는 비에 천주의 뜻이 담겼노라고 그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들녘의 봄은 바람이 항상 모질게 일었다. 바람이 거세 게 몰아칠수록 순교자의 자취가 더욱 생생하게 아른거 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병인년 이른 봄, 착한 목자 다블 뤼를 실은 배는 거센 역풍에 밀려 내포를 떠나가지 못했다.

 

바람이 막아 세운 선교사의 마지막 발자취는 천주께서 ‘가라’ 하신 세상의 끝이 아니었을까. 그는 여기서 순교자가 되고, 성인이 되었다.

 

슬픈 봄바람을 다시 생각한 것은 한 교우의 혼잣말 때 문이었다. ‘아, 바람이 불어야 할 텐디.’ ‘바람은 왜 불어 야 한대요?’ ‘그래야 논을 갈쥬.’ 이른 봄엔 바람이 모질게 불어야 한단다. 바람이 불어야 언 땅이 녹고, 녹은 땅이 굳고, 굳은 땅은 쟁기로 깊이 갈아 씨를 뿌릴 수 있다. 어느 바람은 곡식을 주고, 어느 날의 바람은 나그네의 길을 막고, 그 바람은 다시 순교자를 내었다. 바람이 슬픈 게 아니라 바람에 깃든 천주의 뜻이 새로운 소명을 그에게 부여한 것 이다. 바람을 내신 천주께서는 그 의미까지도 섭리하시는 까닭이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 는가?’(마르 4,41)

 

거센 바람과 성난 파도, 큰 물과 메마른 대지까지 천주 하느님의 섭리 속에 있다는 복음의 진리를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고 살고 죽고,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들이 중요한 건 일의 크고 작음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허 락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다시 주어진 일상에 진지하고 성실하자고 다짐하는 것은 선조들처럼 오직 천주만을 두 려워하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