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기자가 본 세상 이야기 | “와서 보라”

松竹/김철이 2024. 3. 23. 18:39

“와서 보라”

 

 

집이 의정부라 서울의 사무실로 출근하려면 광 역버스를 타고 가서 지하철 7호선으로 갈아타야 한 다. 의정부 일대에서 서울로 오가는 직장인들이 워 낙 많아서 출퇴근 시간이면 수많은 인파들이 버스 를 내려 전철역으로 달려들 간다. 거기에 도봉산으 로 등산 가는 인파가 뒤섞여 난리 난리 북새통이다.

 

그 와중에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짜증 나 는 장면이 있다. 기성종교의 막무가내 선교 전략을 그대로 드러내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다. “예수 믿어서 천당 가세요.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한여름 땡볕에도 한겨울 삭풍에도 하루도 빠짐없 이, 전철역을 오르는 계단 옆에서 협박조의 선교 구호를 외치는 어르신을 보면 존경심과 함께 솔직 히 살짝 짜증이 난다.

 

선교 혹은 전교 활동에 대해서, 필자를 포함해 우리는 사실 조금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그 믿음을 널리 전파함으 로써 좋은 것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 다. 분명히 스스로 진리라고 믿는 것을 혼자만 간 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선포 하라고 명하셨고, 바오로 사도 역시 복음선포는 그 리스도인의 의무이기에 자랑거리가 될 수도 없다 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길거리에 서서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게 복음을 선포하고, 조금 협박조이긴 하지만 진리 를 구해 얻고 구원을 얻으라고 하는 외침을 책망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건 나름 그분들의 확신 에 찬 실천의 한 방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 가 이런 방식이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낯설고 때로 는 거부감을 느끼게 하지만 가두 선교나 가정 방문 등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가끔은 선택되는 선교 방 법이기도 하다.

 

이웃 종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종단의 수장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기사를 올해부터 싣고 있다. 얼마 전 정교회 한국 대교구장 암브로시오 조그라포스 대주교를 만날 기회를 가졌다. 다른 이 웃 종교에 비해 교세가 미미함에 안타까웠던 필자 가 좀 더 왕성한 선교 활동의 필요성을 물었다.

 

이에 그는 “와서 보십시오”가 자신들의 선교 방 법론이라며, “정교회는 공공장소에서나 남의 집 현 관문을 두드리는” 방식의 선교를 하지 않는다고 말 했다. 물론 선교는 교회의 숨, 호흡이라 할 만큼 중 요한 일이지만, 개종을 강요하기보다는 귀감과 모 범으로써 그리스도를 알려주고 믿도록 이끈다는 뜻이다.

 

물론 하느님의 섭리는 오묘해서, ‘밀가루 신자’ 라고 참되게 신실한 신앙인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 다. 하지만 특히 글로벌한 현대세계, 다종교, 다문 화, 다인종 사회 속에서 위협과 강요로 믿음을 강 요하지 않는 자세는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선교일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종교적 신념이 수많은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적 이해타산과 어우러져 비인간적 폭력의 빌미가 되고 있음을 역사적으로 체험했고, 또 지금 이 순간도 목격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 쟁에서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종교는 폭 력을 거부하고 평화를 회복하기를 돕기보다는 오 히려 폭력을 정당화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은 폭력적 사고다. 예수님 은 당신의 적들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 진압하고 억 압해서 당신의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채찍에 쓰러지고 마침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세상을 구원하셨다. 진리를 강요 함은 결코 진리를 수호하는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귀감과 모범에 더 주목해야 한다. ‘대조사회’로 불리웠던 초대교회의 모범에 따라 세 상의 논리와 가치를 거슬러 하느님의 셈법에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가 돼야 할 것이다. “예수 안 믿으 면 지옥 간다”는 협박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 들이 빚어내는 지상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참된 선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