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면 의사에게, 그럼 마음은?
우리는 누구나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일단 병이 들면 통증이 생기고 그 아픔을 견디는 것 자체가 쉽지 않 으며 일상을 살아가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플 때는 무엇보다도 죽음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 고, 병이 깊어지면 실제 그렇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어디를 찾아가나요? 의사가 있는 병원에 갑니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고쳐주기 위해 오랜 시 간 공부와 훈련을 한 전문가여서, 우리는 그에게 자신의 건강을 내맡깁니다. 그리고 치료해주는 대가로 비 용을 지불하지요. 많이 아플 만큼 병이 심각해지면 큰돈을 내곤 합니다. 그만큼 치료 과정이 복잡해지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까요.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큰돈일지라도 어떻게든 그것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몸의 고 통은 참는다고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아플 때는 어떻게 하나요? 일단은 참지요. 계속 참습니다. 그러다 정 안 되면 친구에게 전 화하거나 그를 만나 수다를 떱니다. 술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요. 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 다.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두세 번 정도의 뒷담화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그 아픔이 일회적이 아니 라 반복적으로 겪어온 것이라면, 결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마음이 아픈 데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을 때, 남들이라면 어느 정도 넘길 수 있는 문제를 본인은 계속 예민 하게 대하면서 죽을 때까지 힘들어할 가능성이 큽니다. 안 낫는 거죠. 같은 상처를 평생 움켜쥐고 살아가게 된다는 겁니다. 자신의 예민함을 바꾸고 싶어서 어떻게든 노력을 해보지만 잘 안 되니 포기해버리고, 다시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한 번 더 시도해보지만 이내 포기해버리기 일쑤입니다. 사실, 그 예민함의 원인을 모르면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대충 ‘이게 문제였어.’ 하고 짐작하는데 그게 틀린 진단이 아니더라도, 문제의 원인이 되는 상처를 치유하려면 더욱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저는 중2 때 학교 화장실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화장실 문의 손잡이가 고장 나 문 위에 있던 유리를 뜯어 내고 간신히 나올 수 있었죠. 다음 수업은 이미 시작됐고, 같은 반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부끄럽게 자리로 돌아왔더랬습니다. 문제는 제가 대학에 가서도 철문이 있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갇힐 거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문제는 갇힌 것 자체가 아니라 부끄러웠던 아이들의 웃음에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제동이 걸린 점이었습니다. 이는 신학교에 가서 공개발 표 때 재연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과거와 비교해 꽤 줄어든 편입니다. 만일 제 문제를 그냥 방치해버렸다면, 살면서 이를 계속 겪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일은 만들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자세로 지내왔을 겁니다. 또한 저 스스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진즉에 별 효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음은 몸 못지않게 복잡다단하기에, 마음의 깊은 상처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 잘 낫지 않습니다. 몸이 아 프면 전문가인 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아플 때도 비슷한 방법으로 나 자신을 돌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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