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2

松竹/김철이 2020. 4. 13. 09:23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주님 부활대축일이 지나고 온 몸에 힘이 빠진 느낌입니다. 집으로 들어와 아무 정신 없이 넋을 놓고 누워있었습니다. 주님은 부활을 하셨는데 잠시 무덤에 대신 누운 듯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긴장감이 사라진 홀가분하고 또 즐거움만 남은 시간입니다. 이래저래 말입니다. 


부활이 지나고 부활 팔일 축제가 이어집니다. 주님의 거룩한 성주간을 보낸 다음 부활의 거룩하고 즐거운 시간들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매일 들려오는 주님 부활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함께 보게 됩니다. 


기쁨의 날. 눈에 들어온 복음의 내용은 그리 반갑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세상에서 그저 착했던 한 사람이 왜 그렇게 싫었을까요? 그들이 주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지금 영생을 주장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눈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죽지 않음을 주장하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몰았던 이들은 주님이 살아 있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주님이 계시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아니 그것이 사실이면 안되는 이유는 한 사람의 불사불멸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만들어 낸 하느님의 축복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참 사람됨이란 우리가 살면서 만들어 낸 수많은 힘과 권력, 그리고 질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앞서 사람에게 자리해야 하는 하느님 다움. 곧 사랑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모두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예수님처럼 마음을 먹고 세상을 산다면 그들의 위선은 당장에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소문만으로도 위험하게 생각한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정직하고 착하고 선하게 사는 의인과 나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의인은 다릅니다. 죄 없이 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은 아닙니다. 


사랑은 모든 의로움의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서 나오는 의로움은 모든 무죄한 이의 위선을 드러내는 빛입니다. 또한 그 사랑은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지 않고 행복하게 하는 소금의 역할이 됩니다. 



부활은 그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뜻으로 살아나 세상과 하느님을 분리하는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세상을 살아 다시 다스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힘이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 그 분을 말하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살아있다면 아직 세상을 지배하려하는 그 숱한 이들을 다시 두려움에서 바른 삶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은 그래서 꼭 필요합니다. 그들은 거짓말로 예수님을 다시 죽이려 들었지만 예수님은 그들보다 먼저 우리 안에서 다시 사셨으므로 우리는 부활의 증인이요, 증거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