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어졌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강론 듣기 : https://youtu.be/GhMhyI5jtSc
주님의 수난의 날입니다. 성금요일은 주님 만찬 미사로 시작되지만 우리의 하루가 시작되는 때엔 주님이 잡히시고 심판에 넘겨져 십자가의 길을 걸으실 때와 같습니다. 이날 우리는 성지주일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수난기를 읽게 됩니다. 성금요일 예식에는 변함 없이 요한복음이 전해주는 기록들을 읽고 기억하게 되는데 주님이 잡히신 그 새벽녘의 모습부터 등장합니다.
주님을 죽이기 위해 결의한 이들은 무죄한 사람에게 죽을 죄를 만들어 씌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한나스와 가야파를 거쳐서도 죽을 죄를 확정하지 못한 이들은 결국 로마의 총독에게까지 끌고가 떼를 쓰며 죽어야 할 사람이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자신의 민족이고 그 죄 하나 밝혀낼 수 없는 사람을 죽이려 그를 따르던 사람들까지 선동해서 그들의 눈과 귀를 막고 살해에 동조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사람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악함은 그가 서 있는 자리, 곧 하느님의 대사제이든, 율법의 스승이든 상관 없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오히려 이방인인 총독이 예수님을 살리려 애를 쓰는 모습은 어이 없기까지 합니다.
해마다 같은 복음을 읽지만 그 느낌은 한 번도 무뎌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지막을 슬퍼해야 하지만 오히려 주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처럼 침묵하십니다. 죄 없음을 알면서도 그를 죽여야만 하는 빌라도의 처지를 보면 어떤 편견이 가져오는 말도 안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본다면 실패한 듯 보이는데도 다 이루었다는 뜻은 완성되었다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이루어졌을까요?
십자가는 예수님, 곧 하느님의 뜻을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는지가 드러난 사건입니다. 주님께 대한 불신과 신앙이 공존하는 세상이었지만 그 사회를 지배하는 이들, 그 사회의 지도자들이 종교적인 스승이었다면 그들은 하느님께 사형선고를 했고 사형을 집행한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이방인조차 하느님을 처벌해야 하는 억지스런 죄를 지어야 했으니 세상의 잘못이 완전히 드러났다는 것이 그 첫 의미일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순간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온 몸으로 드러내신 순간을 주님이 표현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세상이 하느님께 등을 돌려 회개의 삶을 살지 못해도 하느님은 그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 심판할 자격을 가졌으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랑했던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그 잔을 마신 사건이 십자가라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당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백성들을 용서하심으로 이루어진 구원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년에 한 번씩 주님을 잃어버리는 상실의 날을 보냅니다. 순식간에 우리 앞에서 사라지신 주님. 그 공백이 우리에게 진짜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순간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 순간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이제 주님이 바라시는 우리의 모습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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