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강론 듣기 :https://youtu.be/8Ccs_sX8ZGc
해가 저물어가면 주님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미사가 시작된 날이기도 하고 주님과 제자들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한 자리입니다. 주님을 팔아넘긴 유다조차 이 식사에 함께 했고 주님의 빵을 함께 먹었던 시간입니다.
이 시간엔 세가지 서로 다른 마음이 공존합니다. 주님의 마음과 제자들의 마음,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마지막을 유일하게 아시고 마지막 자리로 저녁 식사, 그것도 구원의 파스카를 기억하는 축제의 식사를 열었습니다. 마련된 곳에 차려진 음식 앞에 제자들을 초대했다는 의미. 그리고 그들에게 주님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그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으로 그들 기억에, 그리고 마음에 가르침을 새기십니다.
그래서 주님께는 진지함과 최선의 사랑이 보입니다. 반면 이를 알리 없는 제자들은 최고의 기쁨과 행복을 느꼈을 겁니다. 주님과의 식사는 늘 즐거웠지만 이 자리에서 주님이 직접 발을 씻어주셨기에 그들은 일생에 단 한 번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식사에서 예수님의 알 수 없는 말씀 속에 그분의 모든 것을 받아들게 됩니다. 결국 스승을 하루 아침에 잃게 되겠지만 이 때의 가르침이 그들이 지금껏 주님과 지내왔던 모든 것을 기억하게 했을 겁니다.
주님과 제자들과 달리 이 사건을 이천년 넘어에서 지켜보는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 식사의 자리가 그리 맘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이어지는 수난 감실의 긴긴 밤을 알고 새벽부터 계속된 모함의 연속과 사형장으로 가시는 주님의 길을 기억하고 함께 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주님의 미래는 암울하고 제자들의 모습조차 비겁하거나 초라하기에 이 식사의 느낌이 마냥 즐거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밤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시고, 제자들이라면 이 날의 느낌은 분명 알면서도 기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야말로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와 마지막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할 때 주님은 식사로 그들을 초대하시고 발을 씻어 그들이 주님께 어떤 존재인지 알게 하시고 생명의 빵과 구원의 피를 나누어 숨겨진 유산과 유언을 모두 주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따르는 신앙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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