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강론 듣기 : https://youtu.be/s7JLxlL0eJg
성주간 수요일. 오늘 복음에서 지난 성지주일에 읽었던 수난기의 앞 부분을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전에 있었던 사건도 만납니다. 바로 유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유다는 최후의 만찬에 들어 오기 전 이미 주님을 넘기기로 하고 은전 서른 닢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감춘 채 주님이 베푸시는 식사에 참석합니다.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유다. 그의 손에는 은전 서른닢이 쥐어져 있고, 또 한 손엔 주님이 주시는 빵이 들렸습니다. 그는 이미 주님을 버렸지만 그 은전 서른닢을 지키기 위해 식사에 참석하고 주님 앞에 그의 발을 내밀었을 겁니다. 그리고 주님의 생명의 빵도 받아 들었습니다. 그렇게 불안하게 주님 곁에 있었던 유다의 모습과 이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그에게도 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주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유다는 재물과 하느님 사이에 머무는 이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둘 다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의 선택은 은전 서른닢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둘 다를 지키는 듯 싶지만 머무는 이유는 주님을 넘기기 위해서이지 주님을 사랑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에게 베풀어지는 모든 상황을 그냥 받아들입니다. 아직 그분을 버릴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도 마치 물기를 빨아들일 수 없는 방수가 잘되는 옷인양 주님과의 먼 거리를 지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 모든 것을 다 베풀고 마지막까지 함께 하시는 주님이었습니다. 그의 변심이 이미 이루어졌고 다시는 건널 수 없는 강을 넘어버렸음을 아시면서도 그의 발을 씻고 당신의 빵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제자가 자신을 위해 하는 마지막 거짓말을 들으십니다.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제자는 그렇게 주님을 떠났습니다. 그의 고발로 붙잡히신 예수님이시지만 그가 아무것도 몰랐음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우리는 그를 배신자로 기억하지만 주님의 죽음의 시작에 그가 있을 뿐 주님의 십자가에 유다의 증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승의 죽음이 결정되었을 때 그가 깨닫고 뉘우쳤음을 기억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도 스승도 구할 수 없었기에 삶의 마지막을 되돌릴 수 없는 잘못으로 끝을 냅니다.
우리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 봅시다. 그리고 주님 곁에 머물고 사랑 받음이 그 손에 쥔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마음을 돌려 손에서 그것을 놓아야 합니다. 아니면 부활의 용서와 평화를 맞이하긴 어려울 겁니다. 우리는 둘 다 지킬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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