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松竹/김철이 2020. 4. 7. 15:58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강론 듣기 : https://youtu.be/-yDcQWopLyM





시간을 당겨 주님의 최후의 만찬 자리로 들어가 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침울해하시는 주님을 봅니다. 그 이유는 이랬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주님을 팔아 넘길 사람을 우리 모두는 압니다. 유다입니다. 도둑으로 지칭되는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다닌 사람이고 일행의 돈주머니를 맡을 정도로 신뢰가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그는 주님을 죽인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의 마지막을 보면 그도 주님이 돌아가시리라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두고두고 아쉽고 예수님이 안타까워하신 까닭이기도 합니다. 





가장 신뢰했던 사람이 나에 대해 다른 생각을 품었다면 우리는 배신감에 한동안 충격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세상을 의심하거나 홀로 남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슬픔은 그가 제자여서 더 깊었고 아프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주님의 말씀이 다른 모든 제자들을 당황하게 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유다 조차 자신은 아닐거라 말합니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 누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조차 의심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주님은 그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주님은 빵을 적셔 유다를 주시지만 제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빵을 모두가 함께 받았고 먹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빵은 지금 우리도 먹고 있는 바로 생명의 성체입니다. 그분 곁에 머물고 함께 행복했고 즐거워했지만 유다의 할 일은 그가 자신을 생각하면서 생겨났습니다. 그에게 사랑하는 스승조차 은전 몇 푼과 바꿀만한 가치가 생긴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자신'이 더 중요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스승의 죽음의 소식 앞에서야 깨닫게 된 스승과 자신의 거리에 절망했던 유다의 마음은 분노하기에 허무하고 화를 내기에 안쓰럽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함께 흔들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그들을 지킬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목숨을 걸겠다는 베드로. 그 역시도 당신을 따를 수 없는 약함을 지닌 사람이었음을 주님은 보십니다. 아끼는 제자들. 그 하나는 당신을 팔아넘기고 다른 이는 당신을 모른다 외면합니다. 그 모든 상황이 또한 당신이 오신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과 제자들은 엇갈려만 갑니다. 당신의 죽음은 가까워지고 이런 제자들을 껴안으시는 주님의 사랑도 더 깊어져 갑니다. 



스승을 팔아 넘기고 그분에 대해 단 한 번의 증언조차 하지 못했던 유다의 어리석음과 제 목숨 앞에서 스승을 놓쳐버린 베드로의 모습 속에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놓지 않으셨던 사랑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