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마리아야!”

松竹/김철이 2020. 4. 14. 17:23

“마리아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부활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하는데 가장 적절한 소재가 무엇일까를 두고 고민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부활이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소생'의 의미가 크고, 다음으로 다시는 죽음을 겪지 않으실 주님의 영원한 생명에 관한 관심도 큽니다. 죽음을 극복했다 혹은 넘어섰다는 것으로 주님의 불사불멸의 모습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그러니 주님을 믿어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이 보아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지닌 가치는 무엇보다 주님이 돌아가신 이유가 반대로 뒤집혔다는 것입니다. 곧 죽음 이전의 것이 모두 옳고 사실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듣는 것이 부활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주님의 십자가와 함께 잊혀진 주님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는 모든 기억을 되살리는 효과를 지닙니다. 부활 후 나타는 공통적인 현상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예수님의 목소리와 같은 당신의 원래 모습이 등장할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목소리는 '기억'이라는 단어와 함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을 마주 대하고서도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주님을 바로 알게 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단지 주님의 목소리. 곧 평소 부르시던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바로 알아봅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하는 자리에 있지만 저조차 제 목소리는 항상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물론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의식을 하지 못하기에 상관 없지만 남이 나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지 생각하면 영상과 소리를 편집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 경험이 가시질 않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반응은 가장 기다리던 분의 목소리를 들은 이의 모습입니다. 실망에 빠졌던 이가 갑자기 기운이 솟고 즐거움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모습으로바뀝니다. 주님 살아계실 때 보지 못하던 '복음' 곧 '기쁜 소식'의 의미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마리아에게서 보는 기쁨입니다. 


그런 의미로 주님의 부활은 대단한 인물, 아니면 아까운 인물이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하느님 능력의 대단함을 말하기 전에 예수님의 가치를 논하기 전에 그분은 정말 사랑스러운 분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또 그분과 함께 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좋았을지도 떠오르게 됩니다. 언젠가 웃고 계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상상한 상본이 우리 주변에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신선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그런 모습을 생각하지 못하는 현실을 느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다시 만난 마리아의 모습은 그 어느때 보다 밝고 즐거움 가득한 모습입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는 변화 그것은 주님이 그녀에게 또 우리에게 어떤 분이셨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그렇게 좋은 분, 두고 두고 보고 싶은 분.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도 사랑하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의 선함과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오늘 느끼는 부활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