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松竹/김철이 2020. 4. 15. 11:25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부활의 이야기 중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또 하나의 사건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 그들은 주님을 잃어버린 이들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희망을 걸었으나 죽음으로 지녔던 모든 기억과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의 죽음의 기억에서 멀어지려는 듯 엠마오로 내려갑니다. 모든 게 헛되고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렸고 눈 앞에서 보고 배우고 들었던 것이 모두 하느님의 아들을 사칭한 이의 눈속임이었는지 사랑하는 스승을 잃고 그분의 잘못을 인정할 수도 없는 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의 길에 끼어든 사람은 그들이 슬퍼하는 이유도 모르고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듯 행동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은 예수님이 분명한 예언자셨다고 생각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희망을 두었던 그분이 또다른 백성의 지도자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셨고 그분 죽음 이후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상한 이야기조차 있어서 길을 떠나 온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이 일들어 더 얽히기 싫어 길을 나선 사람들로 보이기도 합니다. 워낙 이상한 일들이 한 주간 연속으로 일어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제자들은 여인들의 증언조차 믿지 못하고 자리를 피하기로 한 겁니다. 주님이 붙잡히실 때 그들이 흩어진 듯 또 다시 그 모습으로 길을 나온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길에 어느틈에 한 사람이 등장하고 세상 하나도 모르는 사람의 모습으로 그들의 생각들을 물어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몰랐던 것에 대해 하나 하나 되짚어 가르쳐줍니다. 주님의 죽음에서 멀어지던 제자들은 다시 자신의 스승을 향한 마음으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그 열쇠를 지닌 이 한 사람이 떠나려 하자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그들이 저녁을 준비하고 주님을 모셔들입니다. 그리고 그 밤에 초대받은 이의 손에서 빵이 나눠집니다. 그들이 돌아가신 스승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들과 또한 낯선 스승에게서 들었던 구세주에 대한 말씀이 이빵이 나누어지는 순간 모든 것을 살려냅니다. 



'주님이시다'



순식간에 사라진 주님 외에 그분의 빵을 받아든 두 제자는 그제야 알게 됩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과 그분이 여전히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여인의 말을 믿지 못한 자신들의 태도를 되돌려 가게 됩니다. 그들은 주님을 뵈었으니 다른 제자들에게도 알려야 했을 겁니다. 


우리가 듣고 알았던 모든 것이 나의 현실이 되기까지 사람마다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스스로 태도를 여러번 뒤집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끝에서 발견하는 진리가 있다면 그 흔들림과 어리석음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 당연히 모든 것을 뒤흔든 사건이었을 것이고 모든 것을 잃고 무엇도 확실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겪은 일이었습니다.


주님의 상실이 주는 영향은 주님이 우리안에 고스란히 하느님의 뜻과 그 실천의 모습을 주셨지만 주님 없이는 그 동력을 잃어버립니다. 마치 주님만 할 수 있는 일로 돌려버리거나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 없이는 우리의 무능으로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아는 것이 짐스럽고 부담스러우며 귀찮을 때 사람들은 헛힘을 쓴 사람들 처럼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 때 여전히 자신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알게 된 제자들. 그들은 불신에서 신앙으로 되돌아섭니다. 필요했던 것이 주님이셨다고 생각했으나 사라지신 주님은 자신들의 빵에서 모두 살아계셨고 그들은 이미 다 받은 것을 기억하여 길을 돌려 하느님의 뜻을 전해야 할 이유를 회복합니다. 주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부활하셨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올 때도 다시 돌아갈 때도 제자들은 자신들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잃고 떠나오던 제자들과 주님을 만나 돌아가는 제자들은 같을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란 같은 사람이나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단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자신들은 이제 세상과 하느님의 뜻 모두를 알아들은 증인이 되었음을 깨달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