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松竹/김철이 2020. 4. 16. 09:19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부활하신 주님을 매일 봅니다. 주님의 부활을 확인하는 제자들과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단한 능력을 통해 예수님을 확인하지 않습니다. 부활이라는 놀라운 사건에 비해 주님을 바라보는 마음은 조금은 실망스러움도 함께 합니다. 그렇게 기다려온 부활인데 전혀 달라진 점이 없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돌아가신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던 제자들은 여인의 이야기도 엠마오에서 돌아온 제자들의 이야기들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돌아가셨고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주님이 직접 나타나십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없었던 토마스에게 의심의 모든 몫을 몰아세우지만 이 자리에 있었던 제자들은 누구도 예수님의 부활을 자신있게 확신하거나 믿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인사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예수님의 부활의 선언은 그 언젠가 밤을 뚫고 나타나셨던 물 위에서와 같았습니다. "나다. 안심하여라"하신 주님처럼 이 날도 주님의 인사는 제자들을 안심시키고 여전히 당신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심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 주님이 당신이 부활하셨음을 알려주시고, 또 당신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려주신 또 하나의 증거가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먹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우리가 어렵고 거룩하게 대하는 성경 속 예수님은 생각보다 너무 자주 먹는 모습으로 등장하십니다. 그분의 식사는 아주 흔한 모습이었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아주 많은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만나셨습니다. 또한 그 먹을 것으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먹을 것을 제자들에게 청하셨고 구운 고기 한토막을 건네 받으시고 잡수십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보는데 이 이상 좋은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부활은 이미 아는 주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주님이었다면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전혀 다른 분을 보고 주님이라고 고백해야 했을 겁니다. 그러나 부활은 이전의 주님이 살아오셨음이고 우리가 기다리는 구원도 바로 그분이 주신 모든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잊힐래야 잊을 수 없는 시간과 함께 합니다. 우리가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이들은 제자들이 믿을 수 없었던 스승의 모습처럼 우리 곁에 머물던 이들이었습니다. 부활의 시간에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다시 보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로합니다. 이제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만질수도 함께 맛있는 것을 먹을 수도 없게 되어버린 이들이지만 그들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의 한 순간 순간이 왜 소중하고 미룰 수 없는 행복의 순간들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가족들은 하루 살기에도 벅차 이 날을 잊은 듯 살아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이제 어른이 되어 세상의 일을 배워가며 책임있는 세상을 만들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들과 함께 먹은 밥을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그들을 다시 만나는 것에서부터 알아들을 수 있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우리의 소중함은 하느님 안에서 영원하고 우리도 결국 그 영원 안에서 서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들의 이야기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어떤 것보다 구운 물고기 하나에 담긴 그 반가움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4월 16일이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이들과 우리 보다 먼저 별이 되어 버린 이들과 함께 나누는 마음 따뜻한 식사 한끼를 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