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松竹/김철이 2020. 4. 18. 00:33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부활 팔일 축제가 끝나갑니다. 부활의 기쁨은 부활시기를 통해 이어지지만 부활의 날을 팔일에 걸쳐 지내는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새로운 의미의 기쁨을 전해줍니다. 우리가 일년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활이지만 그 때 이 부활은 거짓말처럼 찾아온 날이었습니다. 주님의 죽음이 하루 아침에 일어난 사건인 것처럼 부활 역시도 어떤 의미를 생각할 겨를 없이 찾아온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은 모두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전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지 못했고 벌어진 일들도 한참을 생각해야 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에 제자들이 보인 반응은 '불신'이라는 좋지 않은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 여인들의 말은 물론 같은 동료들의 말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만큼 확실했고 제자들의 실망은 컸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들이 모인 곳에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이 늦은 제자들을 나무라십니다. 마음이 완고해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기억하지도 깨닫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기쁨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한 모습들입니다. 


그럼에도 이 장면의 부정적인 모습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은 놀랍기만 합니다. 믿음도 없고 어리석기까지 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사명'을 주십니다. 예전처럼 말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예수님의 부활조차 온전히 깨닫지 못한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세상을 그들에게 맡기십니다. 그들은 주님의 승천에서조차 온전한 믿음을 보이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고 하늘로 오르십니다. 예수님 부활 후의 40일의 시간은 그런 제자들과 여느때와 다름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부활로 인해 예수님의 변화를 말하지만 사실 예수님 외에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확고해진 것도 영리해진 것도 없었으니 하는 말입니다. 결국 세상에 남은 것은 제자들이고 주님은 당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셨으니 변한게 없다는 실망스러운 말도 무리한 표현은 아닙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믿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그들의 손과 발로 또 입으로 전하게 하셨습니다. 온전하지 않은 이들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우리는 불안해 하지만 주님은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당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완전한 하느님의 뜻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지혜를 가졌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은 완전히 드러났고 그런 주님이 불완전하고 완전하지 못한 우리를 끝내 사랑하시고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이 드러났으니 제자들의 부족함이 우리와 다르지 않더라도 문제가 될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우리가 주님께 가지는 자세나 태도 이전에 하느님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을 온전히 모자람 없이 받은 것이 우리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그래서 주님의 소생만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완전하신 뜻이 드러난 것입니다. 부활은 사람이 사람을 구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이어진 사건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을 나무라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음을 알 때 오히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됩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온전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이어진 완전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사랑을 걱정하는 이는 주님의 꾸지람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분의 사랑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