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와서 아침을 먹어라.”

松竹/김철이 2020. 4. 17. 10:40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부활 다음 날 누군가의 고향에 잠시 들렀다 왔습니다. 그곳에서 한참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르는 어머니를 만나 점심 한 상을 대접받았습니다. 힘드신 중에도 멀리서 오는 손님들을 맞으시느라 차려 내오신 밥상에는 수십년 만에 보는 '고봉밥'이 놓여 있었습니다.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하던 밥을 눈 앞에서. 그것도 제 몫으로 차려주신 밥을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부활의 체험. 언젠가는 부활을 지나 함께 여행을 떠나며 좋은 경치를 보고 그 여정에 만나는 이들 중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습관처럼 떠나는 잠시의 휴식은 사실 '좋은 곳'을 찾아 다닌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어떤 곳에도 가기 힘들어진 시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곳을 정해 떠났다가 뜻밖의 대접을 받고 그 곳에 놓여진 제 몫의 밥 한공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차린 제자들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을 잃고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사라진 날 제자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 자리는 아직 주님을 만나기 전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다시 주님을 만납니다. 분명 주님이신데 그 놀라운 일들 속에 정작 주님을 확인한 것은 그들에게 보여주신 기적이 아닌 자신들이 잡은 고기를 건네 받으시고, 제자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신 주님이셨습니다. 


화려함과 놀라움의 신앙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은 너무 소박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부활은 153마리라는 엄청난 물고기의 숫자 보다 주님이 차려주신 아침밥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릴 때 기억처럼 '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는 두 그릇을 먹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밥을 다 먹고 또 청해 먹었습니다. 배는 부르고 가뜩이나 산처럼 올라오는 배를 단속하느라 바빴지만 그렇게 기분좋은 포만감은 배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어머니의 정이고 사랑이었습니다. 부활은 사랑입니다. 다시 찾은 사랑, 그리고 다시 사라지지 않을 사랑. 그 사랑의 증언은 아침을 준비하는 이에게 허락된, 그리고 그 아침을 먹는 이에게 허락된 기쁨입니다. 


부활을 체험하고 산다는 것은 소박하고 작은 일에서 가장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언제나 먹는 밥 한공기이지만, 그 매일과 매 순간이 그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