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초 그 첫불을 밝히며...
정호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대림의 첫 미사를 드리며 계단을 오릅니다. 일반초를 준비하라고 말했지만 제대 앞에는 4가지 색의 초가 놓여 있습니다. 대림초는 성탄으로 향해가는 우리의 마음과 희망을 표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초는 이스라엘이 구세주를 기다린 4천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4천년의 결과가 마굿간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 자리에 초가 치워지고 구유가 자리하게 됩니다. 우리는 구세주를 그렇게 맞이했습니다. 잘 준비하고 기쁨에 가득찬 4천년이 아니라 하루 하루 미뤄지는 구세주의 오심에 잘 준비하지 못하고 우리만 단장하며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우리를 그렇게 소중하게 대하지 못했기에 우리가 꾸미는 저 네가지 색의 초들은 실제와 너무 많이 달라보입니다.
차라리 우리가 지난 해 사용했던 초들을 준비하는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화려하게 준비해도 주님의 거처를 마굿간으로 밖에 지어드리지 못합니다. 성전을 금은보화로 치장해도 벌거벗은 십자가를 비켜갈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 대림초가 내내 불편합니다. 그 초에 불을 밝히는 것조차 미안하기도 합니다. 대림... 기다림을 잘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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