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소설

진흙탕 속에서 핀 장미 6부

松竹/김철이 2010. 7. 23. 12:07

화마는 이미 사랑의 집 건물을 반쯤 삼켜버렸고,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집 안팎은 가족들의 신음으로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사랑의 집 안에서는 몸이 성한 사람이라고는 혜정 한 사람뿐이었기에, 짙은 검은 연기와 사물이 타는 냄새로 진동하는 가운데서 혜정이 혼자 집 안팎을 종종거리며 뛰어다녀 봐야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화염이 하늘을 치솟는 가운데 가족들의 신음소리와 고함소리에 놀라 뒤늦게 달려온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을 주민들이 손에 손에 양동이와  세숫대야 등에다 물을 담아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 화마를 잠재우려 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은 듯 불길은 오히려 성난 악마처럼 하늘을 향해 더욱더 치솟기만 하였다. 화마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가족들의 신음과 거친 비명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거칠어 갔다.

잠시 후 마을 주민들의 신고로 소방차와 응급 구급차가 달려와 상처를 크게 입은 가족들은 응급 처치 후 인근 병원으로 실려갔으며
연기에 그을려 상처를 입은 가족, 불길에 약간 스쳐 상처를 입은 가족들은, 가벼운 치료 후 안정을 취하게 하였는데 집 안팎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어떻게 마련한 집인데 어느 누가 되었던 한순간의 부주위와 실수로 애지중지하던 집을 일 순간에 잃고 만단 말인가,

그동안 사랑의 집 모든 가족들이 자신들의 분신처럼 여겨온 둥지는 이제 완전히 전소하여 잿더미로 변하여 있었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그것도 아무런 대비도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졸지에 당하고 보니 혜정의 찢어 질 듯한 마음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너무나 황당한 나머지 혜정은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그동안 정들어 살아오던 집은 온. 간데가 없고 화마에 그을리고 불길에 타버린 잔해들과 이곳저곳에 어지럽게 흩어진 세간 살들 위에 혜정은 넋을 잃은 채
두 다리를 뻗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화제의 경위를 묻는 경찰관의 질문도 위로라고 건네는 이웃 주민들의 말들도 들리지 않던 혜정은 아무런 웃을 이유도 없는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가족들과 마을 주민들은 본디 인사성 밝고 웃음이 많았던 혜정인지라 혜정의 이런 행동에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은 채 눈 밖으로 흘려보내고는 시간이 늦었던 탓에 마을 주민들은,
하나 둘씩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평소에 사랑의 집 가족들에게 크고 작은 관심을 두고 후원자 겸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힘이 되어주며 가깝게 지내온 몇몇 마을 주민들이 남아 한 편으로는 준호와 혜정을 위로하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어지럽게 흐트러진 살림살이를 대충 정돈을 하고 있었다.

 

혜정이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증세를 보이는 것이었다. 실없이 미소를 짓지 않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바라보며 알아듣기 힘든 말들로 중얼거리며 손가락질을 하다 깔깔 되고 큰 소리로 웃기가 일쑤였다. 매우 놀란 준호와 평소에 혜정을 아끼며 이웃에서 가깝게 지내던 몇 명의 아낙이 혜정의 몸을 안고 흔들며 그 이유를 물었으나 그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웃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혜정의 증세는 시간이 갈수록 심각한 쪽으로 진행되어 갔다. 아기가 배고파 울부짖어도 젖을 물릴 생각은커녕 자신의 영혼보다 더 사랑하던 아들을 가리켜 누구냐고 되묻는 것이었고, 그렇게도 사랑하며 아껴오던 사랑의 집 장애인 가족들도 하루아침에 안면을 바꾸어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대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은 악순환의 연속 중에 흘러갔으나, 다음날부터가 큰 문제로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당장 혜정의 손길이 없으니, 집 안팎이 제대로 이어가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밤새 잠 한잠 자지 않고 웃고 떠들며 집 안팎을 돌아다니던 혜정이 새벽력에서야 지친 듯 타다 남은 잿더미 위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의 손길이 정상적으로 집 안팎에 미쳐도 손이 부족한 형편인데 혜정이 집안 살림살이에 무관심하니 맨 먼저 가족들의 식사 문제와 아기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혜정은 세상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당장 손길이 미치지 못하니 가족들은 물론이요, 갓난아기조차도 젖 한 모금 빨지 못하여 세상이 떠나갈 듯 울어도 속수무책이었다. 누구 하나 당장 코앞에 당면한 문제의 그 해결 방법을 내세우는 이 아무도 없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찾아온 몇몇 마을 아낙들이 달려와 보니 정말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집 안팎에는 이곳저곳에 세간들이 마치 전쟁터 연상케 하였고 심하게 다쳐 병원으로 실려간 가족들을 제외한 몇 명의 가족들과 준호와 혜정을 비롯하여 밤새 엄마의 젖 한 모금 빨지 못한 채 울다 지쳐 손이 성한 장애인 가족이 덮어준 짚더미를 덮고 잠이 든 아기의 모습은 눈을 뜨고서는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화마의 거센 손톱에 활퀴어 폐허가 되어버린 잿더미 위에서도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마을 아낙들이 급히 미움을 쑤어 굶주림과 엄마의 사랑에 지쳐 깊은 잠이 든 아기를 깨워 먹이고 사방에 어지럽게 흐트러진 세간 몇 개 주워 모아 밥을 지어 준호를 비롯한 장애인 가족들에게 먹이니 가족들은 서러움에 복받쳐 눈물로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하였다.

 

누구나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고 충실해야 하는 것이 세상을 창조하신 신과 생명의 보금자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해준 대자연을 거스르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교활한 인간들의 본능은 바로 등 뒤의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망종을 떨 때가 수없이 많은 것이 현 세상을 살고 있는 인간들의 삶이 아닌가 말이다. 지독한 외로움과 방황 속에서 한 가족이 되기를 원하였고, 한 형제자매가 되기를 원하여 상처 깊은 서로 마음을 위로하며 살기로 다짐하고 모였던 사랑의 집 가족들이 얼마 가지 못해 눈에 보이지 않는 손톱으로 할퀴어 서로 마음에 지우기 힘든 상처를 준 신의 벌일까…

마을 아낙들은 급히 밥을 짓고 죽을 쑤어서 아기와 가족들에게 먹인 후 한 아낙이 상을 차려 정신을 놓고 있는 혜정에게 들고 갔으나
밥을 먹을 생각은 도무지 하지 않고 그저 먼 산만 멍하니 바라보며 입가에 의미 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혜정의 증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져 갔고 사랑의 집 가족들의 코앞에 당면한 과제는 심각한 쪽으로 흘러갔다. 주춧돌과 기둥이 되어야 할 혜정이 화제의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렸다는 것으로 인해서 피해의 여파는 태산보다 더 큰 아픔으로 자리 메김 하였다.

하루를 더 지켜본 마을 아낙들이 혜정의 영혼 속에 점점 가까이 다가서는 심각성을 판단하고 가까운 정신병원에 연락을 하니 검사한 결과가 갑자기 큰 놀라움 때문에 오는 일시적인 현상인데 몇 달만 요양치료를 받는다면 낳을 수 있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몇 달은커녕 혜정이 없는 사랑의 집 실상은 말할 수 없이 큰 공간을 차지함은 당연지사였고 이 공간을 없이 그 누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헌신적으로 봉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현실은 냉혹한 것이기에 혜정은 그날로 바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였고 몇 달간 일시적이라곤 하지만 혜정이 없는 사랑의 집 안팎은 상상을 하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당장 끼니때마다 식사 준비며 어린 아기처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밥을 떠먹여야 하는 식사 뒷바라지는 물론이고 대소변을 볼 때마다 하나하나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변소 길과 때때로 씻어주고 닦아주어야 하는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이제부터는 그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이며 살림살이는 과연 그 누가 이끌어 나갈 것인지 암담하기만 했다. 그리고 혜정은 한 갓난아기의 엄마였기에 준호는 당면한 현 과제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니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것도 화마로 인하여 폐가처럼 변해버린 집터에서….

혜정이 없는 사랑의 집 안팎은 마치 지옥의 한가운데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의 육신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준호가 어떻게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열 명에 가까운 사람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단 말인가. 준호는 폐허와 같은 집터 한 귀퉁이에 누워 밤이슬마저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사랑의 집 가족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불편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지금 처해 있는 난관을 어떻게 헤쳐날 것인가 하고 아무리 궁리해 보았으나 좀처럼 그 방안을 찾아낼 길이 없었다. 그런 깊은 생각에 빠질 때마다 아무런 힘이 없어 사랑의 집 가족들을 보살펴 주며 보호 해야 할 자신이 본분을 다하지 못함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 수가 없었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자신이 싫어지기까지 하였다. 궁하면 통한다 그랬던가, 준호는 생각 끝에 같은 마을에 남의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그 품삯으로 살아가는 한 아낙을 혜정이 완쾌하여 돌아올 때까지 도맡아 해주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그 아낙은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랑의 집 가족들을 찾아와 궂은 일도 서슴지 않고 도우며 고생하는 혜정의 마음에 많은 위로를 주었으므로 준호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여 매일 사랑의 집 장애인 가족들을 보살펴 주기로 하였다. 이런 도움이 있었기에 준호는 당분간만이라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고 혜정이 없는 탓에 그동안 심적으로 불안해하던 사랑의 집 장애인 가족들도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인간세상에서 걱정이 끊어지면 그날은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 했던가. 준호에겐 또 다른 걱정 한 가지가 더 생긴 것이다. 그것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혜정의 입원비와 치료비였다. 사랑의 가족들 식생활 비마저도 많지 않은 후원회비로 충당하고 있는 어려운 형편에 한 달에 몇십만씩 나오는 입원비며 치료비를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준호의 눈앞은 천 길 만 길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듯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갖은 궁리 끝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볼 량으로 인편을 통해 부모님께 연락을 취하였으나,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애물단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느냐”


이 한 마디가 상처 깊은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안겨주었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부모, 형제들에겐 의탁할 생각도 하지 말고 도움을 청할 생각은 더더욱 하지 말라던 혜정의 단호한 한 마디 말이 준호의 귓전을 후려치고 지나갔다. 준호에게 당면한 크나큰 과제는 1급 장애인에겐 너무나 힘겨운 짐이 아닐 수 없었고 혜정의 단호한 말에도 준호의 도움을 한마디 설명도 없이 칼로 무를 자르듯 거절해 버린 어머님이 야속하였다. 이 사실을 훗날 혜정이 안다면 뭐라 할 것인가, 준호는 혜정에게 변명할 한마디 말이 없었다.

그 누가 말했지. ‘엎친 데 겹친다’ 고. 그렇지 않아도 현 삶이 힘에 겨워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지 못해 사는 준호의 눈앞에 또 다른 하나의 큰 관문이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의 지극한 모정이 그리웠던지 이제 첫돌을 며칠 앞둔 준호의 아들 요한이 급성 폐렴에 걸린 것이다. 엄마인 혜정도 없는 이 막막한 상황에서 요한까지 급성 폐렴에 걸려 준호의 애간장을 태우니, 준호는 정말 이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가질 수가 없었다. 다급한 나머지 아들인 요한을 평소에 자주 사랑의 집으로 봉사활동을 나오던 소영이라는 한 아가씨에게 요한이 병이 나을 때까지 위탁 보호를 간청하였다. 소영 역시 여성임에 틀림이 없었으며 가슴속에 여성 본래의 지극한 모성을 지녔기에 준호의 간곡한 부탁을 쾌히 받아들여 요한이 완쾌되고 혜정이 퇴원할 때까지 자기네 집에서 위탁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다. 준호는 소영의 큰 배려에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고, 소영의 또 다른 모습의 큰 사랑에 감격하여 감사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준호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듯 세월은 유수처럼 흐르고 흘러 요한은, 폐렴에서 완쾌되어 소영의 집에서 온갖 재롱을 부리며 소영이네 가족들의 사랑을 한몸에 다 받았으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로 악화일로를 치닫던 혜정의 병세도 점차 호전되어 얼마 가지 않아 퇴원할 것 같다는 주취의의 말이었다. 극한 절망 속으로만 치닫던 사랑의 집 안팎에도 희망의 씨앗이 움트기 위해 용솟음치고 있었고 서로 처해 있는 입장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편에게 양보하지 못한 데에서 찾아온 시기와 질투, 그리고 무관심의 꽃씨는 점차 시들어 갔으며 그 빈터에는 깊은 상처에 새 살이 차 오듯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랑과 온정과 화해의 꽃씨가 움트기 시작하였다. 비록 화마로 인해 입었던 상처는 아직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하늘을 지붕 삼아 잠이 들고 잠을 깨는 현실 속에서도 준호가 그렇게도 갈망하던  평화의 화신이 찾아오려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때를 불행한 삶을 살았다면, 또 한때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의 이치가 아닌가. 그런 면에 준호나 혜정을 비롯해서 사랑의 집 모든 가족들은, 비록 인생을 산 연륜은 다른 이들보다 짧을지 몰라도 짧은 세월동안 겪고 받았던 슬픔과 고난의 시간은 그들을 다른 이들보다 생각을 성숙하게 하여 어떤 어려운 시련이 다가올 때면 어느 누구보다 차분하게 대처해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 하나로 지금까지 버티어 왔는데. 막상 힘겹고 어려운 시련의 날들이 연이어 닥쳐오니, 아무리 고통 속에 살아온 세월이 길고 연륜이 높다 해도 성난 노도처럼 한꺼번에 불어닥치는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중증의 장애를 지닌 그들에게는 힘겹고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아무도 자신들의 일처럼 관심을 두고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는 이 없었다가 이제 혜정의 병세가 호전되어 가고 얼마 안 있어 퇴원하여 그렇게도 손꼽아 기다리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사랑의 집 가족들의 심정은,
뛸 듯이 기뻐 환성을 질렀다.

그런 와중에서도 사랑의 가족은 여덟 명에서 열한 명으로 늘었는데 평소 준호와 혜정의 깊은 생각을 모르는 일부의 시각에서는 못마땅하게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장애인 공동체이고 가슴속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사랑의 집 안팎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혜정이 비록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어도 중한 병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데 어떻게 또 다른 가족들을 받아들일 수가 있느냐는 말들이었는데 객관적 시각에서 본다면 그들의 말도 이해가 가며 한 마디 틀린 말이 있는가. 자신들의 처지로는 누구를 도운다는 것은, 반대편 시각에서 생각하고 본다면 아주 주제넘고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라고 비평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가족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사랑의 집 가족들을 도우려는 손길들은 한 층 더 분주하게 하였고 그 반면에 경제적인 면에서도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사랑의 집 살림살이에 조금은 영양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준호는 혜정이 없는 현실에서 열한 명이라는
대가족의 어버이로서 슬하의 가족들을 안락한 삶을 누리게 해 준다는 것은, 1급 장애를 지닌 준호로서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준호는 비교적 손발이 성한 가족 중 마음이 착하고 성품이 온순한 옥희라는 한 아가씨에게 총무 겸 집사직을 부여하여 맡겼다.

 

그 후 몇 달 동안은 사랑의 집 모든 가족들이옥희의 말에 따라 일사천리로 잘 도와주었고 옥희의 처지을 이해하는 듯하였으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또 다른 하나의 불씨를 잉태하고 있을 줄 그 아무도 몰랐다. 준호의 입장에서는 가족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편해해서도 안 되고 편애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정상 가깝게 보일 수밖에 없는 준호와 옥희의 처지을 이해하기는커녕 나머지 모든 가족들이 준호와 옥희의 사이를 의심하기에 이른다. 시기와 질투의 화살을 마구 퍼 붙기 시작하였고 끝내는 준호와 옥희의 사이에 있을 수도 없는 억척과 헛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혜정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옥희가 외로운 준호에게 의식적으로 접근하여 마음을 흔들리게 하여 옥희에게 정신을 쏟게 해 놓은 다음 혜정의 자리에 앉아 사랑의 집 관리자 노릇을 하려 한다는 헛소문을 사랑의 집으로 간혹 봉사 나오는 남녀 봉사자들과 가끔 들려 혜정이 없는 일손을 조금씩 메워 주는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퍼뜨리기에 이르렀다.

이 사실은 누구보다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을 지녀야 할 장애인들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헛소문을 퍼뜨려 서로 마음에 씻기 힘든 상처와 아픔을 주니 준호로서는 할 말조차 잃었고, 과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치욕적인 의심만 품는 장애인들을 성치 못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정신적 고통을 주는 장애인들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희생하다 못해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내인 혜정의 인생마저도 희생해야 한단 말인가 하는 의문점마저 가슴 한 편에서 돋아나는 것이었다. 사랑의 집을 방문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에서 내부의 불화가 입에 담아질 때에는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준호의 심정이었다.

한 편, 집에서는 준호가 이렇게 복잡한 문제들로 고심을 하고 있을 무렵 정신의료원에 요양 중인 혜정은 좀 더 회복 기미를 보여 얼마 후면 퇴원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내렸고 혜정은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집안일에 신경을 쓰기에 이르렀다. 의료진의 퇴원명령만 떨어지기를 기다렸으며 제정신이 들기 시작하자 요한에 대한 혜정의 모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만 갔고 준호에 대한 혜정의 그리움 또한 그에 못지 않았다. 인간사 세상에서 감정을 지녔고 마음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 흔히 잘 쓰는 단어가 ‘사랑’ 이다. 그리고 그 사랑 중에 가장 크고 위대한 것이 어머니가 자식에 대한 사랑, ‘모정’ 이다. 그랬기에 혜정도 지금은 비록 큰 충격으로 올바른 정신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여도 어머니 본연의 지극한 모정을 지니고 있어 아무것도 모른 채 낯선 이의 품에서 엄마의 정을 그리워하고 있을 아들 요한을 향한 지독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요한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더니 하루는 진료진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입원복을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병원을 탈출하여 험하고 거친 산길을 지나고, 아직 얼음 덜 풀린 냇물을 건너 길섶의 돌멩이에 걸려 터지고, 차디찬 냇물에 시달려, 살이 터지고 피를 흘리면서도 아들 요한이 있을 사랑의 집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병원을 나선지 꼬박 하루가 지난 이튿날 오후에서야 사랑의 집에를 당도할 수 있었는데, 혜정의 모습은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온몸의 살점은 나뭇가지와 돌멩이 등에 걸리고 찌기여 온통 살점이 미어지고 터져서 피로 얼룩져 있었고 입고 있던 옷은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었다. 사랑의 집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온 가족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혜정이 지금 정신이 올바르지 못하다고 치더라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사랑의 집 가족들의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옥희가 준호의 휠체어를 밀고 마루 한가운데로 나서자 준호는 혜정의 처참한 모습에 아무 말없이 그저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고 다른 사랑의 집 가족들도 어이가 없어 혜정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때, 혜정이 입을 열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준호씨 저에요. 혜정이, 그동안 잘 계셨죠?”
“그런데, 우리 요한이 어디 갔어요? 안 보이네?”
“우리 요한이 이제 많이 컸죠?”
“혜정씨!  어서 이리로 올라와요.”
“요한이는 잘 있어요? 어디 있나요?”
“잠시만 기다려요, 데려올 테니”


혜정을 바라보는 준호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미어지는 듯 하였고 두 어깨는 천 길 만 길 낭떠러지 아래로 무너져 내리는듯하였다. 옥희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혜정을 맞이하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따뜻한 물로 흙먼지와 온갖 풀잎들로 얼룩진 혜정의 몸을 씻어주고 혜정이 입다 두고 간 옷으로 갈아입혔다. 옷을 갈아입은 다음 옥희가 차려준 밥을 먹자마자 멀고 험한 산길과 들길을 장시간 걸어오느라 지치고 피로가 쌓여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잠시 후 준호의 전화 연락을 받은 소영이 요한을 업은 채 급히 달려와 혜정과 요한 모자의 상봉을 시도하였으나 애처롭게도 혜정의 가슴을 파고드는 사무쳤던 짙은 그리움과는 달리 몇 달 동안 젖내나는 엄마의 품속을 떠나있었던 탓에 요한은 낯가림을 하여 친모의 따뜻한 손길을 거부하며 마치 소영이 자신의 엄마인 냥 소영의 품속으로 마구 파고들었다. 자식에 대한 가슴 시린 모정 하나로 몇 십리 험한 산길과 들길을 숨차게 달려온 혜정의 가슴을 더욱 아리게 하였다. 요한이 함께 있으면 혜정의 상한 마음이 더욱 상할까 봐 소영이 자신의 어머니를 시켜 요한을 자신의 집으로 보낸 뒤 혜정의 마음을 조금씩 안정을 시킨 다음 병원 관계자 몰래 병원을 빠져나오게 된 경유를 듣기 시작하였는다. 자식 향한 엄마의 모정은 눈물겹도록 가슴이 아팠다. 몰래 빠져나오게 된 경유를 듣고 있던 주위의 모든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고 세상의 어떤 사랑보다 모정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자리였다.

소영은 혜정의 상한 마음을 점차 진정시킨 후 준호와 상의 끝에 혜정이 입원하고 있던 병원으로 전화 연락을 취하여 혜정이 집에 와 있음을 알리고 병세가 양호하니 그날 하루 밤만 집에서 머물게 해 주면 자신이 책임지고 내일 혜정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하여
병원 측 허락하에 조용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요한과 함께 하룻밤을 지내게 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소영은 손수 아침밥을 지어 혜정에게 먹인 후 요한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혜정의 마음을 진정시키기에 이르는데, 소영은 혜정의 병세가 완전하게 치유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친엄마처럼 요한을 잘 보살피겠다는 굳은 약속을 한 후 혜정을 데리고 마을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정도 가야 하는 병원으로 데려가 병원관계자들에게 사정 얘기를 상세하게 하고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집에서 요양할 수 있도록 해 주십사 하고 간곡하게 부탁을 하였다. 병원 측에서도 혜정의 병세를 보아 몇 달 후면 퇴원도 가능한 상태니 그렇게 해도 좋다는 허락을 해 주었다.

그즈음 혜정을 보낸 준호는 혜정을 처음 병원에 입원시킬 때보다 더 큰 상심 끝에 마음이 몹시 상하여 열이 불덩이처럼 뜨겁게 오르내렸고 마침내 심한 두통과 복통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준호의 병세는 생각보다 심각하였다. 온몸이 마치 불덩이처럼 열이 나고 정신마저도 혼미한 가운데 정신병원으로 다시 들어간 혜정의 이름만을 되내여 부르며 모든 일들이 자신의 잘못인 냥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라는 말만 한다. 한 편, 그동안 자신들의 정신적, 육체적 지주가 되어주었던 준호와 혜정을 한꺼번에 병마의 손에 잠시 빼앗긴 사랑의 집 가족들은 그제야 제정신이 들어 그렇게도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부질없는 전쟁을 중단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준호와 혜정이 하루빨리 자신들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였다. 준호와 혜정의 마음과 육신은 조금 아프고 시려도 틈만 생기면 아옹다옹 다투어 왔던 사랑의 집 가족들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준호와 혜정이 없는 사랑의 집 안팎은, 그야말로 거센 풍랑에 사공 없는 배처럼 갈 길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하였다.
당장 코앞에 당면한 과제는 매일 식사 때마다 가족들의 식사 문제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옷을 버려내는 정신 장애를 입은 가족들의 세탁물 씻는 일 등 집 안팎의 사소한 일들을 맡아서 해줄 이가 없어 궁여지책으로 준호가 병원에 입원할 당시 옥희에게 주고 간 얼마간의 돈으로 이웃 마을의 한 아낙을 사서 매일의 일가를 간신히 꾸려나갔다. 이즈음, 병원으로 다시 들어온 혜정은 차분한 자세로 퇴원할 그날을 위해 매일같이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한편, 아들 요한의 사진으로 바라보며 건강과 무사히 자라줄 것을 기원하였고 사랑의 집 모든 가족들이 하나로 마음을 모아주기를 기도하였다.

소영의 집에서 소영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하루가 다르게 자라가는 요한은 숱한 억척과 뜬소문을 뒤로한 채 이제 며칠 후면 첫돌을 맞이하게 되었고 소영과 소영의 온 가족들은 부모가 모두 병원 신세를 지고 있기에 고아 아닌 고아 신세가 되어버린 요한의 첫돌 잔치준비를 하느라 나름대로 부산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으며 병실에 누워있으면서도 병실 한 켠 벽에 걸린 달력을 통하여 요한의 첫돌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준호는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수 없으리만큼 소중한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을 뼈저리게원망한다. 심한 자책감에 빠져있던 준호는 어떤 결심을 한 듯 담당 의사에게 한 가지 어려운 부탁을 하기에 이르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식 요한의 첫돌 날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집에를 다녀올 수 있도록 임시 퇴원을 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간절한 부탁에 담당 의료진에게서도 병원 규정을 어겨가며 부탁을 들어주기에 이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