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어린 시절부터 혼자 지내며 혼자 고민하고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삶이 몸속에 습관처럼 배여버린 준호도 이번 일 만큼은 쉽게 결정을 내릴 문제가 아니라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영식의 외삼촌 괘씸한 행위를 봐서는 한 푼의 돈도 주지 않고 경찰의 손을 빌려 당장 내쫓고 싶지만, 영식일 생각 한다면 그래도 부모님을 잃어 오갈 곳 없고 정신조차 온전치 못한 외조카를 데려다 자식 삼아 몇 년을 키워준 은혜도 있는데 그런 영식을 데려와 수족처럼 부리는 실정이라 더욱 큰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 짧지 않는 시간을 혼자 고민하는 준호를 말없이 지켜보던 영식의 마음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형!우리 외삼촌 용서해 주면 안될까?”
“으응…, 용서해 드려야지”
“하지만, 돈이있으면 마음 편히 드리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고 외삼촌께서 돈을 내놓으라고 저렇게 요지부동이시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니”
“형! 내가 외삼촌에게 얘기해 볼게”
“어떻게? 전번에 보니 네겐 말도 못 붙이게 하던데 넌 나서지 않는 게 좋겠는데?”
“형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렇지”
“난, 괜찮아 걱정마”
“어떻게 걱정을 안 해. 형이 내게 얼마나 잘해 줬는데”
“잘해주긴…, 난 잘해준 거 없어”
“형! 내가 언제 다시 또 정신이 흐려질지 모르거든?”
“그래서?”
“으응, 그래서 내가 맑은 정심이 있을 때 외삼촌을 설득해 보겠다는 거야”
“네 마음은 매우 고맙고 기특한데 외삼촌께서 네 말을 들어주시겠니?”
“그냥 하는데 까지 해 볼게.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죽인다고 하면 죽으면 되고…”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말이그렇다는 거지”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 거야”
“형! 알았어, 그만큼 내 각오가 크게 섰다는 거야”
“우리 영식이 제법인데? 이 형의 괴로운 마음도 헤아려 위로할 줄 알고 말이야.
“그럼 형과 내가 한 몸이 되어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영식아 고마워, 형이 그동안 내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었다고…”
“그걸 생각하면 솔직히 외삼촌이 찾아와 저렇게 생떼를 쓰는 것도 정말 미안하지”
“별소릴 다 한다”
“아냐, 사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그누구에게도 형에게 받았던 따뜻한 사랑은 받아보지 못했어. 이곳에 와서 형을 비롯한 혜정 누나와 옥희 누나, 그리고 다른 가족들에게 받았던사랑은 거짓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참정이었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 주니 오히려 내가 부끄러워”
“그런데 내가 이 일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지. 일단,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맡겨줘”
“그래, 그렇다면 한 번 해봐”
영식은 준호와 얘길 끝내고 외삼촌을 설득하려고 밖으로 나간 뒤 부족하기만 한 줄 알았던 영식의 입에서 누구보다 경우 바르고 위치에 맞는 말만 하는 영식이 대견스럽고 고마워 준호는 혼자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한편, 밖으로 나온 영식은 좀전에 준호와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을 간추려 요약하여 혜정에게 말하곤 외삼촌과 얘길 해야겠으니 자리를 좀 비워달라고 해 혜정과 옥희는 다음 일을 의논하려고 준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즈음 영식은 자신은 자기가 너무 잘 알기에 또 다시 정신이 흐려지기 전에 얘기를 마무리 지어 사랑의 집 모든 가족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술에 만취된 외삼촌보다 외숙모를 대화상대로 선택하고 얘기의 문을 열었다.
“외숙모!”
“으응. 왜 그랴?”
“제가 정신이 흐려지기 전에 얘기를 끝내야 하니 길게 끌지 말고 빨리 끝내기로 해요”
“무슨 얘길?”
“외삼촌이 준호 형에게 돈을 달라는 건 억척이고 어불성설이에요”
“외삼촌도 그럴만하니 그러시겠지”
“그러실만 하다뇨?”
“외삼촌은 자식 같은 네가 이 집에 와서 몸종처럼 고생을 하니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냐?”
“고생이라뇨? 제가요? 저는 고생 안해요. 누구 하나 눈치 안보고 오히려 마음 편히 살 수 있어 좋아요”
“그럼, 전에 우리 집에서 생활할 땐 눈치를 봤단 말인가?”
“사실 전혀 눈치를 안 봤다고는 못하지요”
“뭐라!”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치에 맞지 않은 억지를 쓰고 계신 외삼촌을 어떻게 설득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억지? 네 눈엔 지금 외삼촌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냐? 그래?
“자꾸만 말꼬리 잡지 마시고 외숙모가 외삼촌에게 얘기를 잘 해서 시골집으로 내려가세요. 저를 조금이라도 생각하신다면 말이에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
영식은 마침내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두 줄기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외숙모 앞에 호소하기 시작했고 갑작스러운 영식의 행동에 당황한 영식의 외숙모는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다.
“야가 왜 이런다야, 어서 일어나란께!”
“으흐흑…, 외숙모! 제발 부탁이에요. 준호 형은 저를 이곳에 데려와 마음 편히 먹여주고 입혀준 죄밖에 없어요. 외숙모도 저를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만,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제게 누가 이렇게 따뜻한 정으로 대해준단 말이에요. 아니 할 말로 준호 형이 절 데려가라고 하면 어쩌실 거에요”
시간이 흐를수록 영식의 경우 바른 설득은 마치 날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칼로 가슴을 찔러대는 듯하여 영식의 외숙모는 점차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그란디, 너거 외삼촌이 황소고집이라 내 말을 들을랑가 모르겄소”
“외숙모! 고맙습니다”
“아니여! 아직 외삼촌 말을 들어 봐야제”
“외삼촌이 전부터 누구의 말보다 외숙모의 말씀을 잘 들으셨잖아요”
“글씨, 내가 얘길 혀 보긴 혀 보겠지만 말씨…”
“외삼촌이 잠을 깨시면 얘기 잘해 주세요”
“그렇게 혀 보자고…”
두 사람은 영식의 외삼촌이 술이 깰 때까지 기다려 설득을 시도해 보기로 하고 흘러간 세월동안 못다 나눈 얘기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술에 취해 한참 동안 정신없이 자던 영식의 외삼촌은 차가운 날씨와 함께 갑자기 불어 닥친 높새바람에 한기를 느껴 눈을 떠보니 영식과 외숙모 두 사람이 얼굴에 웃음을 담아 다정하게 대화를 정겹게 나누는 모습을 보고 놀라 눈을 번쩍 뜬다.
“뭐가 그리도 좋아서 웃고 그랴?”
“영감 일어났우?”
“그란 데 어떻게 됐어?”
“뭐가 어떻게 됐다요?”
“좀 아까 경찰을 부른다고 했잖여!”
“아, 그거요…,”
“영식이 영감 조카 맞소?”
“아니, 이 할망구가 실성을 했나. 물어볼 걸 물어봐야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원?”
“그람, 우리 똥고집 그만 부리고 내려갑시다”
“똥고집이라니! 그리고, 내려가긴 어딜 내려가!”
“사실 우리가 영식이한테 변변히 해 준 게 뭐가 있당가요”
“없긴 왜 없어, 제 부모 돌아가시고 몸 붙일 곳도 없이 떠돌이 신세 때 우리가 거두지 않았음, 어떻게 됐겠나”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사실 그때도 지 생각은 들어보지도 않고 영감이 좋아서 영식일 맡아놓고는 살림살이가 쪼매 기운다 해서 영식이 숙부님께 도로 데려가라 하시곤 그도 모자라서 몇 년 동안 영식이를 데리고 있었던 몸값을 숙부님께 달라고, 그렇지 않아도 형님 내외분을 한꺼번에 화마에 빼앗겨 속이 쓰라린 영식이 숙부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려 병약한 분을 화병이 나게 해 드려 돌아가시게 해놓곤……”
“이놈의 할망구가 정말 못 먹을 것을 먹었나. 오늘따라 왜 이리 설치고 방정이야!”
“외숙모! 그건 또 무슨 말씀이셔요?”
이때, 방안에선 준호와 혜정, 그리고 옥희가 영식이 외삼촌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소란 없이 지혜롭게 해결해야 되는지 의논을 신중히 나누고 있었다.
“여보, 요한 아빠! 아낄 것도 없지만, 우리가 조금 덜 먹고 덜 쓰더라도 영식이 외삼촌 돈 해줍시다”
“어려운 형편이라 당신의 말은 못하고 있었지만, 나도 그렇게 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었어”
“오빠! 언니! 그건 안돼요! 언니와 오빠, 그리고 우리 모든 가족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데 저렇게 아무런 노력도 없이 남의 등이나 치려고 하는 사람에게 돈을 준단 말이에요”
“옥희야! 우리가 왜 네 말뜻을 모르겠니. 그러나 영식이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네 언니의 일손을 얼마나 들어주었니. 그리고 나의 수족이 되어 일순간도 내 곁에서 떠나지 않고 말야”
“제가 왜 그걸 모르겠어요. 하지만, 너무 허무해서…. 흑흑흑…”
“옥희야! 울지마.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지만, 사람은 다르잖니. 영식이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렴”
“언니! 미안해. 내가 잘 알면서도 영식이 외삼촌이 너무하시다는 생각에….”
“그래 네 마음 이해해. 시끄럽게 소란을 피워봐야 결국은 우리 가족들의 손실이 더 크게 마련이야”
“오빠 생각 잘 알겠어요. 오빠! 제가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마침내 방안의 세 사람은 마음의 일치를 보게 되었고 급한 일이 생기면 사랑의 집 장애우 가족들의 병원비로 사용하려고 비상금으로 모아둔 3백만원을 영식이 외삼촌에게 주어 시골집으로 내려 보내기로 의견을 모았는데 이 순간, 또 다른 한 켠에선 다른 입장에 놓여 있는 세 사람이 서로 다른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려고 심한 진통을 겪으며 또 다른 모습으로 아파하고 있었다. 영식은 외숙모의 말 한마디가 다시금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영식은 여태껏 둘째 삼촌이 몸이 허약해서 앓다 돌아가신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자신의 신상문제로 인해 외삼촌이 주었던 마음의 상처 때문에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는 말에 몇 십 년 억누르고만 살았던 온갖 울분이 한꺼번에 아우성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것을 꾹꾹 참아 삼켜야만 했었다. 그것은 눈앞에 존재하는 혈육인 외삼촌 내외 때문도 아니고 더욱이 자기 자신 때문도 아니었다. 오직 한 사람, 자신이 살아온 30평생 동안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제외하곤 자기에게 가식 없는 정과 관심을 나누어 주었던 준호 때문이었다. 영식은 놀라움과 실망으로 쉴 새 없이 교차되는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어 잠시 아무 말 없이 멍하게 앉아있다 매서운 눈초리로 외삼촌을 쏘아보며 말문을 열었다.
“외숙모! 그게 정말이세요?”
“으응…, 그게 말이야…”
“이 놈의 할망구가 쓸데없는 말을 해서 애 마음을 불편하게 하남!”
“전 여태 그런 줄도 모르고…. 그렇다면, 더욱더 준호 형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 해야 겠어요”
“아 글쎄, 그게 아니라니까”
“좀전에 외숙모가 하셨던 말씀이 설사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외삼촌한테 드릴 돈은 이 집안에 단 한 품도 없을 겁니다. 아뇨, 다른 사람이 준다고 해도 제가 못하게 결사반대 할 거에요”
“아니, 이것들이 내가 잠시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실성을 했나! 왜 이리 발광들이야!”
“아니, 실성을 헌 건 우리가 아니고 영감이랑께”
“뭐얏!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분고분하던 할망구가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왜 이래?”
“예, 그라요. 내가 실성을 혀서 받을 돈이 있다는 영감 꾐에 빠져 정신 못차리고 따라오긴 혔지만, 영감도 그러는 거 아니라….”
“내가 어쨌게 그러는 겨, 아니라는 겨 대체! 할멈이 지금 정신도 옳찮은 이 아이의 무슨 말을 듣고서 이러는지 모르지만, 우린 이 아이의 보호자로서 그 친권을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겨”
“정신이 옳찮은 이는 영식이가 아니라 영감이랑께!”
“뭐얏! 점점 못하는 소리가 없어!”
“내가 미쳤지 저렇게 경우도 없는 영감탱이를 따라 아까운 여비를 써가며 서울까지 올라와서 볼꼴 못 볼꼴 다 보여가며 이게 무슨 망신이랑가!”
“이 놈의 할망구가 정말 맞고 싶어!”
“그려유, 때려요 때려!”
“외삼촌! 외숙모! 왜 이러세요.
“야 이놈아! 정신없는 짓 하려면 네놈이나 할 것이지 네 외숙모까지 정신을 흐려놓아!”
“얼라, 왜 또 화살이 죄 없는 영식이에게 쏟아진다요. 영감! 이러지 말고요 지 말 좀 들어보더랑께. 빈대도 낯짝이 있다고 하지않습뎌. 그란데 우리가 영식에게 뭐 하나 똑 뿌러지게 해 준거 있소잉…. 몇 년 동안 같이 살면서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밥 한 끼 따스게 못 받게 해주고 옷 한 벌 제대로 못 사주었는디 지금에 와서 우리가 뭘 어쩌겠다고…. 영감도 양심이 있음, 한번 생각해 보랑께. 우리가 이 집에 와서 생떼를 쓸게 아니라 오히려 이 집 식구들 한데 고맙다고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해야 정말로 양심을 가진 사람의 도리가 아닌감유? 그랑께, 더 이상 생고집 부리지 말고 우리 집으로 내려갑시다요. 이렇게 지가 빌게유. 예? 영감!”
영식 외숙모의 눈물 섞인 집요한 설득에 그리도 시퍼렇게 설쳐대던 영식의 외삼촌은 잠시 숙연해지더니 담배를 빼어 물고는 구름이 묵묵히 흘러가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혼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몇 개비의 담배 연기를 연심 내뿜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영식의 외삼촌은 천근만근 무거운 말문을 열어 지금의 자기 심정을 한숨으로 길게 한번 푸~ 내뿜어 털어놓는다.
“영식아! 내가 잘못했다. 내가 그동안 잘못 산 듯싶구나. 하던 일이 망하고 나니 그만…, 날 용서해라... “으흐흑…”
“영감! 잘 하셨우”
“외삼촌! 고맙습니다”
“날 용서해 주겠니?”
“용서고 뭐고 할 것 있나요”
“내가 정신이 나가 돈에 눈이 어두웠던 게야. 양친이 다 세상을 떠나 안 계신데 몸 붙일 피붙이 하나 없는 너를 보살펴 주기는커녕 누구보다 먼저 앞장서서 널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었으니 모르는 남보다 못한 놈이야”
“외삼촌! 이젠 지난 일들은 들춰내지 마세요. 마음만 더 아프니까요”
“그래요, 영감! 우리 영식이 말이 백번 천번 맞지라”
“당신에게도 내가 사과를 해야겠소”
“별 말씀 다 하시오. 잉!…”
“아니오. 정말 미안하오”
“아니지라, 아니지라, 진짜로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지라”
“그게 누구요?”
“누구긴 누구라요, 이 집주인이제”
“참! 그렇구려, 주인 양반 어디 계신가?”
“제가 데리고 나올게요”
“그래 그렇게 해 주렴”
영식은 외삼촌이 마음을 바로 잡았다는데에 있어 마치 등에 날개를 단 듯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한달음에 준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이때 안에서 영식이 외삼촌에게 3백만원을 줘서 시골로 내려 보내기로 마음을 모은 세 사람은 만약에 영식이 외삼촌이 3백만원 이상을 달라고 요구하면 어쩌나 하는 또 다른 걱정거리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할 방안을 찾고 있을 즈음 영식이가 날듯이 뛰어든 것이다.
“형!”
“형!”
“영식아! 왜 그래? 또 무슨 일이야? 혹시, 외삼촌께서…”
“아냐 그게 아니라, 옥희 누나! 나쁜 일이 아니라 기쁨 소식이 있어”
“기쁜 일, 뭔데?”
“외삼촌이 돈을 안 받겠데”
“정말? 왜 돈을 안 받으시겠다는 거냐?
“응, 외삼촌이 맡겨둔 것도 아니고 도와주지는 못해도 돈까지 받을 순 없데”
영식의 말에 기쁘긴 하지만, 몇 시간 전까지만 하여도 그렇게 완강하게 생떼를 쓰며 돈을 요구하던 사람이었던지라 믿기지 않은 사실에 세 사람은 어리둥절하여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밖에서 영식의 외삼촌 내외가 고개를 숙인 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들어왔다.
“저어…, 들어가도 될까요”
“네, 어서 들어오세요. 이리로 앉으세요”
“네, 고맙습니다. 정말 준호씨나 가족 여러분께 부끄럽고 죄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아, 아닙니다. 죄송하다뇨. 저희는 오히려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는걸요. 이번 일로 해서 우리 가족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계기도 되었고 또 어떤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을 때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앞장서서 도움이 되려고 하는 희생과 헌신의 정신을 한눈에 볼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말해 주니 더욱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군요”
“당치도 않습니다. 부끄럽다뇨”
“아닙니다. 오갈 곳도 없는 조카자식을 염치없이 맡겨두고 찾아와 감사하다고 정중하게 인사도 한번 못 드려 놓고 정신도 옳잖은 조카를 미끼로 돈을 뜯어내려 하다니 인두겁을 쓴 인간으로썬 차마 못 할 일을 저질러 놓고 용서를 빌려고 또 이 자리에 이렇게 섭니다. 참으로 뻔뻔하지요?”
“전혀 아니니 그런 것엔 신경 쓰시지 마세요”
“그렇게까지 말해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이제야말로 마음을 다 비워 준호씨의 삶을 본받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그리고 자격이 될런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나도 힘이 닿는 한 이 사랑의 집 가족들을 위해 봉사할 테니 허락해 줄 수 있는지요?”
“부끄럽습니다. 자격이 되고 말고요. 저희 입장에선 너무 감사한 일이죠. 그렇지 않아도 가족은 몇 사람이 더 늘었는데 봉사를 하려는 이는 많이 줄어 몹시 힘들어서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던 중이라 이처럼 반갑고 고마운 희소식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못난 날 받아준다니, 앞으로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여보! 요한 엄마! 오늘은 우리 가족들 다 한자리하여 잔치라도 벌려야 할 듯싶네?”
“그렇게 하죠! 그게 뭐 어렵나요. 옥희 오랜만에 오늘은 우리 삼겹살 파티해야겠네. 나, 좀 도와줄래?”
“네, 언니! 준비할게요”
“흐흑, 가족들이 한결같이 이렇게까지 환대해 주니 정말 60평생 이렇게 기뻐해 본 날도 드물었을 것입니다”
“지도 한 말씀 올리겠어라. 참, 뭇이냐. 지도 받아주심 부엌일이라도 도와볼라요”
“네, 그렇게 해 주셔요”
“외삼촌! 외숙모!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두 분께 뽀뽀라도 해 드릴게요”
“야! 말어. 징그러운께?”
“하하하…, 호호호…”
집안은 실로 오랜만에 웃음을 되찾는듯하였고, 시골집을 아예 처분하고 올라온 영식 외삼촌과 외숙모는 서로 힘을 요구하는 곳에서 힘이 되어주면서 본분을 다하여 노년을 아름답게 꾸려 나아가고 있었는데……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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