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속에서 핀 장미
김 철 이
소설가/시인
제 2 부
혜정은 아침 일찍 준호를 등에 업은 채 힘겨워 비지땀을 쉼없이 흘리
며 대전역을 향해 종종걸음을 쳤는데 가던 중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마다 준호를 업은 혜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마치 침팬
치를 업고 가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듯한 눈초리들이었다. 역무원과
주위 사람들 도움으로 간신히 서울행 열차표를 끊은 혜정은 여자에
겐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서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서울에 도착한 혜정은 준호를 데리고 당장 오갈 때가 없자 혜정이 재
학중인 간호대학 기숙사를 임시 거처로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준호를
업고 갔으나 다급한 나머지 앞뒤 가릴 수 없었던 혜정의 입장이었다.
아랑곳없이 동료 여학생들은 등에 업힌 준호를 보자 혐오스러운 눈
빛으로 마치 짐승을 바라보듯 하였다. 급기야 사태는 기숙사 사감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당분간이라도 기숙사에서 지내게 해 달
라는 혜정의 눈물 어린 사정과 애걸에도 불구하고 사감은 학교 규칙
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쫓아내고 말았다.
강제로 쫓겨난 혜정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하니 암흑과 같이
눈앞이 캄캄하였다. 너무 막막한 나머지 어느 집 담장 밑에 준호를
겨우 기대어 앉혀놓고 자신도 쪼그리고 기대앉아 땅을 향해 숙인 머
리에서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절망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때
였다. 길을 지나치던 한 노파가 준호와 혜정이 불쌍해 보였던지 혀를
껄껄 차며 속바지 주머니 속에서 천원권 한 장을 혜정에게 건넸다.
노파가 건네준 돈을 무심코 받아든 혜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참을 울고 난 혜정은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것이 있었
다.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친 뒤 노파가 건네준 돈을 한 번 내려다보고
나서 길가던 한 청년의 도움으로 택시를 세워 힘겹게 준호를 태우고
급히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 도착한 두 사람은 부산행 열차표
를 끊어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안에서도 마찬가지 두 사람을 바
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밤 9시 20분 부산에 도착하여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혜정의 집 가야동으로 향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집이지만 영문을 잘 모르는 가족들은 죽일듯 혜정을 다그친
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부모가 7남매 중 무남독녀였고 자식이 알
지도 못하는 장애인을 등에 업고 왔으니 노발대발 하지않겠는가 말
이다. 더군다나 어릴적부터 총명하여 주위의 많은 칭송을 받아 부모
님은 여섯 형제의 아들들에게는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시키지 않았으
나 유일하게혜정에게만은 서울에 유학까지 시키면서 엘리트의 길을
열어주려 했었는데 부모로서는하늘이 무너졌으리라. 하물며, 무릎
을 꿇고준호와 결혼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헤정을 부모님과 오빠들
은 마치 정신병자 취급을 하며 아예 자식과 형제의 연을 끊자고까지
막말을 하였다. 한바탕 극한 소란이 있은 뒤 아버지께서 혜정에게 담
판을 짓자고 하신다.
-넌! 자식으로서 부모와 형제의 기대를 저버렸으니 지금부터 내 자
식도 아니고 내 아들들의 누이도 아니다. 그러니 저 이름도 성도 모
르는 사람을 제 집으로 데려다 주던지 아니면 저 사람을 데리고 당장
나가서 우리 집과는 그 연을 끊든지 해라-
아버지의 말씀에 막막해진 혜정은 가족과 준호 양편을 놓고 잠시 깊
은 생각에 빠진다. 아버지의 불같은 성화와 오빠들의 윽박지름 속에
서도 아무런 흩어짐 없이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긴다. 피와 살을 함께
타고 이 세상에 태어난 부모 형제도 헌 신짝처럼 버렸는데, 나마저 저
사람을 외면한다면 이제 저 사람 인생에 있어 과연 남는 건 무엇이고
저 사람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하니 도저히 준호를 모른 채
외면할 수가 없어 야무진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한편, 건넛방에 혼
자 누워 또 다른 한편에서 시끄럽게 벌어지는 극한 언쟁들을 듣고 있
던 준호는 자신의 비참함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며 세상이 이렇
게 넓고 또 넓건만 자신의 작은 육신 하나 의탁할 곳이 없어 생명부
지의 사람들 집에 와서 자신과는 피 한 방울 살 한 점 섞이지 않은 혜
정에게 까지 못할 일을 시킨다는 죄책감에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
고 한없이 흘러내려 배갯닛을 촉촉히 적셨다. 그즈음 혜정은 부모와
오빠들 앞에서 나이에 비해 야무지고 당찬 선포를 하기에 이른다.
-아빠, 그리고 오빠들, 저는 지금까지 부모님 말씀에 단 한 마디도
거역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
님 말씀과 오빠들 뜻을 어기는 누를 범해야겠습니다. 아빠께서 평소
저희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씀해 주셨죠?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
를 도와야 하며, 육신이 성한 자가 성치 못한 자를 도와야 하는 법'이
라고 말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아빠의 그 말씀을 가슴속
에 소중히 새기며 실천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빠의 그
말씀을 이해할 수도 이해할 수가 없답니다. 아빠의 말씀 되로라면,
제가 싫다고 하여도 아빠께선 저를 크게 꾸짖으셔야 하지 않나요?-
당찬 혜정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아버지와 오빠들은 너무 어이가 없
고 귀가 막혀 할 말을 잊었고 평소 혈압이 조금 높으셨던 아버지는
그 자리에 쓰러졌으며 혜정은 급기야 창고로 사용하던 골방에 갇히
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께서 자리에 눕게 되자 가족들은 혜정
을 골방에 가두어 열쇠로 문을 굳게 잠가 놓고 바깥출입은 물론이지
만 식사 때를 제외하곤 외부인 출입도 일체 금하였다. 혜정은 골방에
갇혀 꼼짝도 못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누군가 먹여주지 않으면 밥 한
술 자신의 손으로 떠넣지 못하는 준호의 걱정으로 생병이 날 지경에
이르렀다. 가족들 입장에서 보기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혜정의
모습을 며칠 동안 지켜보던 가족들은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
이 한자리에 모여 가족회의를 열기에 이른다. 회의 끝에 나온 결론
은 혜정을 집에서 영원히 내쫓자는 것이었다. 결국,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 가문에서 내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집으로 들어올 때 옷차
림 그대로 대문 밖으로 개 쫓듯 내몰았다.
당장 몸을 부지할 곳 조차 없어진 혜정과 준호는 그날 밤이 아니라
당장이 급해진 것이었다. 넋이 빠진 채 행인들이 오가는 도로변 어느
집 담장 옆에 기대여 준호는 혜정의 가냘픈 등에 의지하여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씩 허기가 지기 시작했
다. 혜정이 호주머니 속을 뒤져보니 만원권 다섯 장이 손에 들어왔
다. 이제 두 사람의 생사는 이 만원권 다섯 장에 걸린 것이었다. 혜정
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빙그레 쓴웃음이 입가에 배여 나왔다. 한동안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혜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아뇨 혜정씨가 왜 미안합니까, 제가 혜정씨 볼 면목이 없지요-
-우리 이젠 어디로 가죠?-
혜정의 물음의 준호는 그만 할 말을 잊었다. 잠시 후 허기부터 달래
야 했기에 혜정은 만원권 한 장을 꺼내어 인근에 있는 가게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두 사람은 길바닥에 앉은채 따뜻한 한 잔의 물 대신 뜨
거운 눈물과 함께 허기진 뱃속을 채워야만 했었다. 초겨울 날씨라고
는 하지만 돈 없고 배고픈 준호와 혜정이 느끼는 기온은 보통 사람의
몇 배의 추위를 느껴야만 했다. 해는 점점 서산 너머로 기울기 시작
하고 어느 한 사람 이들을 거들떠 보는 이 없었다. 당장 밤이슬 한 방
울 막아줄 지붕 하나조차 없는 두 사람은 하는 수없이 하룻밤 자는
데 5천원 하는 3류 여인숙을 찾아 겨우 하룻밤을 지낼 수 있었으나
다음날 아침부터의 일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의 걱정에는 관
심도 없다는 듯이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또 다른 하루의 문을
열었다. 준호와 혜정은 외로움과 전날 저녁 밖에서 추위에 떨었던 탓
에 몸살 기운이 있어 여인숙 방에서 끼니도 거른 채 저녁 무렵까지
끙끙 앓으며 누워있다 해질 무렵에서야 겨우 기운을 차려 일어나 빵
과 우유로 몇 끼의 끼니를 때우고 나서 어디로 갈 것인지 아무런 목
적지도 없이 무작정 여인숙을 나섰다.
-혜정씨 어디로 가죠?-
혜정은 준호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어 그저 머뭇거리기만
했다. '준호씨 미안해요, 제가 변변치 못해서요' 이렇게 말해주며 준
호를 위로 해 주고 싶었으나 혜정에게는 이 말조차 해줄 수 있는 기
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생각 끝에 혜정은 부모님과 오빠들로부터 멀
리 떨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혜정은 다시 부산역으로
향했으며 열차표를 끊어 경기도로 향했다. 완행열차인지라 열 시간
이 넘어서야 이천에 도착하여 역 인근에 있는 마을을 찾아 들어갔다.
노부부가 살고 있는 작은 양철 지붕 집을 찾아 들어간 혜정과 준호는
친절히 대해주는 노부부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들었고 쌀알은 헤아
려도 헤아릴 수 있을 만큼의 보리밥으로 허기진 뱃속을 채우니 먼길
에 긴 여독과 갑자기 식사를 했던 탓에 졸음이 마구 쏟아져 그 자리
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쓰러져 자던 준호와 혜
정은 잠시 머물러 있던 주인집 할머니께서 저녁식사 대용으로 쩌내
온 옥수수를 먹으라고 깨우는 통에 놀라 일어나 보니 저녁해는 이미
서산 너머로 사라 진지 오래되었고 바깥은 짙은 먹물 빛 어둠으로 하
얀 낮의 모습을 가린지 오래였다. 허둥지둥 흐트러진 옷차림을 가다
듬고 그 집을 나서려는 순간, '색시 갈 곳은 있우?'라는 주인집 할머
니다. 갈 곳이 없어 보여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물어보신 것이다.
-저, 저어....-
-당장 갈 곳이 마땅치 않나 보구려, 정 갈 곳이 마땅치 않다면 우리
집에 작은 방 하나가 있는데 몇 년전 사고로 죽은 우리 외동아들이
썼던 것이고, 그동안 손질을 하지 않아 무지 허름한데 색시만 좋다면
당분간 사용해도 좋을 텐데 말이유?-
순간, 혜정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세상에 누구 하나 말 한 마디
따뜻하게 해 주는 이 없어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주
인 할머니께서 다정한 어조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여 혜정은 할머니의 손을 잡은 채 아무 말 못하고 그저 굵은 눈
물방울만 뚝뚝 방바닥 위에 떨어뜨리며 멍하니 서 있었다. 준호 역시
자기 자신을 이 세상에 낳아주신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는데 생면
부지 타인으로부터 이렇게 따뜻한 정과 사랑을 받고 보니 이 세상은
아직도 메마르지만은 않았고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과 만약에 혜
정이 평생 자신의 곁에 있어준다면 자신처럼 부모, 형제 그리고 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함께 동고동락하고 서로 의지하
며 같은 피와 뼈를 나눈 부모, 형제처럼 살아가는 장애인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거처 할 곳이 생길 때까지 당분간 노부부댁에 임시로 머물기로 한 두
사람은 노부부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로 양철 지붕 작은 집에서 머물
며 혜정은 연세가 많이 들어 집안일이나 농사일에 힘겨워 하시는 노
부부를 도와 집 안팎 모든 일을 헌신적으로 도우는 한편 손 하나 까
딱 못하는 준호의 손과 발이 되어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몫을 하며 단
한 시간도 편히 한번 쉴 새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던 혜정에게 또 다
른 생활로 들어서는 인생 여정의 문이 열리는 계기가 생긴 것이다.
혜정은 준호의 휠체어를 사주기 위해 노부부를 도우는 한편 틈틈이
시간이 나는 대로 이웃 동네에 있는 작은 가정공업에 다니며 준호를
돌보아 오던 중 그날도 준호를 부부에게 잠시 보살펴 주실 것을 부탁
드리고 공장에서 세 시간 정도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준호
에게 줄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구멍가게에 들려 나오다 어디선가
가냘프게 들려오는 사람의 신음 소리를 듣고 찾은 나머지 시선이 멈
추어 섰다. 구멍가게 뒷담 옆 인적이 드문 으슥한 장소였다. 혜정은
처음엔 조금 겁도 났지만 사람의 신음 소리를 듣고서야 어찌 가보지
않겠는가. 해서, 혜정은 쉼 호흡 한번 크게 내쉬고 나서 신음 소리가
초겨울 가는 바람에 실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가냘프게 들려오는 곳
으로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혜정의 등골에는 무서워
식은땀이 미끄럼을 타고 흘러내렸으나 용기를 내어 신음 소리가 나
는 곳을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섰다. 마침내 어설프게 쌓아놓은 돌담
옆 모퉁이를 돌아서서 불경기로 인하여 짓다 그냥 방치해 놓은 아파
트 벽돌 뒤에서 사람의 신음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몸이 정상
적으로 보이지 않은 한 남자가 벽돌들이 이곳저곳 어지럽게 흐트러
져 있는 옆에 두 다리를 옆으로 쭈구린 채 떨며 누워있는 것이 아닌
가 순간 혜정은 섬짓 하는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
으나 성당 성전 안에서 준호를 발견할 때의 기억이 떠올라 얼른 한
걸음 다가서서 '저어, 여보세요 여보세요'하고 두 차례 불렀으나 아무
런 대답이 없고 신음 소리만 더 높아갔다. 혜정은 얼른 쓰러져 있는
남자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서 몸을 일으켜 안고보니 10대 후반으
로 보이는 장애인 소년이었다. 혜정은 구멍가게 주인을 큰 소리로 불
러 그 소년이 어디에 사는 누군지 물어봤으나 구멍가게 주인은 그 소
년이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는 대답이었다. 몇 끼니를 거른 듯 하였고
추위에 몹시 떨고 있어 급한 나머지 구멍가게 주인에게 우선 가게 방
으로 좀 옮기자고 하니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간
뒤 야박하게도 가게문을 안으로 굳게 잠겨버렸다. 하는 수없이 소년
을 겨우 등에 들쳐업고 노부부의 양철 지붕 집을 향해 숨가쁘게 다름
질 치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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