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고독 松竹 김철이 거친 갈까마귀 숨결마저 잠드는데 부엉이 울음의 득세는 온 산기슭 울리고 산안개 독백의 기원을 올린다. 뉘라서 거역하리오 당면한 이 순간을 꽃으로 피고 싶은 소망이든가 강둑 물보라 고요히 피어난다. 붉은 노을 서산에 지고 동창의 달은 밤하늘 한가로운데 소쩍새 외로운 울음을 운다. 내일을 향한 밤의 행보는 총총한 별인데 밤 기러기 나래 짓 쓸쓸한 줄을 잇는다. 개인♡시집 2022.02.12
아주까리 등불|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아주까리 등불 松竹 김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골골대며 흐르던 시냇물 잠이 든 듯 부엉이 울음소리에 기가 죽고 초가삼간 추억 속에 졸고 있다. 길 잃은 나그네 등골에 한기가 솟고 하늘의 악동들 잔별의 장난기 늘어만 가는데 오막살이 찢어진 창호지 들락날락 서당 아이 글 읽는 소리 자장가 가사로 밤 창공에 수를 놓고 삽살개 짖는 소리 심통을 부리는데 겁먹은 등불은 심히 떨더라 밤의 터줏대감 소쩍새 호령은 산을 넘고 들을 건너는데 술 취한 취객인 양 여염집 안방을 깔고 앉아 권주가 삼매경 개인♡시집 2022.02.05
사는 게 뭔지|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사는 게 뭔지 松竹 김철이 누구 하나 등 떠밀지 않았건만 빈주먹 불끈 쥐고 굳세게 살리라 천 리도 더 되는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으나 반기는 이 없는 이 땅 인력(人力)으로 풀 수 없을 번뇌가 반겨주더라. 그저 손 놓고 구경만 하다 돌아설 수 없는 게 인생이라 옷 한 벌 걸치지 않고 성급히 뛰어든 세상이란 바다에 건질 것 하나 없는 허상(虛想)만 우글거리더라. 돌아갈 시간 코앞인데 할 일은 태산이라 조급한 심정 감출 길 없으나 세상만사 다 놓고 가라시는 지엄(至嚴)하신 천지 말씀 귓전을 맴돌더라. 돌이키고 싶으나 정녕 돌이킬 수 없을 인생이라 깊은 후회만이 가슴을 메우니 돌아갈 길 두렵기만 하고 내세(來世)에 질 짐은 무겁기만 하더라. 개인♡시집 2022.01.29
부모(父母)|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부모(父母) 松竹 김철이 품 안의 자식이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는 줄도 모르고 젊음을 담보로 일순간 유희(遊戱)를 즐긴다. 청춘은 흐르는 물결이라 세월(歲月)에 바람처럼 흩어지는 육신 거대한 세상에 올려놓고 피붙이 위한 한판 시름을 한다. 가야 할 길은 코앞인데 하늘 맺어주신 인연의 끈을 놓기 싫어 지팡이 하나 혼신(渾身)을 다해 의지한다. 저승 가는 길은 멀기만 한데 노잣돈 한 품 벌지 못한 탓에 주름진 얼굴에 심히 근심만 날개를 편다. 개인♡시집 2022.01.22
딱따구리|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딱따구리 松竹 김철이 백사장 모래알만큼이나 무수한 인간사 언어들 무기 하나 들지 않고 사랑하는 이 상처를 준다. 인두겁 썼다 하여 다 인간인가 구실을 다 못하면 금수만도 못하거늘 세 치 혀를 떠난 말들 부리조차 없을 한 마리 딱따구리로 생겨나 달리는 말도 없이 천 리를 간다. 육의 상처 세월 가면 절로 났지만 혼의 상처 천 년도 더 가기에 열일을 다 제쳐놓고 마음 가지런히 세 치 혀 다스려 주기를… 개인♡시집 2022.01.15
신토불이|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신토불이 松竹 김철이 그 옛날 속담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했듯 사시사철 변함없이 옥수(玉水) 같은 맑은 물이 흐르던 그 줄기 국적불명 폐수가 흐른다. 꽃 피고 새 울던 금수강산 옥토에 윤기 나는 백미(白米)가 절로 자라더니 밀밭의 가라지인가 안면몰수 키 큰 오곡이 무성히 자라누나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 노릇 한다더니 왜구 무력에 퇴위(退位)당한 왕위 부재중 틈을 탔나 논두렁 두렁마다 발광 소 지랄이냐 백의민족 숭고(崇古)한 얼이 서린 이 나라 이 창공에 텃새는 어디 가고 철새만 활개 치니 내 이름 석 자 쓸 줄이나 알는지 개인♡시집 2022.01.08
추어탕|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추어탕 松竹 김철이 보양식 한 그릇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릴 적 어머니 손맛이 아내의 손끝에 살아 숨 쉬는 덕이지 세월은 갔지만 추억은 영원한 것 낡은 두레상에 둘러앉은 어린 시절 빛바랜 가족 사진첩이 펼쳐지누나 몇십 년 뛰어넘은 시간의 흔적이 코앞에 놓인 뚝배기 속 김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가을 논두렁 살찌는 미꾸리 헤엄이 해묵은 추억이 되어 저녁상에 오른 추어탕 그릇 속 동심으로 꼬물꼬물 되살아 놀더라 개인♡시집 2022.01.01
하루|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하루 松竹 김철이 눈썹달이 두 팔 벌려 기지개 절로 켜는 아침 세상 뭇 생명 초를 다투어 삶의 전쟁터 칼의 날을 세우고 행여 녹슬세라 마음의 총에 기름칠 여념 없다. 소쩍새 울음이야 새벽을 불러오지만 인간사 울음이야 갖은 욕심 다 불러오니 미물조차 비웃더라 하루살이 날개마저 탐내는 인욕(忍辱)의 미련함을 하루가 있어 오늘이 있고 하루가 있어 내일이 있거늘 이틀을 앞세워 채찍질하는 사람들 무서워 눈 뜨고 잠 깨기 싫어서 잠자는 공주가 되리니 소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청설모 쌓인 낙엽 위에 새로운 둥지를 틀지만 세상 벼랑 끝에 쉬는 인생들 보장되지 않은 하루의 허상 잎에 물주고 가꾸며 갖은 정성 목을 매더라 개인♡시집 2021.12.25
추억|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추억 松竹 김철이 친구야! 까만 별밭에 하얗게 내리던 동심의 세레나데 넌 기억하니? 골목 안 가득 차던 악동들 웃음 보따리 세상 그 어디에 풀어놓았는지 아련한 세월 속 흔적으로 남누나 우리는 그랬네 못 치기 구슬치기 날 저문 줄 몰랐고 쥐불놀이 숨바꼭질 날 밝는 줄 몰랐지 나무 평상 줄지어 오순도순 밤하늘 별을 세며 풀벌레 울음소리 장단 맞춰 부르던 그 노래 어느 임 귓전에 맴도는지 정녕 찾을 길 없단다. 머리엔 은꽃이 피어나고 얼굴엔 저승꽃 곰삭아 피는데 마음은 청춘이라 금잔디 피고 지는 그 옛날 맨발로 달려가네 개인♡시집 2021.12.18
부부|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부부 松竹 김철이 강물은 흐르고 외나무다리 위에 마주 선 운명체 돌아설 길은 단 하나 님이냐 남이냐 외바퀴 굴렁쇠라 하더라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석 하늘이 허락한 인연 세상 끝날 손 잡고 돌아갈 고향의 길동무라 눈감고도 천 리를 가겠네 온 세상 다 팔아먹어도 허물치 말고 천지를 잡아 먹혀도 탓하지 마라 한 영혼 한 육신으로 살아갈 운명이니 살풀이인들 무슨 소용 있으리 내 것 네 것이 엄연히 구별된 세상에서 살 섞고 뼈 섞어 불리는 하나의 노래 백 년을 살아 하루도 변함없이 지어내는 작사 작곡 들을수록 오묘한 불멸의 명곡일세 개인♡시집 2021.12.11
시(詩)|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시(詩) 松竹 김철이 영혼의 옥토에 단어의 씨앗이 내리면 심성의 호미로 잡초를 저미고 노력의 물조리개 물을 뿌리니 너른 세상 인생이 되더라 어디서 날아왔는지 이른 봄 뜰에 나비 한 마리 가슴속 안방을 차지하고 날갯죽지 흰 가루 절로 뿌릴 적 언어의 마술사 말벗으로 산다. 인간의 고뇌 속의 감정 없는 노예가 되어 쇠고랑 발목에 차고 마음속 밭고랑을 오가길 몇 차례 웃자란 곡식을 수확하듯 설익은 가을을 캐더군 세상은 요지경 어릿광대 어설픈 춤사위에 울고 웃는 관객인 양 언어의 조련사 머슴이 되어 인생들 마음의 뜰 안을 쓸어주니 세상 뭇사람 허상뿐인 그를 가르쳐 뭇 민족의 가슴속 되새김질 삶을 사는 시(詩)라고 하더라 개인♡시집 2021.12.04
장승|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장승 松竹 김철이 나그네 걷는 길 구름도 바람도 벗이 돼주지 않는 외로운 길 삶의 고단함이 속속들이 묻어나는 긴 여정 한순간 중얼거리는 언어의 말벗이 된다. 갈지자 취객의 시야에 들어선 그 모습 요지부동 꼿꼿한 고목의 표정인 양 어엿함에 흥얼거리다 마을 어귀 통째 흔들거린다. 산새도 들새도 날다 지치면 썩은 나무 둥지 어깨에 내려앉아 순간을 쉬어가려 하니 왕방울 눈을 부릅뜨고 호령이 미물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 국란(國亂)이 일어난다 한들 두려움 하나 없는 듯 창칼 들지 않았어도 험상궂은 인상 한번 쓰고 나면 두만강 건너오던 오랑캐도 현해탄 건너오던 왜군도 신발조차 못 신고 천리만리 달아나겠네 개인♡시집 2021.11.27
별똥별|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별똥별 松竹 김철이 인간사 누구나 봄들에 꽃이 되길 바란다. 굼벵이 기어가듯 느린 걸음 세상이 열두 번 바뀌어도 변치 않을 모습과 표정인걸 껍데기 한 불 벗겨 얻을 수 있다면 고무신 벗어들고 맨발로 뛸 테지 너른 바다 모태 삼아 꼴뚜기로 태어난 네 팔자야 천금을 주고도 되팔 수 없건만 망둑어 뛴다 하여 시장바닥 널뛰지 마라 사흘에 콩 한 톨 세지 못해도 세상 햇살 먼저 셌으니 다람쥐 쳇바퀴 거꾸로 되돌려도 형은 형이로되 밥상 위의 머슴 밥 넘보지 말고 제자리 잘 지켜 천복이나 타 봄세 하늘의 해와 달이 둘이 될 수 없듯이 수많은 날들이 유성처럼 흘러가도 밤과 낮의 탑돌이 한결같지 않더냐 밤하늘 수만 수천 별들이 있어도 늘 봐야 제자리 제모습 제 표정 성을 다해 어둠 밝히리 개인♡시집 2021.11.20
마음|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마음 松竹 김철이 산중 날씨처럼 변덕스럽기 한이 없다. 어제는 마냥 울고 싶어 눈물이 폭포 되어 여울져 내리던 그곳에 오늘 해뜨기 무섭게 구름이 걷혀 오뉴월 불볕 쏟아져 내리더라 알다가도 모르겠네 아침나절엔 흥부 심보 저녁나절엔 놀부 심보 그 씨앗 어디서 피고 질까 질투도 나 스스로 짓고 시기도 나 스스로 짓는 것 굳은 땅 진 땅에 물이 고이고 빠지듯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잘도 고이고 잘도 빠지네 물꼬도 없는데 내일은 또 어떤 꽃 어떤 향기를 피울까 물주고 가꾸어 벌, 나비 절로 날아드는 꽃밭을 꾸며야겠네 젖과 꿀이 흘러 기름진 동심처럼… 개인♡시집 2021.11.13
보름달|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보름달 松竹 김철이 칠흑 같은 밤하늘 작은 숨소리마저 죽여 저무는데 중천을 밝히는 그이의 표정 언제부터 따라왔을까 그 임의 발걸음 외로운 영혼 마음 밑자락까지 손길 고르듯 달래주누나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새벽은 저만치 손짓하는데 촉박한 시간의 쫓김 속에서도 큰 얼굴 미소가 찬다. 순간에 불과한 운명 속에 풋사랑 엮어 걸어놓고 장담할 수 없을 미래를 향해 열정을 쏟는다. 개인♡시집 2021.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