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그분의 손과 믿음의 손 | 김동영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교포사목(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

松竹/김철이 2024. 7. 2. 12:40

그분의 손과 믿음의 손

 

                                           김동영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교포사목(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

 

 

저는 지난 2021년부터 미국에서 교포사목 중입니다. 생전 처음 미국에 와서 다른 언어와 다 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말하는 법,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새롭게 배워야 하기 에 가끔은 다시 유치원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몇 년 동안 ‘이제는 좀 적응이 됐다’ 싶다가도,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하거나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해 웃픈 일이 아직 종종 있습니다.

 

사목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있는 곳은 근처 지역까지 관할하는 사목구 본당인데, 한국인, 미국인 배우자, 여러 인종의 지역민이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라면 특별한 어 려움을 느끼지 못했을 본당 일들이 여러 차이들로 버겁게 느껴지곤 합니다. 이리저리 알아보 고 나름의 노력을 해보지만 생각대로 되질 않습니다. 혼자 계속 끙끙대다 지치고, 결국 어떻게 도 할 수 없어 십자가 앞에 털썩 주저앉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돌고 돌아서 그분 앞에 무릎을 꿇는 그 순간, 뭔가 선명해집니다. ‘아, 내 힘만으로 하 고자 했구나.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내 마음에 차는 방향만 고집했구나. 이건 하느님의 일인 데… 죄송합니다. 주님! 너무 늦게야 돌아왔습니다. 당신 손에, 전능하신 당신 팔에 맡깁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분께서 손수 하고 계셨던 일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는 저의 입이 되어 주고, 누군가는 저의 손과 발이, 누군가는 저의 마음이 되어 하느님의 일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걸 깨닫지 못한 건 부족한 저의 믿음임을 고백하며, 함께 살아 가는 공동체에 감사를, 그리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이렇다 보니, 야이로와 하혈하던 그 여인에게 더 마음이 갑니다. 다른 기적 이야기와는 다르 게 야이로는 그 이름이 언급될 만큼 유명한 회당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야이로가 공동체의 존경을 받았을 뿐 아니라 유력한 삶을 살았을 가능성은 큽니다. 그런 야이로가 자신의 모든 인맥과 재산을 동원해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하혈하던 그 여인의 경우, 당시 한 여인이 가산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면, 그 삶은 결코 낮은 지위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그 여인도 자신의 병을 치유하 기 위해 누구 못지않은 무수한 노력을 기울였을 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이로와 하혈 하던 그 여인은 돌고 돌아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많은 군중이 각자의 바람을 가지고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손들이 예 수님께 가 닿지만 아무런 변화는 없습니다. 내 손으로, 내 방식대로 그분을 좌지우지하고자 했 던 이들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룩하신 그분께 차마 손조차 댈 수 없었던 야이로와 행여 그분의 길에 방해가 될까 그분 의 옷깃을 만지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그 여인에게서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이 드러납니다. 그분 을 전능하신 하느님으로 고백하며 뻗었던 믿음의 손과 그분의 손이 맞닿습니다.

 

오늘 우리가 받아 모시는 성체를 향한 마음과 믿음이 그러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이를 대표하여 하느님의 손과 믿음의 손들을 이어주고 있는 교황님을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드 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