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두려움에서 일으켜지는 믿음 | 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님(등촌1동성당 부주임)

松竹/김철이 2024. 6. 30. 09:02

두려움에서 일으켜지는 믿음

 

                                                       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님(등촌1동성당 부주임)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마르 5,22) 이 구절의 그리스어 성경 원문을 더 직접적으로 번역하면, “회당장 들 가운데 야이로라는 이름의 한 사람이 와서….”가 됩니 다. 회당장이라 하면, 비록 그 규모가 작다 하더라도, 한 동네의 유다교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입니다. 죄의 용서 를 선포하시고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심지어 안식일 에 치유의 기적마저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실상 많은 바리 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는 점에서,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청원하는 ‘회당장’ 야이 로의 모습은 매우 이례적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야이로가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예수님께 간곡히 부 탁을 드리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죽어가는 딸을 살릴 분으로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는 길에 또 다른 기적이 이루어집니 다.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것입니다. 피 흘리는 여성을 부정(不淨)하다 보았던 구 약의 규정들을 상기해 볼 때,(레위 12장; 15장 참조) 예수님께서 허용하신 이 접촉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모릅니다. 프 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삼종기도 강론(2021년 6월 27일)에서, “하혈하던 여인이 바랐던 예수님을 향한 이 접촉은, 이 병 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부정함으로 인한 ‘고립’에서, 다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관계’로의 회복 또한 의미한다.”는 메시지를 주신 바 있습니다. 부정함의 옮음 따위는 걱정 하지도 않으시고, 오랜 세월 피폐했을 그녀의 삶을 예수 님께서는 새롭게 일으켜 세우십니다.

 

하지만 이 모든 광경을 힘겹게 지켜보았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야이로입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지금 이 렇게 시간을 지체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에게는, 하혈 하던 여인이 치유되는 이 시간들이 결코 아름다운 기적의 순간으로만 여겨졌을 리 만무합니다. 그저 자신의 딸 아 이가 죽어가는, 초조하고 야속한 시간이기만 할 수도 있 습니다. 이기적이래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는 딸이 그 누구보다 소중합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아직 예 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시는 중인데, 집에서 딸의 죽음을 알려옵니다. 절망적인 소식입니다.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 려워하지 마라! 오직 믿어라!”(마르 5,36 필자 번역) 예수님은 그의 두려움을 곧바로 알아보시고, 믿음을 북돋우십니다. 그렇기에 이후로 이어지는 야이로의 침묵은 예수님의 말 씀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듯합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에 게 불평하지 않습니다. 속은 오죽했으련만, 그래도 주님 을 보채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시간을 당신 뜻에 따라 쓰시는 데에 감히 개입하지 않습니다. 두렵지만 오 직 주님을 믿습니다. “탈리타 쿰!(소녀야, 일어나라)” 예수님의 이 음성과 함께 딸뿐만 아니라, 그렇게 야이로의 믿음 또 한 두려움에서 일으켜 세워집니다.